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보공학과, 예스컴 창업 / 박성호 밀과노닐다 대표가 경북 안동에 있는 밀밭에서 진맥소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박성호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보공학과, 예스컴 창업 / 박성호 밀과노닐다 대표가 경북 안동에 있는 밀밭에서 진맥소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종택은 1504년 사간원에 근무하다가 연산군의 노염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농암 이현보 선생 종가다. 농암종택 바로 인근에 있는 ‘육지 속 섬’인 맹개마을은 승용차로는 갈 수가 없다. 낙동강 상류 건너편이라 바퀴 큰 트랙터에 옮겨 타야 한다. 전기가 들어온 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청정 오지 산골 마을, 통밀로 만든 증류주 ‘안동 진맥소주’가 익어가고 있는 마을이다. 맹개마을은 ‘해가 잘 드는 외딴 강마을’이란 의미다.

거센 낙동강 상류 물이 마을을 휘감고 있고, 퇴계 이황이 자주 찾았다는 청량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경관이 일품이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팀이 두 번이나 찾아와 촬영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지난해에만 7000여 명이 이곳에서 ‘농가스테이’를 체험했다.

맹개마을 주소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29. 맹개마을 대부분 땅은 밀밭이다. 겨울과 봄에 자란 밀을 수확하면 같은 자리에 메밀을 심어 가을에는 10만㎡(약 3만 평)의 메밀밭이 장관이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매년 9월 10일 전후엔 농가음악회가 외지인을 맞는다.

‘안동 진맥소주’는 이곳 맹개마을 밀밭에서 키운 유기농 통밀로 만든 증류주다. 안동은 쌀 소주의 본고장이다. 쌀과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들어 증류한 술이 안동소주다. 하지만 진맥소주는 쌀이 아닌 밀로 만든다. 재료(밀)는 서양 술 위스키와 같고, 제조 방법(막걸리를 만들어 증류)은 전통 쌀 소주와 같은 술이 진맥소주다. 진맥소주에는 그래서 위스키 향이 묻어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 향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40·53도 제품은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바닐라와 레몬 향이 난다. 재료인 밀에서 우러나는 꽃과 과일 향이다.

‘안동 진맥소주’를 만드는 농업법인 ‘밀과노닐다’ 박성호 대표는 14년째 맹개마을에서 밀 농사를 짓고 있다. 독일 유학(컴퓨터 전공) 후 1997년 귀국해 정보기술(IT) 기업을 10년 남짓 경영하다가 2007년 이곳으로 귀농했다. ‘IT 전도사’에서 ‘농부’로 변신한 그가 최근 ‘양조인’으로 다시 거듭난 이유가 궁금했다.


진맥소주를 만드는 맹개마을은 방문객을 위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7000여 명이 다녀갔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진맥소주를 만드는 맹개마을은 방문객을 위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7000여 명이 다녀갔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IT 사업을 접고 귀농한 이유는.
“기술 개발이 재밌었는데, 회사의 성장과 경쟁이란 틀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심신이 지쳤다. 지속 가능한 가족의 삶, 생태적인 생활, 온라인 세계가 아닌 손으로 하는 현실적인 일을 찾아 귀농했다.”

밀로 소주를 만든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14년 전 안동으로 귀농하면서 약 10만㎡ 규모의 밀 농사를 짓고 있다. 친환경 농법으로 유기농 밀 인증까지 받았지만, 빵집에 밀가루를 팔아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술이 농업의 꽃’이라고 생각했다.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술을 만들었고, 전 세계 술 시장 관점에서 볼 때 밀도 쌀 이상으로 훌륭한 술 원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술 원료로서 밀의 적합성은.
“술을 만드는 원료가 달라지면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밀과 쌀 증류주의 차이는 재료가 주는 맛과 그 질감 등에 있다. 여름 곡물인 쌀과 달리 겨울을 나는 밀(10월 말에 씨를 뿌려 이듬해 6월 말에 수확)은 따뜻한 본성이 있다. 그래서 술을 만들면 몸이 따뜻해지는 특성이 있다. 진맥소주는 통밀로 술을 빚기 때문에 밀이 가진 다양한 곡물 향이 은은하게 녹아 있다.”

직접 키운 농산물로 술을 만든 사례가 드문데.
“농부가 양조인 역할까지 하다 보니 진맥소주는 만드는 데 최소 2년이 걸린다. 10월에 파종하고, 이듬해 6월에 수확, 가을에 술을 담근다. 증류하고도 숙성을 1년 이상(22도 제품은 6개월 숙성) 거친다. 그래서 우리의 모토는 ‘씨앗부터 술병까지(Farm to Glass)’다. 진맥소주 한 병에는 2년의 기다림, 5㎡의 밀밭 그리고 농부의 땀방울 한 말이 담겨 있다. 농부가 만드는 술의 장점도 크다. 오랫동안 직접 밀을 키우다 보니 수확기 밀알 향만 맡아봐도 어떤 성격의 술이 만들어질지 대번 짐작이 된다. 양조용 밀, 빵을 만드는 밀, 누룩을 만드는 밀을 따로 심을 정도로 ‘밀 박사’가 됐다. 원료를 사다가 술을 빚는 양조인은 짐작도 할 수 없는 노하우다.”

가을엔 음악회도 연다고 들었다.
“밀을 수확한 밭에 메밀을 심는다. 그 메밀이 흐드러지게 피는 때에 음악회를 열고 있다. 직접 비닐로 만든 돔 하우스에서 매년 메밀꽃 필 무렵에 음악회를 열고 있다. 유명 가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실력 있는 인디 가수와 성악가들을 초빙한다. 의외로 폭발적인 반응으로 유료 티켓이 금방 다 팔린다. 수용 관객이 70~100명 정도인데, 2016년 첫해 공연부터 150명이 왔다.”

진맥소주는 22·40·53도 세 가지가 있지만, 간판 상품은 40도 제품이다. 원액 그대로 40도 제품을 마시면 통밀빵의 고소함과 과일의 단맛이 느껴진다. 53도 제품에는 바닐라 향과 약간 매운맛도 있다. 얼음을 타서 53도 진맥소주를 천천히 마시면 다양한 곡물 향이 되살아난다. 박성호 대표는 “술이 약한 분을 위해 만든 22도 제품은 시원한 여름 오이 같은 향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 출시됐지만, 전통술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진맥소주는 ‘핫한 술’로 등극했다. 전통주 전문점에서도 인기다. 현대백화점에도 들어가 있다.

진맥소주 제조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껍질만 벗긴 통밀을 찐 다음 밀 누룩을 섞어 밑술을 담근다. 두 차례 덧술을 더해(삼양주) 한 달 동안 발효 과정을 거치면 발효술(막걸리)이 완성된다. 이 발효한 술을 거르고 두 단계의 증류를 거치면 진맥소주 증류 원액이 완성된다. 옹기에 6개월~1년 숙성하고 관능 검사와 품질 검사 등을 실시한 뒤 병에 넣어 출고한다. 씨앗을 뿌린 밀이 여물어 발효와 증류, 숙성을 거쳐 소비자에게 진맥소주로 전달되는 데 최소 2년이 걸린다.”

안동은 쌀 소주의 본고장인데.
“술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획일화된 쌀 소주 위주에서 새로 밀 소주가 더해져 장기적으로는 안동소주의 외연이 넓어지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한다. 술 재료가 달라지면, 술의 향과 맛이 당연히 달라진다. 지금은 ‘개성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시대 아닌가?”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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