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쏠린 눈.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국은 화웨이가 5G 통신장비에 의도적으로 ‘백도어’를 남겨둬, 중국 정부가 이를 활용해 해킹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17일(현지시각) 한 행인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화웨이 대리점을 지나는 모습. 사진 블룸버그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쏠린 눈.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국은 화웨이가 5G 통신장비에 의도적으로 ‘백도어’를 남겨둬, 중국 정부가 이를 활용해 해킹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17일(현지시각) 한 행인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화웨이 대리점을 지나는 모습. 사진 블룸버그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전쟁 화살이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로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14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7월 미국이 주도하는 정보 동맹체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국)’ 정보 수장이 캐나다에서 비공식 회동을 갖고 “화웨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파이브 아이스는 2013년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자 국가안보국(NSA) 파견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을 통해 실체가 드러난 5개국 정보기관 연합체다. 당시 스노든은 파이브 아이스가 구글·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사이트, 통신사 등에 다양한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해 전 세계를 도·감청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도청해 본 경험이 있는 파이브 아이스가 화웨이를 지목한 것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를 위한 ‘백도어(Back Door)’를 둘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라며 “중국 기업을 죽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백도어는 뒷문이라는 뜻처럼 컴퓨터 시스템의 설계자나 관리자가 일부러 남겨둔 보안 구멍을 말한다. 백도어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설계자가 들어와 해결하는 통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정보를 빼가는 통로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 EU 집행위원회에서 디지털 정책을 담당하는 안드루스 안시프 부위원장은 AP통신에 “화웨이와 중국 기업에 대해 유의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 기업은 정부에 무조건 협조해야 하기 때문에 장비나 솔루션에 의무적으로 백도어를 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점유율 28%(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 기준)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화웨이가 5G(5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이어갈 경우, ‘중국판 빅브라더’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통신업계와 보안업계의 지적이다. 국내 한 통신사 관계자는 “2020년 이후 국제 표준에 따라 5G만 서비스할 수 있는 기지국을 만들기 전까지는 기존 LTE(4세대 이동통신) 기지국과 연동해 5G 서비스를 할 수 있다”면서 “LTE 시장에서 전 세계 4분의 1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화웨이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신장비업체 임원은 “화웨이 장비의 백도어를 통해 지도 등 국가 기밀이 반출될 여지도 있다”고 했다.

파이브 아이스 외에 프랑스 최대 통신사 오랑주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고, 독일 도이체텔레콤, 일본 소프트뱅크 등이 화웨이 장비의 구매 여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화웨이 불매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화웨이는 이례적으로 전 세계 유력 미디어 기자들을 초청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18일 중국 선전 본사에서 후허우쿤(胡厚崑)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지난 30년간 중국 정부로부터 어떤 요구도 받지 않았고, 보안 관련 위험한 사고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화웨이 장비에 보안 문제가 있다면 증거를 제시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르면 내년 3월 ‘5G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하는 한국 이동통신사는 LTE 기지국과 연동되는 5G 망을 구축했다. 사진 AP연합
이르면 내년 3월 ‘5G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하는 한국 이동통신사는 LTE 기지국과 연동되는 5G 망을 구축했다. 사진 AP연합

‘5G 굴기’ 꺾으려는 의도로만 보기 어려워

전 세계 5G 상용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 이동통신사들도 화웨이를 장비 사업자로 선택했는지의 여부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만 화웨이 장비를 채택한 상황이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이나 KT와 달리 LTE 장비 사업자로 삼성·에릭슨·노키아뿐 아니라 화웨이를 포함, 권역별로 4개 사업자를 채택한 바 있다. 5G 사업자로 화웨이를 재차 선택한 것은 5G 상용화를 위해 기존 기지국 연동이 불가피한 점, 화웨이 장비가 다른 통신사업자에 비해 기술력에서 약간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각 사업자의 기술력이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상용화 시점을 기술력 차이로 판단하고 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발간한 ‘5G 망 구축에 따른 통신장비 도입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의 5G 기술은 올해 5월 이미 상용화가 시작됐고, 뒤이어 10월에 노키아·삼성전자가, 12월에 에릭슨이 각각 상용화를 시작했다. 화웨이의 기술력이 글로벌 경쟁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이나 노키아, 삼성보다 5~7개월가량 앞서 있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이달 1일 기업용 5G 서비스를 시작으로 이르면 내년 3월 세계 최초로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5G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인 만큼, 화웨이를 장비사업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당장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불가능하다”며 “5G 시대 본격 개막을 앞두고 중국의 ‘5G 굴기’를 우려한 미국이 화웨이를 코너로 몰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19일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도 기자회견을 열고 “화웨이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에 통신장비를 공급하고 있고, 어떤 국가에서도 보안 문제가 제기된 바 없다”며 LG유플러스가 제공하게 될 5G 스마트폰에 대한 보안 우려를 일축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 논란이 미·중 무역전쟁의 한 갈래이기는 하지만, 보안 문제를 배제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고 말한다. 장지훈 가젯서울 미디어 대표는 “화웨이의 경우 중국 내수시장 매출 비율이 30~40%에 불과한 글로벌 기업인 만큼 미국이 무역전쟁의 경고를 날릴 수 있는 타깃이 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화웨이 보안 문제의 실체가 드러난 적 없는 게 사실이지만, 현재 전 세계 검증 기술력만으로 백도어가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파이브 아이스’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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