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노엘 캐퍼러(Jean Noel Kapferer) 파리경영대학(HEC)교수 / 한국을 찾은 장 노엘 캐퍼러 HEC 교수. 사진 김지호 기자
장 노엘 캐퍼러(Jean Noel Kapferer)
파리경영대학(HEC)교수 / 한국을 찾은 장 노엘 캐퍼러 HEC 교수. 사진 김지호 기자

“명품의 미래는 하이브리드(융합)다.”

럭셔리 전략가인 장 노엘 캐퍼러 파리경영대학(HEC) 교수는 명품 시장의 성장을 위해 경계를 허물고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전통적인 럭셔리의 개념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을 받아들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의 럭셔리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충실하며, 온라인 트렌드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앞으로 2년 안에 일어날 변화를 과대평가하고, 10년 후에 일어날 변화를 과소평가한다”는 빌 게이츠의 말을 인용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6월 21일 럭셔리비즈니스인스티튜트(LBI)코리아의 특강을 위해 한국을 찾은 캐퍼러 교수를 만났다. 캐퍼러 교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한 경제학자이자 유수의 럭셔리 브랜드를 컨설팅해 ‘럭셔리 거장’으로 불린다.


50만원짜리 구찌 티셔츠가 팔리는 이유는

럭셔리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촌스러운 복고풍 패션과 둔탁한 어글리 슈즈가 인기 상품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프랑스 명품 기업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미국 팝가수 리한나와 손잡고 럭셔리 브랜드를 내놨다. 인수·합병(M&A)으로 럭셔리 왕국을 일군 LVMH가 30여 년 만에 선보이는 브랜드가 팝스타의 유명세를 앞세운 것이라니. 캐퍼러 교수가 말한 럭셔리의 미래는 이미 현실이 된 듯하다.

캐퍼러 교수는 “럭셔리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며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럭셔리의 잠재 고객을 약 30억 명’이라고 추산했다. 세계 인구의 40%가 럭셔리 시장의 잠재 고객이라면, 럭셔리는 더 이상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럭셔리의 핵심 요소로 인구통계학, 테크놀로지, 지속 가능성을 꼽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럭셔리 시장의 의제는 온라인 쇼핑과 경험, 소셜미디어, 디지털이 전부였지만 이젠 지속 가능성, 밀레니얼, 빅데이터, 개인화, 인공지능(AI) 등이 중요하게 논의된다. 또 시니어 세대는 럭셔리를 명성이라 여기지만, 밀레니얼과 Z세대는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다.

캐퍼러 교수는 “기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면서 “구찌와 발렌시아가는 길거리 감성을 반영해 티셔츠와 스니커즈를 만들어 판다. 과거엔 생각하지 못했던 콘셉트이지만, 지금 세대는 이런 과감한 시도에 열광한다. 럭셔리 고객은 너무 많다. 그들은 이미 클래식 제품을 갖고 있기에 새롭고 혁신적인 럭셔리를 원한다”고 말했다.

럭셔리는 지식재산(IP) 산업이다. 철학과 비즈니스의 결합이다. 미국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의 로고가 들어간 구찌 티셔츠의 가격은 390유로(약 51만원)지만,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을 비난하지 않는다. 티셔츠가 아니라 구찌라는 브랜드값이기 때문이다.

캐퍼러 교수는 “프리미엄은 제품에 가치를 매기지만, 럭셔리는 브랜드에 가치를 매긴다. 애플은 이 코드를 적용해 스마트폰을 경쟁사보다 더 비싸게 판다. 지난해 중국 부유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장 받고 싶은 브랜드’를 조사한 결과 애플은 샤넬·루이뷔통을 누르고 2위에 올랐다. 우리가 ‘명품’이라 부르는 럭셔리 브랜드와 동등한 대접을 받은 셈”이라고 했다.


파라마운트의 로고가 들어간 구찌 티셔츠는 50만원에 달한다. 사진 구찌
파라마운트의 로고가 들어간 구찌 티셔츠는 50만원에 달한다. 사진 구찌

장인 아니라 로봇이 만들어도 럭셔리

럭셔리를 처음 접한 소비자들은 명품을 갖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물질주의 시기를 거친 탈(脫)물질주의자들은 소유가 행복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새롭고 의미 있는 경험을 찾아 나선다. 그런 요구에 따라 럭셔리 시장은 커진다. 최근 부상하는 카테고리는 웰빙, 유기농 식품과 농장 직거래(DTC), 여행이다.

캐퍼러 교수는 “이제 럭셔리는 문화 산업으로 재건해야 한다. 루이뷔통과 프라다가 문화 사업에 투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찌는 로봇으로 운동화를 만들고 발렌시아가는 3D 프린터로 재킷을 만들었다. 이들은 기술을 적용해 배타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장인정신이 없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밀레니얼은 상관하지 않는다. 럭셔리는 흡혈귀처럼 다양한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흡입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도 중요한 의제다. 악어는 몇 년을 살까? 악어의 수명은 소셜미디어에서 비정부기구(NGO)가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달렸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악어가죽 판매를 금지했다. 시장에선 버섯과 파인애플 등으로 만든 바이오 가죽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캐퍼러 교수는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가치 사슬을 봐야 한다. 전통만 고수하는 럭셔리 브랜드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럭셔리라면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했다.


첨단 기술을 반영한 리처드밀의 시계는 요트를 즐기는 상류층의 럭셔리로 각광받는다. 사진 리처드밀
첨단 기술을 반영한 리처드밀의 시계는 요트를 즐기는 상류층의 럭셔리로 각광받는다. 사진 리처드밀

럭셔리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팔아야

캐퍼러 교수는 럭셔리의 미래는 하이브리드라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충실하며, 포괄성을 강화하고, 하이테크와 인간성을 적절히 융합하고, 지속 가능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위스 시계 브랜드 리처드밀은 전통적인 소재 대신 F1 경주용 자동차와 항공우주 산업에서 쓰는 티타늄과 알루미늄 등을 사용해 만든 20g짜리 시계를 선보였다. 가격이 2억원으로 람보르기니 한 대 값과 맞먹지만, 1년은 기다려야 살 수 있다. 시계 업계가 정통성에 집중하는 데 반해, 리처드밀은 상류층이 즐기는 고급 레저 활동에 적합한 기술력을 접목해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캐퍼러 교수는 “럭셔리는 당신의 클래스를 한 단계 높이고 여행하게 하는 여행권과 같다”면서 “럭셔리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럭셔리 업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샤넬과 펜디는 한국에서 처음 신상품을 출시했고, 디오르는 방탄소년단(BTS)의 해외 투어 의상을 제작했다.

캐퍼러 교수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인상 깊게 봤다면서 “한국은 중국 진출을 위한 관문이다. 한국인에게 인정받으면 안전하다. 럭셔리 시장에서 한국은 오피니언 리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도 럭셔리 시장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캐퍼러 교수는 “인도에서 결혼할 때 입는 사리는 무척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럭셔리라고 부르진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럭셔리는 세계를 포용해야 한다. 세계적인 감각이 있는 기업이라면 럭셔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은영 조선비즈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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