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9달러의 고가 마스크를 판매하는 스웨덴 업체 ‘에어리넘’은 재고 소진으로 4월까지 판매를 중단했다. 사진 에어리넘
69~99달러의 고가 마스크를 판매하는 스웨덴 업체 ‘에어리넘’은 재고 소진으로 4월까지 판매를 중단했다. 사진 에어리넘
이탈리아 명품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마스크. 사진 오프화이트
이탈리아 명품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마스크. 사진 오프화이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경과 사회적 경계를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아시아에 이어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를 강타한 3월 초 뉴욕타임스는 ‘부자들의 이색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고가의 마스크부터 개인 맞춤 진료와 전세기 서비스 그리고 개인용 벙커까지 상위 1%를 겨냥한 코로나19 관련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유명 영화배우 귀네스 팰트로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검은색 마스크를 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가 쓴 마스크는 스웨덴 마스크 업체 에어리넘(Airinum) 제품으로, 가격은 69~99달러(8만6000~12만3000원)다. 에어리넘 마스크는 5겹의 필터와 밀착감을 높인 소재 그리고 북유럽 감성의 디자인이 더해져 이른바 ‘패션 피플(패션에 민감한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판매 중인 공적 마스크 가격(1500원)의 57배가 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귀네스 팰트로 효과 덕에 모두 동이 났다. 에어리넘은 재고 부족으로 4월까지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며, 현재 선주문을 받고 있다.

명품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신분증은 필요 없지만, 서둘러야 한다. 입소문을 타고 금방 재고가 바닥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명품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오프화이트(Off-White)는 3월 중순 신상 마스크 8종을 출시했다. 오프화이트는 과거에도 마스크를 선보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명품’으로 더욱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100% 순면 소재에 오프화이트의 그래픽이 들어간 제품의 가격은 95달러(12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오프화이트 공식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서 8종 모두 품절된 상태다.

마스크와 함께 필수품이 된 손소독제도 고가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손소독제 업체 터치랜드(Touchland)는 스마트폰 같은 스프레이 형태의 용기에 손소독제를 담아 판매하고 있다. 터치랜드 제품 가격은 38㎖짜리가 12달러(1만5000원)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퓨렐(Purell) 손소독제 345㎖짜리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주문이 몰리면서 선(先) 주문 후(後) 출고 형태로 제품을 판매 중이다. 일반적으로 손소독제에 많이 들어가는 화학 성분인 에틸알코올을 천연 물질인 알로에 베라와 식물성 기름으로 대체하고, 천연향료를 이용해 수박, 라벤더 등 다양한 향으로 출시되는 점이 특징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이는 공항은 기피 장소 1순위가 됐다. 또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늘면서 해외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무기한 연기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부자는 다르다. 전용기를 빌려 코로나19를 신경 쓰지 않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항공 업계는 취항 노선을 줄이거나 없애면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데, 전세기 업체들은 코로나19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미국 손 소독제 업체인 ‘터치랜드’의 제품. 용량은 38㎖, 가격은 12달러다. 사진 터치랜드
미국 손 소독제 업체인 ‘터치랜드’의 제품. 용량은 38㎖, 가격은 12달러다. 사진 터치랜드
미국 재난구호 용품 업체인 ‘프레피’의 4995달러짜리 구급 가방. 사진 프레피
미국 재난구호 용품 업체인 ‘프레피’의 4995달러짜리 구급 가방. 사진 프레피

“코로나19 피해 여행을 떠나요!”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사를 둔 전세기 중개 업체 사우던 제트(Southern Jet)는 최근 일부 VIP 고객에게 “전용기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세요. 오늘 문의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긴 홍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사우던 제트에서 중형 비행기를 빌려 플로리다주에서 뉴욕주까지(약 2000㎞)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은 편도로 약 2만달러(2498만원)다. 또한 영국 업체 프라이빗 플라이(Private Fly)는 3월 17일 자사 블로그에 “지난 몇 주 동안 개인 전용기 주문이 늘었다”며 “여행 자제 권고와 입국 제한이 늘고 있지만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에 나가 있는 가족을 민간 항공기 대신 개인 전용기에 태워 데려오려는 고객들의 문의가 많다고 한다.

4995달러(626만원)짜리 구급 가방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미국 재난구호용품 업체인 프레피(Preppi)가 판매하는 이 가방을 사면 현재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고급형 N95 마스크 4개가 딸려온다. 알루미늄 코팅을 한 가죽 원단으로 만든 가방에는 발광다이오드(LED) 램프와 우비, 침낭, 유통기한 5년짜리 간편식과 물, 태양광 패널, 충전 케이블 및 장치 등을 비롯해 유명 브랜드 초콜릿과 홍차 티백, 치약 등 고급 취향을 반영한 물품이 담겼다. 블룸버그는 이 가방을 소개하면서 “대부분의 미국인이 손소독제와 화장지를 비축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있다”며 “하지만 일부는 제임스 본드(영화 007시리즈 주인공)가 쓸 법한 물건이 담긴 가방에 4995달러를 쓰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 가방을 비롯해 프레피 매출은 3월 들어 전월보다 무려 5000%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의 줄임말. 부유층의 일상)’가 낯설기도 하지만 명품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 단일 국가로 가장 큰 명품 시장인 중국에서 코로나19 여파로 명품 소비까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 자문사 번스타인이 보스턴컨설팅그룹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전 세계 명품 브랜드 매출이 최대 430억달러(54조원)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일부 명품 브랜드는 생산 공정에 차질을 빚어 다음 시즌 컬렉션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명품 브랜드도 있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3월 말까지 10일간 제네바, 비엔나, 피르스트에 있는 생산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모회사 LVMH는 크리스찬디올과 겔랑, 지방시의 화장품과 향수를 생산하는 공장 3곳에서 손소독제를 만들어 프랑스 보건 당국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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