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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전문매체 조선비즈는 4월 28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통산업 생존전략’을 주제로 ‘제8회 유통산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고급화와 개인화 서비스를 강화해 불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언택트(untact·비대면) 문화가 부상한 가운데에도 가치 소비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거라는 관측이다.
노희영 파슨스 디자인 스쿨, 오리온 부사장,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 4월 28일 제8회 유통산업포럼에서 ‘음식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한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 사진 조선비즈
노희영
파슨스 디자인 스쿨, 오리온 부사장,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 4월 28일 제8회 유통산업포럼에서 ‘음식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한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 사진 조선비즈

“코로나19 여파에도 백화점 명품관 매출이 신장하고 고급 맛집의 줄서기가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엔 위험을 무릅쓰고 소비한다.”

체험형 매장과 가정간편식, 배달 시장의 성장과 새벽배송의 등장 뒤에는 먹거리를 향한 소비자들의 끊임없는 요구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소비 위축이 심화하고 미래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 먹거리 소비가 어떻게 변할지를 살피면 유통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브랜드 전략가이자 외식 업계 리더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에게 먹거리의 미래를 들어봤다.

노 대표는 오리온 마켓오, CJ 비비고·계절밥상·빕스·뚜레쥬르 등을 만들어 성공시킨 인물로 ‘외식 업계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린다. 그의 손을 거친 브랜드만도 200여 개. 최근에는 4년여간 대표이사로 몸담았던 YG푸즈를 인수해 식음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우연하게도 그가 새 출발하는 시점에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고 업계의 위기감은 더 커졌다.

노 대표는 “코로나19가 관통하는 현재, 식음료를 비롯한 유통 업계는 커다란 전환기를 맞았다”라며 “급변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포착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기본’이 중요해질 겁니다.”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가 외식 브랜드 쓰리버즈 센트럴시티점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코로나19 이후 ‘기본’이 중요해질 겁니다.”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가 외식 브랜드 쓰리버즈 센트럴시티점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식음료 업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하이엔드(고급) 문화나 서비스는 대면으로, 그 외의 것은 비대면으로 소비하는 현상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평소엔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이나 배달 앱 등을 통해 집에서 먹거나 키오스크(무인자동화기기)가 정착된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하지만, 특별한 날엔 셰프의 요리를 즐기기 위해 오마카세를 찾는 식이다. 실제로 코로나19로 ‘격리경제’가 부상하는 가운데에도 백화점 명품관 매출은 신장했고 전경련회관 꼭대기 층에서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 ‘세상의 모든 아침’엔 여전히 대기 줄이 늘어섰다. 위기 상황에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비하는 문화는 계속되리라고 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등장할 외식 소비 트렌드는.
“친환경, 나를 위한 소비, 멀티 스트리밍 채널, HMR의 진화, 간편대체식품(CMR) 등 5가지 신(新)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가정간편식의 진화를 꼽았는데, 실제로 코로나19 여파로 HMR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HMR은 계속 성장할까.
“1인 가족이 늘고 개인 소비가 부상하면서 혼밥·혼술(혼자 밥 먹고 술 마시는 문화),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사람)이라는 신(新)인류가 등장하고 HMR과 밀키트(밀(meal·식사)과 키트(kit·세트))의 합성어로, 손질한 식자재와 조리법을 함께 배송해 주는 꾸러미) 시장이 생겨났다. 코로나19 여파로 간편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 시장에서도 ‘가치 소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 처음 간편식이 등장한 이유는 끼니를 싼값에 빨리 때우기 위해서였다.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계속 먹으면 물리고 건강에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간편식은 ‘집밥’을 대체하는 목적으로 소비된다. 코로나19를 통해 안전과 위생,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한 소비자들은 현 수준의 간편식을 원하지 않는다.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집밥 수준의 품질과 정성이 들어간 HMR이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외식업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외식업은 어떻게 성장 활로를 찾아야 할까.
“30여 년간 식음료 사업을 했지만, 손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다. 고객들은 극진한 서비스에도 쉽게 만족하지 않고, 식당 주인들은 이들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원래 외식업은 어렵다. 오죽하면 ‘죄 많은 사람이 식당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비대면 소비 증가로 외식 업체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 배달로 부진을 극복하더라도, 애초에 배달용으로 개발되지 않은 음식으로는 장기간 경쟁할 수 없다. 배달 후에도 맛과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 완성도를 높이고 차별화를 도모해야 한다. 일부 외식 업자 중에는 음식에 대한 연구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인테리어나 플레이팅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식에 대한 위험 부담이 커진 시대엔 이런 전략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식당을 한 번 이상 찾는 소비자는 없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맞다. 요즘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엄선한 상품 대신, 인스타그램의 유명인이 추천하는 상품을 더 신뢰한다. 인스타그램에 현혹된 것처럼 보여도, 품질이 나쁘거나 공정이 잘못되면 크게 지탄하고 책임을 묻는다. 취향을 좇으면서도, 식재료의 생산지와 공정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제 좋은 재료를 쓰고 투명하게 장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유통의 시대가 아니라, 생산자가 키(key)를 잡은 시대다. 곧 농부가 페라리를 타는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

요즘 무엇에 꽂혀 있는가.
“밀키트!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재빨리 밀키트를 만들어 팔아 적자를 면했다. 외식 브랜드를 집에서도 높은 수준으로 즐길 방법을 연구 중이다. 평양일미에서는 만두를, 삼거리푸줏간에서는 올해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육수 개발에 한창이다. 사실 개발하는 게 쉽지는 않다. 내가 만들어 놓은 브랜드를 뛰어넘어야 하니까. 요즘 매일 비비고 만두를 먹고 있다(웃음).”

왜 하필 육수인가.
“제대로 된 육수만 있으면 어떤 요리든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원이 장악했던 조미료 시장을 1975년 다시다가 재편했다. 미원은 화학조미료고 다시다는 쇠고기와 멸치 등 천연 재료를 넣은 복합 조미료다. 국물 요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나온 다시다는 여전히 한국인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밀키트의 시대엔 육수가 다시다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한다. ‘천연 다시다’인 셈이다.”

불황에도 누군가는 기회를 잡는다. 향후 유망 사업을 꼽는다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식당보다 인구 밀집도가 낮은 개방형 식당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그룹에 장소(식당)를 대여해 주는 대관 사업이나 홈파티를 지원하는 케이터링 사업도 눈여겨보고 있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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