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정치 실험을 시작했다. 집권 과반 여당을 계파 연합 형태의 임시 지도부의 손에 맡긴 것이다. 여당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 지도부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가 1월1일 새벽, 이부영 당시 당 의장이 3일 각각 사퇴했다. 집권 과반 여당이 졸지에 지도부 공백 사태로 한 해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랴부랴 등장한 수습책이 여당 내 각 계파 연합 형태의 임시 지도부 구성이었다. 여당이 정식 지도부 대신 임시 지도부를 택한 데는 시간적 요인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오는 4월2일 전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여기서 정식으로 새 지도부를 뽑게 돼 있다. 전당대회를 불과 석 달 앞둔 시점이라, 당분간 ‘임시’ 형태를 취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년 초부터 스스로 ‘비상’ 상황을 만들고, 임시 지도부를 구성하는 여당의 행태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여당이 말하는 비상 상황은 국가보안법 처리 실패다. 나라 전체의 위기나 비상이라기보다는, 여당 내부와 핵심 지지층 사이의 불만과 갈등을 비상이라며 지도부가 총사퇴한 모양새다.

 위기의 원인이 어찌됐든, 그 수습 과정에서 각 계파들의 보여준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열린우리당 내에 4~5개의 계파 내지는 정파가 존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이 주축이 된 ‘참여정치연구회’와 보수·실용적 성향의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정도를 빼곤 어느 계파도 계파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단 당 지도부 공백이라는 상황이 발생하자 각 계파는 드러나지 않게 신속히 움직였다. 1월1일 저녁부터 72시간 동안 이뤄진 각 계파의 협상·조율이야말로 5일 출범한 여당 임시 지도부의 산파였다고 할 수 있다.

 여당 내 계파의 구분은 생각처럼 단순하진 않다.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데다, 겹치기 출연자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계파 내지는 정파라 할 수 있는 그룹들이 형성돼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당 내의 노 대통령 사람들은 흔히 언론에서 ‘친노 직계’로 불리곤 한다.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과 정무수석 출신의 유인태 의원과 원혜영 의원, 호남 출신 측근인 염동연 의원 등이 친노 직계의 중진급이라면, 청와대 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의원과 비서관 출신의 서갑원·백원우 의원 등이 386세대에 해당한다. 이들 친노 직계들은 이념상 중도에 가깝고 여야 관계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화합형이다. 또 노 대통령이 올해를 민생·경제 집중의 해로 삼자 당내에서 이 같은 국정 운영 기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도 이들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말하는 ‘친노 직계’에는 이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그룹도 있다. 유시민·김원웅 의원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주축이 된 그룹이다. 이들은 당내에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라는 계파 모임을 운영 중이다. 이들이 문희상·유인태·이광재 그룹과 구별되는 것은 국보법 폐지 등의 현안에서 강성 기조를 유지해 왔고, 당권을 장악한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그룹’을 강력히 비판해 온 비주류의 축을 이룬다는 점에서다. 이들은 ‘개혁당 그룹’으로도 불린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전에 개혁당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주축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에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출신인 영화배우 명계남 씨 등이 중심이 된 ‘국민참여연구회’가 등장, 친노 그룹 내 경쟁에 불을 댕겼다.

당내에서 ‘DY(정동영 장관의 이름 영문 이니셜을 땀) 사단’이라고 부르는 정동영 그룹의 또 다른 호칭은 ‘당권파’다. ‘천신정’으로 불리는 3인방이 주축인 계파다. 천신정 그룹을 낳은 모태는 16대 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바른정치모임’이다. 천신정 세 사람 말고도, 김한길·정동채·이강래 의원 등이 주축을 이룬 이 모임은 김대중 정부 때 여당 정풍운동의 선두에 섰고,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나섰다. 현재 이 모임 회장은 이강래 의원이 맡고 있고, 민병두 당 기획위원장, 김현미 대변인, 전병헌 원내부대표 등 초선들을 영입해 여전히 세를 과시하고 있다.

 ‘DY 사단’과 더불어 여당의 양대 축을 이루는 것이 ‘GT(김근태 장관 이름의 영문 이니셜) 사단’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 장관은 1980년대 재야 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런 만큼 재야와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그래서 ‘재야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재야파 중진에는 이해찬 총리를 비롯, 임채정 현 당 의장, 장영달 의원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 재야파 중진들은 각자 강한 개성을 발휘해 한 틀에 묶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으나 필요한 순간마다 놀라운 결속력을 발휘한다. 소장 그룹에는 문학진 의원과, 80년대 후반부터 학생운동을 이끈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의 이인영·우상호·임종석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이 운영 중인 당내 모임은 ‘국민정치연구회’다.

 또 이처럼 거물 정치인을 중심으로 묶인 조직과는 달리 ‘안개모’나 ‘일토삼목회’처럼 이념이나 전직 경력 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그룹도 있다. 3선의 유재건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안개모는 당내 강경 개혁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내 보수 성향을 대변하고 있다. 일토삼목회는 전·현직 각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며,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가 회장인데, 핵심 인물이 문희상·유인태 의원이라 넓은 의미의 친노 직계로 분류된다.

 또 숫자는 적지만 주목받는 그룹이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뛰어든 이른바 ‘독수리 5형제’다. 이우재 전 의원을 좌장으로, 이부영 전 의장, 재선의 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 5명이다. 이들은 다른 계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정치력과 결집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같은 계파들은 여당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또한 현 여권을 관찰하는 핵심 포인트이기도 하다.

박두식 조선일보 정당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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