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글로벌 원유 수요가 계속 감소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유류 펌프. 사진 AP연합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글로벌 원유 수요가 계속 감소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유류 펌프. 사진 AP연합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 연대체)가 원유 감산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국제 유가가 반등할지 주목된다. OPEC+는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 달간 매일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했다. 이는 OPEC+가 결정한 감산 규모 중 역대 최대 수준으로, 글로벌 원유 공급량(하루 1억 배럴)의 약 10%에 해당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 충격을 상쇄하기에 아직은 부족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OPEC+는 4월 12일(이하 현지시각)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 달간 매일 970만 배럴의 원유(가스콘덴세이트 제외)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OPEC+는 4월 9일 화상회의에서 하루 100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멕시코의 반대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바 있다. 멕시코는 자국에 할당된 감산량인 하루 40만 배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10만 배럴만 감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멕시코의 요구를 반대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4월 12일 회의에서 결국 이를 수용하면서 합의가 타결됐다. 4월 9일 발표된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감산 기준은 2018년 12월 수준이다. 하루 250만 배럴씩 감산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산유량을 각각 하루 850만 배럴로 줄여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 직후 트위터에 “OPEC+가 통 크게 합의했다. 이 합의가 미국의 에너지 분야 일자리 수십만 개를 구할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감사한다. 모두에게 대단한 합의다”라고 적었다. 이어 러시아 크렘린은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전화 통화로 OPEC+의 감산 결정을 지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3월 6일 OPEC+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결렬된 뒤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선언으로 촉발한 ‘유가 전쟁’이 일단락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 로이터통신은 OPEC+소식통을 인용해 “OPEC+에 참여하지 않은 산유국들(캐나다, 브라질, 노르웨이 등)이 감산에 동참하고 각국의 전략 비축유 구매 가능성을 고려하면 실질적 감산량은 하루 2000만 배럴이 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감산 합의로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국제 유가가 코로나19 위기 속에 지속적인 상승세로 반전하는 동력을 얻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코로나19 위기로 감소할 원유 수요량이 하루 3000만 배럴로 전망되는 만큼 OPEC+의 감산량은 국제 원유 시장의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팩츠 글로벌 에너지의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감산 폭이 충분히 크지 않다”며 “수 주 내에 바다에 떠 있는 초대형 유조선들의 원유적재량이 사상 최대 규모로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티은행의 글로벌 상품 책임자 에드 모스도 “3월 중순에서 5월 말 사이에 10억 배럴이 넘는 대규모 재고를 방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투자은행 레이먼드 제임스의 에너지 전문가 무함마드 굴람은 AP통신에 “이번 감산 규모가 전례 없이 크기는 하지만, 코로나19가 원유 수요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전대미문”이라고 했다.


유가 하락세 반전시키기엔 역부족

시장의 반응도 아직은 냉담하다. 앞서 4월 9일 하루 1000만 배럴 감산 가능성이 전해졌지만,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0% 가까이 급락했다. 이어 합의안이 발표된 다음 날인 4월 13일에도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0.35달러(1.5%) 하락한 22.41달러로 마감했다. 4월 14일에도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2.30달러(10.3%) 급락한 20.11달러로 마감했다. 이날 WTI는 장중 한때 19.95달러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특히 OPEC+의 합의 타결을 촉진하려고 미국이 멕시코에 할당된 감산량 중 하루 약 30만 배럴을 떠안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부가 산유량을 강제할 수 없는 미국 석유 산업의 특성상 미국이 ‘대리 감산’을 실행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멕시코가 원유 감산에서 산유국들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 사외이사 출신 카를로스 엘리손도는 “기뻐할 이유가 없다”며 “국제 사회 합의에서 이렇게 벗어나는 것은 대가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평생 무엇도 공짜로 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며 “어떤 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멕시코에 값을 치르게 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감산 합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하루 2000만 배럴 감산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일반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매일 약 1000만 배럴이 아니다”라면서 “협상에 관여해 온 바, OPEC+가 감산을 생각하고 있는 수치는 매일 2000만 배럴일 것”이라고 적었다. 미국 정치 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합의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감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산 조치에도 세계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기 위한 가격 덤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한다. 5월부터 본격 감산에 돌입하는데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인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는 OPEC+의 원유 감산 합의 이후에도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하는 5월 인도분 원유 공식 판매 가격(OSP)을 두 달 연속 인하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아람코가 유가 인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국제 원유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비용 지출을 감내하겠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plus point

과열된 WTI 연계 ETN 거래 정지…언젠가는 오르겠지

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언젠가는 기름값이 오르겠지’하는 기대 심리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연계 상장지수증권(ETN) 투자가 과열되고 있다. ETN은 특정지수의 수익을 추종하도록 증권회사가 발행한 파생결합증권이다. 한국거래소는 4월 16일 투자 과열 우려를 낳은 WTI 연계 ETN 3개 종목의 거래를 정지했다. 국내에서 ETN의 거래가 정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월 8일부터 14일까지 5거래일간 ETN 괴리율이 30%를 넘은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 등 3개 종목의 거래가 하루 정지됐다. 괴리율은 ETN 가격과 실제 지표 가치의 차이를 뜻한다. 최근 국제 유가 급락 이후 매수 과열로 비이성적으로 괴리율이 높아졌다. 4월 14일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 종가는 전일보다 65원(2.73%) 하락한 2320원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지표 가치는 1616.02원으로 괴리율은 43.56%에 달한다. 지난 8일 95.40% 수준이던 괴리율은 43.56%까지 낮아졌지만, 여전히 과열된 상태다. 같은 날 QV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과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 괴리율도 각각 35.56%와 37.75%를 기록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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