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동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원 펜타스’ 조감도. 사진 삼성물산
서울 반포동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원 펜타스’ 조감도. 사진 삼성물산

아파트 브랜드의 최강자 삼성물산의 ‘래미안’이 서울 반포동 ‘신반포15차’ 재건축 정비사업을 수주하며 성공적인 복귀 신고를 치렀다. 2015년 서초동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수주전 이후 수주 활동을 멈추면서 주택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5년 만의 복귀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업계 관계자들은 래미안의 귀환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판도를 뒤바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반포15차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은 4월 23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정기총회에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뽑았다. 삼성물산은 총 126표 중 75.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호반건설이 22표, 대림산업이 18표를 얻어 그 뒤를 이었다. 신반포15차는 기존 8개 동 180가구를 재건축해 지하 4층~지상 35층 6개 동 641가구로 탈바꿈한다.

삼성물산은 서초동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서 GS건설의 ‘자이’에 시공권을 내준 이후 5년간 수주 활동을 하지 않았다. 재개발·재건축 시장이 지나치게 혼탁해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삼성물산이 한발 물러선 동안 경쟁사인 현대건설은 ‘디에이치(THE H)’라는 고급 브랜드를 내세워 강남권에서 최고 알짜배기 입지인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를 수주했다. GS건설은 자이를 내세워 경기 ‘과천주공4단지’와 서울 옥수동 ‘한남 하이츠’ 등을 수주했고, 대림산업은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와 잠원동 ‘아크로 리버뷰’를 앞세워 정비 업계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롯데건설은 신천동 ‘미성·크로바’, 흑석동 ‘흑석9구역’ 등을 수주하며 정비 업계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삼성물산이 주택 시장에 복귀한 건 ‘클린(clean) 수주’를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한남3구역에서 시공사 간 경쟁이 격화되자 정부는 검찰에 건설사를 고발하는 등 시공사의 불법 행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신반포15차 수주전이 조합과 약속한 홍보 지침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삼성물산과 대림산업, 호반건설 등 입찰에 참여한 3개 회사는 모두 조합과 약속한 홍보 지침을 어기지 않았다. 삼성물산의 일감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삼성물산의 주택 수주 잔고는 지난해 상반기 7조원대에서 하반기 6조원대로 떨어졌다.

건설 업계가 래미안의 ‘복귀’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시장 상황과 관련 있다. 해외 시장의 경우 국제 유가 추락으로 국내 건설사의 수주 텃밭인 중동 국가의 발주 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시장 여건도 만만치 않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주택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은 데다 정부 부동산 규제가 강해 민간 수주가 예년만 못한 상황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올해 건설 투자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국내에선 정비사업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자 최근 한남3구역에선 백화점 입점, 임대 가구 ‘제로(0)’ 같은 무리한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래미안 같은 막강한 브랜드가 경쟁자로 나타나다 보니 다른 회사들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래미안 원 펜타스’의 문주. 사진 삼성물산
‘래미안 원 펜타스’의 문주. 사진 삼성물산

래미안 가세로 수주 경쟁 치열

래미안의 ‘브랜드 파워’는 여전하다. 지난 2월 한남3구역 재입찰 당시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GS건설 외에도 삼성물산이 입찰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왔는데, 일부 조합원들은 소문이 사실이 되기를 기대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래미안, 특히 삼성그룹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래미안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관하는 ‘2020년 한국 산업의 브랜드 파워(K-BPI)’ 아파트 부문에서 19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브랜드에 매우 민감한 강남권 재건축 시장에서 래미안은 여전히 ‘흥행 보증 수표’다.

래미안은 이미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주민과 갈등으로 기존 시공 계약이 해지되며 ‘무주공산’이 된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수주전에 뛰어들어 대우건설과 경쟁 중이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는 재건축을 통해 지하 3층~지상 35층 17개 동, 2091가구로 탈바꿈한다. 5월 말 시공사 선정 총회가 예정됐다. 삼성물산은 2009년 반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 퍼스티지’와 연내 분양 예정인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와 더불어 반포주공1단지 3주구를 수주해 일대를 ‘래미안 타운’으로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삼성물산이 진출할 만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도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다. 사업 시행 인가를 앞둔 이촌동 ‘한강맨션’ 등이 그렇다. 삼성물산이 ‘렉스’ 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첼리투스’가 랜드마크인 지역이다. 장기적으로 봐도 삼성물산이 노릴 만한 사업장이 꽤 있다. 대치동 일대는 ‘은마’ ‘우성’ ‘선경’아파트와 ‘한보미도맨션’ 등을 비롯해 아직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이 드물다. 압구정동도 마찬가지다. 한남3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한남동 재개발 사업지와 여의도 일대도 삼성물산이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곳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정비사업 수주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게 회사의 기본 방침”이라면서 “다만 금품·향응 제공, 경쟁사 비방 등 지나친 경쟁은 지양한다. 실제로 반포주공1단지 3주구에서도 홍보 요원을 1명도 쓰지 않는 클린 수주를 전개 중”이라고 말했다.

래미안 브랜드가 과거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건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고급 주거 브랜드를 출시하며 강남권 재건축에 특화 설계, 고급 자재 등을 대거 적용하는 만큼 예전보다 래미안과 차이는 크지 않다”면서 “앞으로 정비사업은 대형 건설사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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