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서울시 평창동에서 만난 티코 오너스 클럽(T.O.C.) 회원 7인. 모두 형형색색의 티코를 몰고 왔다. 사진 오민지 인턴기자
6월 25일 서울시 평창동에서 만난 티코 오너스 클럽(T.O.C.) 회원 7인. 모두 형형색색의 티코를 몰고 왔다. 사진 오민지 인턴기자

6월 25일 서울시 평창동 북악스카이웨이. 1997년식 분홍색 티코를 타고 가파른 도로를 내질렀다. 23년의 나이를 먹은 만큼 낡은 가솔린 엔진이 진동음을 냈다. 하지만 796㏄라는 배기량이 무색할 만큼 힘이 좋았다. 140㎝ 높이의 낮은 차체는 오히려 안정적인 드라이빙에 제격이었다. 창밖 가로수 사이로 부는 바람, 기분 좋은 엔진 소리, 티코의 안정감까지, 완벽한 드라이브였다.

이날 기자에게 드라이브 경험을 선사한 분홍 티코는 직장인 김황(40)씨 소유다. 김씨는 지인에게 술 한 잔을 대접한 대가로 3년 전 50만원에 티코를 구매했다. 정비부터 튜닝까지 김씨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김씨는 “2001년 잠시 탔던 티코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해 다시 그리워졌다”면서 “차가 오래됐으니 정비나 관리에 더 신경 쓴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씨처럼 티코를 다시 구매하는 ‘자동차 마니아’가 늘고 있다. 티코는 대우자동차 산하 대우국민차에서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생산한 한국 최초의 경차다. 국내에서 실제 운행되고 있는 티코는 현재 400여 대뿐. 매물은 관리 상태에 따라 150만에서 400만원까지 가격이 오르는데 상태가 좋은 것은 하루도 안 돼 팔린다. 최근 동호회 카페에 올라온 1996년식 빨간 티코는 12시간도 안 돼 판매됐다.

인스타그램에 ‘#티코’를 검색하면 1만4000개의 게시글이 올라온다. 롯데제과의 아이스크림 ‘티코’ 후기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수준이다. 도로에서 만난 티코를 찍어 올린 게시글에는 “흰색 티코를 각설탕이라 놀린 기억이 난다”라는 추억 담긴 댓글이 달려 있다. ‘#국보급’ ‘#티코발견’ ‘#보호하자’라는 해시태그도 달리며 오래 함께하자는 덕담도 있다.

단종 20년을 맞은 티코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티코를 소유하거나 티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티코 오너스 클럽(T.O.C.)을 만나 이유를 들어봤다.


페루의 노란 택시를 연상시키는 하동진씨의 ‘노티(노란 티코)’ 내부. 사진 오민지 인턴기자
페루의 노란 택시를 연상시키는 하동진씨의 ‘노티(노란 티코)’ 내부. 사진 오민지 인턴기자

인기 포인트 1│
20세기로 시간 여행하는 추억의 국민차

“이것이 국민차, 이것이 티코”

과거 국내 최초 경차로서 장점을 내세운 티코의 다양한 광고가 등장했다. 배우 김혜수씨와 이영범씨가 등장했던 1991년 출시 당시 광고도 화제였다. “손님, 차비 주셔야죠?”라는 김혜수씨에게 이영범씨는 가벼운 볼 뽀뽀를 남긴다. 차비조차 뽀뽀면 충분할 만큼 연비가 좋다는 이야기였다. 티코의 공인 연비는 수동 24㎞/L, 자동 18㎞/L다.

티코는 1991년 출시된 해에만 3만 대가 팔렸다. 당시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가 425만 대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수준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적인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났다. 이후 경차 전성시대를 이끌며 마티즈·아토스·비스토 등 다른 경차와 함께 16만 경차 시장을 만들었다.

국민차라는 명성답게 티코 보유자는 저마다의 추억이 있다. 회사원 이계훈(37)씨는 수동 기어가 그리워 1996년식 수동 티코를 구매했다. 이씨는 “어머니가 티코로 학교를 데려다주면서 기어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당시 어머니 티코가 수동 4단이어서, 지금 타는 티코를 수동 4단으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예스럽지만 촌스럽지 않다. 창문을 손잡이로 돌리는 티코 모델은 특히나 인기다. 3년 전 해당 모델을 구매한 최성욱(34)씨는 “창문을 손잡이로 돌리는 방식은 고장이 안 난다”면서 “조금 불편해도 그게 오래된 티코의 매력”이라고 했다.


김황씨의 분홍 티코 내부는 명품 브랜드 버버리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사진 오민지 인턴기자
김황씨의 분홍 티코 내부는 명품 브랜드 버버리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사진 오민지 인턴기자

인기 포인트 2│
젊은 사람도 클래식 디자인 좇아

최근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선 올드카 특유의 각진 외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대 기술의 집합체인 전기차 디자인으로 각진 외관이 등장할 정도다. 현대자동차가 미래 전기차 디자인으로 공개한 EV 콘셉트카도 각진 앞모습으로, 과거 포니를 닮았다. 티코도 같은 이유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심지어 티코 국내 생산이 중단된 이후 태어난 2000년대생도 티코를 찾는다.

2001년생으로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허민(19)씨는 티코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꿈꿨던 티코를 사려고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허씨는 도로에서 티코를 발견할 때마다 인증샷을 찍어 간직한다.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티코 사진이 가득하다. 허씨는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있는데, 티코를 사서 직접 복원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기타리스트 장혁진(27)씨는 본인보다 두 살 형인 1991년식 은색 티코를 타고 다닌다. 장씨는 작은 올드카를 찾다가 티코에 관심을 가졌다. 마음에 드는 티코를 찾고자 1년 넘게 인터넷 카페에서 매물을 기다리다 지난 5월에야 티코를 구입했다. 30대 초반에 티코를 구입한 최성욱(34)씨 역시 “오로지 티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라며 “아담한 사이즈에 각진 외형이 좋다”라고 말했다.


도색 전후 티코를 양 손날에 새긴 하동진씨. 오른쪽이 도색 전, 왼쪽이 도색 후다. 사진 하동진
도색 전후 티코를 양 손날에 새긴 하동진씨. 오른쪽이 도색 전, 왼쪽이 도색 후다. 사진 하동진

인기 포인트 3│
튜닝과 정비는 필수 ‘나만의 에디션’

튜닝으로 나만의 티코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예스러움을 유지한 순정파 티코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티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민다. 도색이 가장 일반적인데 비용은 최소 50만원에서 최대 400만원에 이른다. 티코 찻값과 맞먹는 다. 차가 오래돼서 내부 정비도 필수다.

정성 어린 튜닝과 정비를 거친 티코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차’가 된다. 이계훈씨는 티코를 마을버스 초록색으로 도색했다. 친구가 티코를 광역버스 주황색으로 도색한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을버스 티코’는 티코 마니아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T.O.C. 회원 사이에서 ‘갈색 수염’이라고 불리는 정동용(37)씨는 본인 티코에 독특한 애칭인 ‘구지와라티코’를 붙였다. 전 주인이 일본 자동차 만화 ‘이니셜 D’에 나오는 두부 가게 ‘후지와라 두부’ 문구를 티코에 붙여둔 것이 시작이다. 스티커를 제거했지만, 자국이 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이를 본따 ‘구지와라티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사진작가 하동진(37)씨는 자신의 노란색 티코를 ‘노티’라고 부른다. 그의 양 손날에는 도색 전후의 티코가 각각 새겨져 있다. 하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정비를 다 하고 관리하니 자식 같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티코 출시 30주년이다. T.O.C.는 30주년 자축 파티를 열 계획이다. 권영섭(35) T.O.C. 대표는 “모두가 공감하고 추억할 수 있는 차로 티코가 오래도록 기억되면 좋겠다”라면서 “추억을 나눌 아버지 세대 회원도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오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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