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송파구·강동구 등 ‘강남 4구’를 중심으로 최근 전세금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서울 대치동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송파구·강동구 등 ‘강남 4구’를 중심으로 최근 전세금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서울 대치동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서현동에 사는 직장인 김민석(35)씨는 올해 말 전셋집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약 2년 전 김씨는 전용 60㎡짜리 전셋집을 3억원 후반대에 계약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전세금이 치솟더니 최근에는 같은 면적의 전세 물건이 5억원대에 나오고 있다. 김씨는 아직 집주인에게 재계약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대폭 올리거나 반전세로 바꿀까 봐 김씨는 요즘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면적 85㎡ 전세 물건은 6월 13일만 해도 10억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6·17 부동산 대책 이후인 6월 26일 같은 면적이 기존보다 2억8000만원 오른 12억8000만원에 나가더니, 7월 초에도 12억원에 거래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체에 따르면 최근에는 집주인들이 전세 호가로 13억원대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들은 “6·17 대책이 전세금에 불을 지폈다”고 말했다.

이사 비성수기인 여름철이지만, 서울 전세 물건이 씨가 말랐다. 전세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줄어들며 전세금이 급등하고 있다. 정부의 6·17 대책 여파로 ‘전세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사가 많아지는 가을철이 되면 전세 불안 현상이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한 주간(6월 29일 기준)에 0.10% 올랐다. 특히 서울 서초구(0.20%)·강동구(0.17%)·송파구(0.16%)·강남구(0.14%)의 전세금 상승 폭이 컸다. 공급 물량이 쏟아지며 서울 전세 시장은 수년째 안정을 유지했지만, 최근 들어선 정반대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민간 업체 자료를 보면 전세난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6월 29일 기준으로 한 주간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0.22% 올라 2015년 10월 넷째 주(0.22%)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 폭을 기록했다.

최근 전세 시장이 불안한 건 정부 규제의 부작용 탓이다. 보통 여름철은 이사 비수기로 꼽혀 전세금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은 시기다. 하지만 정부가 6·17 대책을 통해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에선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만 분양 신청을 허용하는 규제를 내놓으며 시중 전세 물량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기 위해 세입자 퇴거를 요구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신규 구입한 경우 기존 전세대출을 갚아야 하는 규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주인이 집을 사서 당장 입주하지 않을 경우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 보증금을 갭(gap) 투자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꺼내든 대책이다. 하지만 민간 시장의 임대 공급을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갭 투자는 매매가와 전세금의 차이를 이용해 집을 사는 걸 말한다.

서울 잠실동과 삼성·대치·청담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것 역시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매매 거래가 사실상 막히면서 생활·교육·교통 인프라가 좋은 이 지역에 눌러앉으려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전세 시장 자극할 요인만 ‘수두룩’

전세 물건 부족과 전세금 상승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다. 수도권 3기 신도시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기다리는 수요는 많지만, 앞으로 공급될 물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7967가구로, 전년 같은 기간의 76% 수준에 불과하다. 내년 입주 예정 물량도 2만3927가구로, 올해의 56% 수준에 그친다.

전세 수요와 공급 동향을 나타내는 지표도 전세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KB부동산 리브온이 조사하는 6월 29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73.8에 이른다. 2016년 3월 21일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는 0에서 200까지의 범위인데,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 정도가 심하다는 걸 의미한다.

직방이 6월 12일부터 22일까지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40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7월 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응답자 중 56%(2289명)가 하반기 주택 전세금이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서울은 59.5%로 다른 지역보다 상승할 것이란 답변 비중이 높았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전세의 종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금을 받아봤자 저금리로 투자처가 애매한 상황이라 월세를 선호하고, 갭 투자자 입장에선 더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기엔 대출이나 세제 규제가 까다로워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지 않는 한 이득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민간이 임대 주택의 80% 정도를 공급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올해 2월 1만3491건에 이르던 전세 거래량은 3월 9621건으로 줄더니, 6월에는 5623건까지 감소했다. 지난해의 경우 5, 6월과 9월을 제외하면 모두 1만 건을 돌파했는데, 올해 들어선 확연하게 거래 건수가 줄었다.

‘임대차 보호 3법’도 전세난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7월 6일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전·월세 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택 임대 계약을 하면 30일 안에 주택 소재지 관청에 임대차  보증금 등 임대차 계약 정보를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간의 임대차 계약 종료 후 임차인이 한 차례 더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가격 상승 폭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등도 대기 중이다.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유리한 계약이 시행되기 전에 미리 보증금을 올려 받으려고 하면서 전세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규제가 전세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사실 앞으로도 전세금이 오를 요인이 너무 많다”며 “전세 거주자들이 집값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이상 청약·매매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청약제도·보유세 개편안이 앞으로 전세 시장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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