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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3월 27일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창업주가 떠난 농심의 지휘봉은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잡았다. ‘라면왕’으로 불리며 농심의 우산이 됐던 고(故) 신춘호 회장의 빈자리를 신동원 부회장이 오롯이 채울 수 있을지 식품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농심 입사 42년, 부회장만 21년의 베테랑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난 신동원 부회장은 1979년 농심에 입사했다. 우리 나이로 22세,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놀면 뭐하냐’는 신 회장의 말에 공장에 들어가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며, 첫발을 내디뎠다. 농심에 정식 입사한 그는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40세이던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섰다. 3년 뒤인 2000년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농심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신동원 시대’는 좀처럼 개막되지 않았다. 신 회장이 구순이 넘는 고령까지도 경영 일선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심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신 회장을 보좌하던 신 부회장은 해외 진출, 특히 중국 진출 과정에서 역할을 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농심 관계자는 “해외 진출 과정에서 박준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국 쪽을, 신동원 부회장은 중국 쪽을 담당했다”면서 “중국 시장 진출에 이어 백산수 공장 준공 등 굵직한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시키며 농심의 성장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말했다.

제품 중에서는 농심이 차세대 라면으로 주목하고 있는 ‘건면’ 시리즈가 신 부회장의 작품이다. 튀기지 않고 말린 면을 사용한 건면은 라면 시장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짜파게티’라는 짜장라면이 있음에도 ‘짜왕’이라는 프리미엄 짜장라면을 출시한 것도 신 부회장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당시 신 부회장은 짜왕의 차별화 요소인 ‘굵은 면발’ 개발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수 사업은 신동원 부회장의 뚝심을 보여준다. 제주개발공사가 만드는 삼다수의 유통을 맡은 농심은 삼다수가 1위 생수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지만, 2012년 유통 계약이 해지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농심은 삼다수 판매 계약 종료 직후 백두산을 수원지로 하는 ‘백산수’를 출시했다. 현재 백산수는 삼다수에 이어 국내 생수 브랜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 부회장은 생수 사업과 관련해 한 인터뷰에서 “삼다수와 ‘볼빅’을 유통하면서 생수를 직접 생산해 자체 브랜드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 “지리산과 울릉도는 물론 프랑스와 하와이 등 물 좋다는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3월 30일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에서 엄수된 신춘호 회장 영결식에서 신동원 부회장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농심
3월 30일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에서 엄수된 신춘호 회장 영결식에서 신동원 부회장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농심

지주사 출범하며 최대 주주 올라…경영권 분쟁 없다

신 부회장은 2003년 지주사인 농심홀딩스가 출범할 때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지분 36.38%를 확보했다. 당시 신주 발행가는 한 주당 3만원. 신 부회장은 유상증자 283억원, 장내매수 232억원 등 515억원을 들여 농심홀딩스의 제1주주가 됐다. 이후 341억원을 들여 6.54%를 추가로 확보하며 총 42.92%의 지분을 확보했다.

신동원 부회장의 쌍둥이 동생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보유한 농심홀딩스 지분은 13.18%다. 삼남인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농심홀딩스 지분이 없다. 보유 지분 격차가 큰 만큼 경영권 다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신 회장이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은 식품 사업,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은 포장재와 화학 사업,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오프라인 유통 사업과 농심캐피탈, 농심NDS 등을 맡고 있다. 업계에선 농심 2세 형제들이 각각 식품·화학·유통으로 계열 분리해 각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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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이 주목하는 ‘미래 먹거리’

신동원 부회장은 신춘호 회장이 타계하기 이틀 전인 3월 25일 농심 정기주주총회에서 경영 모토에 대해 “농심이 잘해온 것은 그대로 하고, 잘못했던 것은 새롭게 개혁하는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농심의 미래 먹거리로는 건강기능식품과 비건(Vegan·채식주의자)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3월 사내 스타트업을 통해 건기식 브랜드 ‘라이필’을 출시했다. 올 초 선보인 채식주의 브랜드 ‘베지가든’ 제품군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이와 관련 신 부회장은 주총에서 “콜라겐 제품은 작년에 성공적으로 출시했다”면서 “대체육 부문은 조용히 준비해오며 작년에 제품을 출시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미뤘다. 올해 정식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시장 진출도 빨라질 전망이다. 농심은 현재 중국 칭다오 신공장과 미국 제2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미국 제2공장이 완공되면 미주 지역 공급망을 추가 확보하고, 남미 시장 공략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윤희훈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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