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한샘 유로504 데코 침대, 삼성전자 비스포크 냉장고, 에몬스가구 아델라 소파. 사진 한샘·삼성전자·에몬스가구
왼쪽부터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한샘 유로504 데코 침대, 삼성전자 비스포크 냉장고, 에몬스가구 아델라 소파. 사진 한샘·삼성전자·에몬스가구

직장인 정한나(33)씨가 최근 구매한 소파는 김씨만을 위해 특별 제작된 제품이다. 요새 매일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며 ‘집콕’ 하는 만큼, 목이 아프지 않게 소파 팔걸이를 몸에 맞춰 낮췄다. 5인 가족에겐 항상 작게 느껴졌던 4인용 소파도 길이를 10㎝ 더 늘렸고, 키우는 반려동물 강아지를 고려해 소파 원단도 기능성 패브릭으로 주문했다. 기존 소파보다 가격이 몇십만원 비싸고, 집으로 배송될 때까지 2주나 걸렸지만 정씨에겐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 소비였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집과 가구에 투자하는 돈은 이제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디어를 넘어 기존 식음료 분야와 일부 럭셔리 브랜드 제품에 적용됐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가구와 가전제품 등의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커스터마이징이란 고객 요구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대량 생산한 기성품을 구매하던 소비자가 이제 반대로 기업에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요청하면, 기업이 이를 생산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주거 공간에 대한 투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개별화한 수요를 맞출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의 정보기술(IT) 인프라가 구축됐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가구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콕족’이 늘어나면서, 커스터마이징 제품의 확대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다. 한샘, 현대리바트, 에몬스가구 등 가구 업체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직접 색상, 원재료, 마감재, 크기, 팔걸이 위치, 침대 헤드 등 다양한 요소를 선택할 수 있는 맞춤 제작 서비스를 출시했다. 에몬스가구의 경우, 커스터마이징 소파의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약 60% 증가했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해 2019년 소파의 약 20%를 차지했던 커스터마이징 소파 비중은 2020년 35%까지 확대됐다. 장대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부에서 이루어졌던 소비가 상당수 주거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소비자에게 ‘가치 소비(자신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재에 과감히 소비하는 성향)’의 영역이 기존에는 관심받지 못했던 가구나 가전제품으로까지 확대됐다”고 말했다.

한샘 관계자는 “과거 이사나 대규모 공사 시, 부엌 내 수납공간이나 붙박이장 등 ‘설비(fixture)’ 및 인테리어 전반을 시공사 등 고가의 업체를 통해 ‘커스터마이징’하는 게 당연시됐다”며 “반면 식탁, 소파, 침대 등 ‘가구(furniture)’는 인테리어의 부차 요소로 간과되곤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기성품보다 약 20~40% 더 비싼 커스터마이징 가구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밝혔다.

문화적인 변화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산업 환경의 변화 역시 커스터마이징 흐름을 가속화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등 대량 생산이 가능한 해외 공장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소량 생산 중심인 국내 소기업과 계약이 확대되면서 기업이 자연스럽게 소량 생산의 커스터마이징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에몬스가구 관계자는 “소파와 식탁은 수입 의존도가 높아서 디자인을 의뢰하고 샘플을 보내는 과정에서 해외 출장이 잦다”며 “그러나 해외 업체와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업체와 협력을 많이 하게 됐는데, 이들과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늘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대련 교수는 “리쇼어링 논의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계기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기존의 개인화 소비 트렌드와 함께 이러한 추세는 대량 맞춤형 생산(Mass Customization)을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 업계 역시 커스터마이징 제품의 인기가 최근 높아진 분야다. 과거에는 색상이 한 가지라는 의미에서 ‘백색가전’으로 분류됐던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소비자 취향을 드러내기엔 알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가전제품 역시 취향을 드러내는 인테리어의 일부로 여기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가전 업계도 커스터마이징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소비자가 외부 재질과 색상, 도어 모양 등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냉장고,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등 제품군인 ‘LG오브제컬렉션’을 출시했다. 소비자가 조합할 수 있는 구성이 145가지에 달한다. 앞서 2019년 6월 커스터마이징 냉장고인 ‘비스포크’를 내놓은 삼성전자의 경우, 작년 말 기준 해당 제품이 국내 판매 냉장고 전체 매출의 67%를 차지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비자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전제품 역시 집 안의 인테리어를 구성하며 취향을 반영하는 주요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가전제품 누적 출하량이 100만 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스마트팩토리는 표준화된 생산 과정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스마트팩토리는 표준화된 생산 과정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커스터마이징 인프라는 IT 기술

커스터마이징 추세 확대는 IT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원재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음료 업계와 제품 가격이 높은 럭셔리 브랜드 제품를 만드는 업체뿐 아니라 일반 제조 기업에서 커스터마이징 제품의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는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등 IT 기술 발전 덕분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빠른 데이터 전송뿐 아니라 스마트 팩토리가 발전하면서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맞춤형 생산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스마트 팩토리는 표준화한 생산 과정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맞춤형 부품을 자유롭게 추가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칭다오에는 고객의 주문을 받아 맞춤 양복을 공장에서 제작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까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발전 덕에 개인화한 소비자 취향을 제품의 소싱, 생산, 배급, 소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즉, 스마트팩토리 등 생산 업체와 제조 업체 본사, 구매처로 이어지는 제품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의 데이터 송신 및 관리가 간편해지면서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기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개개인이 주문한 수많은 제품 옵션에 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생산 업체와 대리점, 본사 등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는 DB(데이터베이스) 인프라가 구축돼야 커스터마이징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CM(공급망 관리) 내 데이터 관리가 능숙한 회사만이 재고 낭비 없이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효율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의 IT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기업이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스마트 팩토리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커스터마이징 과정에서 고객 취향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이를 제품 개발 및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세분화된 시장에서 데이터 없이 ‘유행’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며 “제품의 실구매자로부터 얻는 데이터가 기업엔 가장 가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은 커스터마이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소연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