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선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전 미래에셋대우 수원지점 부지점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최지선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전 미래에셋대우 수원지점 부지점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업무직 출신, 전국 1등, 특진, 최연소 지점장, 워킹맘….’

최근 미래에셋대우의 2021년도 정기 인사에서 수지WM지점장으로 신규 선임된 최지선(38) 지점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그냥 많기만 한 게 아니라 대부분 예사롭지 않다. 도약하려는 기업과 그런 기업에 투자해 돈을 벌려는 이의 욕망이 달콤·살벌하게 뒤섞인 자본시장에서 실적 1위를 밥 먹듯이 해온 증권사 직원을 묘사하는 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최 지점장의 유명세가 회사 외부로 드러난 건 이번에 미래에셋대우 경영진이 30대 선임 매니저인 그에게 지점 하나를 통째로 맡기면서다. 2015년(대리)과 2017년(과장) 두 차례 특진에 이은 또 한 번의 파격 인사다. 창구 직원으로 증권사 생활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지점장 자리를 꿰찬 최 지점장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1월 5일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에 있는 미래에셋대우 수지WM지점에서 그를 만났다. 수식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최 지점장은 크고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내는 성취의 반복이 자신감 넘치고 낙관적인 지금의 자신을 완성했다고 소개했다.


증권사에서 언제부터 일했나.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중소기업이었다. 회계팀에서 자금 담당을 맡아 증권사와 종종 금융 거래를 했는데, 교류하는 과정에서 회계보다는 금융 투자 분야가 적성에 더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년 6개월 만에 퇴사하고 2007년 미래에셋대우(당시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업무팀에서 일했다. 증권사 지점에 가면 앞쪽 창구에서 방문객의 계좌 개설이나 입·출금을 돕는 직원이 있지 않나. 그들이 업무팀이다. 업무직 근무 3년째 되던 해에 회사에서 영업직 전환을 제안했다. 이례적이었다.”

왜 이례적인가.
“영업직은 투자 상담과 금융 상품 추천·판매 등 더 전문적인 일을 한다. 업무직이 영업직으로 전환하려면 통상 10년 이상 근무 경력에 직책이 업무팀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나는 입사 3년 차의 업무팀 사원이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내 영업 능력을 높이 평가해 이례적으로 전환 기회를 준 것이다. 2009년부터 사원 직급으로 동탄·수원 등지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자산 유입, 수익률, VIP 유치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 핵심성과지표 평가에서 매년 전국 상위권에 들어, 회사 기대에 부응했다.”

실적이 좋았던 비결 좀 공유해달라.
“업무직에 있을 때부터 영업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증권사들이 한창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영업을 할 때였는데, 인근 대학 캠퍼스로 우리가 먼저 찾아가는 이벤트 같은 아이디어를 곧잘 냈다. 대학생들에게 사은품으로 보조저장장치(USB)를 나눠주고 신규 CMA를 하루에만 수백 개씩 받아오곤 했다. 남 탓 안 하고 성실히 일했다. 동탄지점에서 근무할 때다. 업무 창구가 3개였는데, 자리 하나가 임신·출산 등의 사유로 계속 공석이어서 옆자리 동료인 내가 두 사람 몫을 해야 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불만을 갖기보다는 역량을 보여줄 기회로 활용하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업무팀 사원인 나와 투자 상담을 하길 원하는 고객이 늘어났다.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만, 요구하는 이가 많아져 조금씩 관리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이를 좋게 봐서 영업직 전환을 제안한 것이었다.”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 편인가.
“어려서부터 사람 사귀는 걸 좋아했고, 크고 작은 집단을 이끄는 위치에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걸 즐겼다. 학창 시절, 반장을 할 때는 우리 반을 해당 학년에서 1등으로 만들자고 반 친구들을 독려해 실제로 해냈고, 동아리 회장을 맡아서는 우리 동아리를 축제 1위로 만들기도 했다. 목표를 이룰 때마다 밀려오는 감동과 희열이 짜릿했다. 그런 성취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엔가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자신감으로 변하더라. 자신감이 생기니 성격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목표 달성 의지와 자신감, 긍정적인 마인드. 이 세 가지는 증권사 입사 후 일을 대하는 내 태도를 결정지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회사와 궁합도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렇다. 미래에셋대우는 임직원에게 나아가야 할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잘 따라온 직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상한다. 이런 회사 문화가 마음에 들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일례로 회사는 3년 전부터 국내 투자에 머물지 말고 글로벌 자산 배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나는 이 방향성을 고객 포트폴리오에 신속히 적용했다. 2020년 기준으로 150억원 규모의 해외 자산을 고객 자산에 편입했다. 이렇게 분산 투자한 덕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수익률을 지켜낼 수 있었다. 통상 달러화와 같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는 위기 상황에서 커진다. 주식에서 일정 부분 손실을 보더라도 달러화 기반 자산이 상대적으로 선방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혼자 고속 승진하면 견제가 심해지지 않나.
“내 할 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았다. 누군가 주말에 출근해 전단을 돌려야 한다고 하면 늘 선뜻 나섰다. 이타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타적으로 최선을 다하면 나는 물론 내가 속한 지점도 좋은 평가를 받더라.”

나이가 어린데 고객과 관계는 어떻나.
“실적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나. 문제없다. 그리고 조선·철강의 시대는 갔다. 이 시각 금융 투자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테마는 ‘4차 산업혁명’이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내가 평소 관심을 두고 즐겨 쓰는 서비스가 그 중심에 있다. 기술 혁신 속도도 엄청 빠르다. 오히려 젊은 피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투자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있나.
“마음 편한 투자를 하자는 주의다. 투자한 업종·주식이 빠지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우상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만 담는다. 예컨대 전기차의 경우 현재 자동차 시장 침투율이 4%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에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장기 성장 흐름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기에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저점 매수했다. 위기는 늘 그 순간에는 공포로 다가오지만 지나고 보면 기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은 목돈 벌 기회였던 것처럼 말이다. 고객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래서인지 하락장에 돈을 더 입금해주는 고객이 많다. 포트폴리오의 30%가량을 추가 매수에 동원할 수 있는 현금으로 보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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