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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IFRS17 도입을 앞두고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은 생보사 ‘빅3’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사진 조선일보 DB

2021년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이 2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보험업계 변화가 눈에 드러나고 있다. 보험사들은 강화된 회계제도에 맞춰 채권을 발행하거나 사옥을 팔아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상품 판매 비중도 바꾸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매출 효자 상품이었던 저축성 보험 판매가 줄어 실적 악화 우려도 나온다.

IFRS는 2011년부터 전 업계에 도입된 회계기준으로 자산과 부채를 시가(時價)로 바꿔 산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험업계에 적용한 것이 IFRS17이다. 현행 기준을 적용하면 보험사는 보험 가입 시점의 자산 운용 수익률 등을 기준으로 보험사의 ‘부채’에 해당하는 책임준비금(보험사가 만기 시 보험 계약자에게 주기 위해 쌓아 놓는 적립금)만 쌓으면 된다. 그런데 새 회계기준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손실(혹은 이익)을 미리 반영해 더 많은 책임준비금을 쌓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만기가 10년 남은 1000만원짜리 보험에 매년 10% 확정금리를 줘야 하는데 운용 수익을 5%밖에 못 올리는 보험사가 있다면, 지금 회계기준으로는 1000만원 정도만 쌓고 매년 발생하는 역마진 손실 50만원씩을 10년에 걸쳐 매년 손실 처리하면 된다. 그러나 새 회계기준이 도입되면 앞으로 줘야 할 돈인 500만원(50만원×10년)을 한꺼번에 ‘부채’로 잡아 책임준비금으로 쌓아야 한다. 보험금을 돌려받는 소비자 입장에선 더 안전하지만 금리가 높은 확정금리형 상품을 많이 팔았던 보험사 입장에선 일시에 막대한 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예금보험공사가 5월 발간한 ‘금융리스크리뷰(봄호)’에 따르면 부채의 시가 평가에 대비해 보험사들이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 자금 규모는 41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IFRS17 도입은 생명보험사에 더 큰 부담이다. 손해보험사가 실손 중심으로 보험금을 보장해주는 데 비해 생보사는 미래에 거액의 보험금이 한번에 나가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업계 ‘빅3’인 삼성·한화·교보생명은 1~2년 전부터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사옥을 팔고 있다. 자본 확충이 시급한 상황에서 자산 운용 매력도가 떨어진 부동산을 팔아치우고, 이를 임차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2016년 초 부영그룹에 서울 태평로 본사 사옥을 5000억원대에, 교보생명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옥 5곳을 총 644억원에 매각했다. 한화생명도 지난해 서울 화곡동 사옥을 373억원에 매각했고, 향후 4개 사옥을 추가로 판다는 계획이다. 

생보사들은 또 신종자본증권(영구채)과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최대 10억달러(약 1조7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했고, 동양생명도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한화생명은 지난 4월 10억달러, KDB생명은 2억달러 발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보험사가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돈에 대한 이자가 최대 7%에 달해 보험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보험사들이 주로 수익을 내고 있는 운용자산 수익률이 영구채 투자자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자에 못 미치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흥국생명이 발행한 영구채의 조달 금리는 4.475%였는데, 이는 같은해 회사의 운용자산 수익률(3.59%)보다 1%포인트가량 높다. 최근 KDB생명이 발행한 영구채 금리는 무려 7.5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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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의 장효선 연구원은 “IFRS17같이 앞으로 자본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기를 맞게 된다면, 자본력이 취약한 보험사들의 부담이 심해질 것”이라며 “보험사들의 자본력 차이는 시장지배력과 투자수익 차이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IFRS17 도입에 대비해 저축성 보험 판매를 자제했던 것은 실적 부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저축성 보험은 만기가 되면 가입자에게 원금에 이자를 붙여 돌려줘야 하는 상품이다. 부채로 잡히는 부분이 많아 책임준비금을 많이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보험사들 실적 부담 커져

보험사가 저축성 보험 상품을 팔아 버는 수입 보험료는 3년째 감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3~6월) 생보사들의 저축성보험 수입보험료는 8조6287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11조2950억원)보다 23.6% 줄었다. 저축성 수입 보험료 규모가 보장성 수입 보험료를 밑돈 것은 2011년 1분기 이후 처음이었다. 보험 상품 판매 수익이 줄어들다 보니 올해 1분기 24개 생명보험사의 순이익은 1조23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7%나 감소했다. 

보험사들의 실적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수익 악화를 메우기 위해 비용을 줄이거나 소비자에게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가입자들이 받는 혜택이나 가격은 고정돼 있지만, 신규 가입자의 혜택은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보험사 관계자들 설명이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IFRS17 도입을 앞두고 보험사들이 수익성 위주의 내실 경영을 선포했다”며 “결국 앞으로 나올 상품은 기본 보장을 줄이고 특약을 늘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은 “보험업계 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면서 “보험사 수익이 나빠지면 보험 상품 가격이 오르거나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eyword

IFRS17(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17조
보험업에 적용되는 새 국제회계기준으로 2021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보험의 부채(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금) 평가 방식을 계약 시점 기준 원가가 아니라 매 결산기의 시장금리 등을 반영한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11년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세계 공용의 회계기준으로 IFRS를 제정했는데, 이 중에서 보험사판 회계기준이 17조다. IFRS가 다루는 내용에 따라 번호가 매겨져 있다. 예컨대 제품 판매에 따른 수익 발생 시점을 과정에서 완성 단계로 늦추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새로운 회계기준은 IFRS15에서 다룬다.

plus point

자본 확충에 오너 리스크까지 엎친 데 덮친 동양생명

총자산 30조3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7위의 생명보험회사 동양생명이 외부적으로는 IFRS17에 따른 자본 확충 부담, 내부적으로는 경영권 불안이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겪고 있다.

동양생명은 지난 2015년 6월 중국 생명보험 업계 10위권인 안방생명보험에 인수됐다. 안방생명보험의 모회사인 중국안방보험은 중국 보험 업계 3위로 2004년 자동차보험사로 출발해 여러 보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후 동양생명은 든든한 중국 대주주를 등에 업고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공격적으로 팔며 덩치를 불려 왔다. 다른 보험사들이 IFRS17 도입을 앞두고 저축성보험 대신 보장성보험 판매에 집중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안방보험에 608억위안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사실상 중국 당국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안방보험의 해외자산인 동양생명이 다시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저축성 보험 판매로 인한 자본 확충 부담감에 ‘오너 리스크’까지 겹친 것이다.

그러나 보험업계에서는 당장 동양생명의 주인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설령 주인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동양생명 상품에 보험료를 낸 고객의 피해는 사실상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금융법상 보험회사가 매각되더라도 보험 증서는 모두 제3자가 인수해 가입자를 보호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인수자는 기존 보유 계약, 즉 부채까지 인수하게 된다”면서 “가입자들의 보험 권리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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