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복 도이치자산운용 마케팅부 상품개발부장

 “정년에 대한 불안, 자기개발로 돌파구 찾는 중”

 임상연기자 sylim@seoulfn.com



 
지난 2004년 12월10일 저녁 7시30분 서울 종각 영풍빌딩 앞.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퇴근길을 서두르는 샐러리맨들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12월 중순의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도 모르지만 종로 거리를 거니는 샐러리맨들의 움츠린 모습이 최근의 경기 침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분위기다.

  약속 시간에 늦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자에게 달려온 한 샐러리맨도 업무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피곤하시죠”라고 인사 대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렇죠 뭐”라며 특유의 수더분한 미소를 짓긴 했지만 하루 일과에 더욱 늘어난 것 같은 눈가의 주름은 감추지 못했다.

  임종복 부장(39)은 2004년 11월 하나알리안츠에서 도이치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이치자산운용은 그에게 세 번째 직장. 1992년 국민투자신탁(현 푸르덴셜투자증권)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임 부장은 지난 2002년 10년간 다녔던 정든 직장을 떠났다. IMF 이후 계속된 회사의 구조 조정 등 고용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오랫동안 정들었던 직장을 나오게 했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그렇듯이 1997년 IMF 이후 몇 년간은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구조 조정이 한창이었던 ‘현대’계열에 근무했던 터라 다른 사람보다 고용과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컸죠. 오랜 결심 끝에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첫 직장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인 하나알리안츠투신에서 도이치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는 2년도 채 안 걸렸다. 더 좋은 업무 환경과 더 좋은 조건이 그를 움직이게 한 것.

  그는 금융권 구조 조정 한파 속에서도 좋은 직장으로 ‘올라타기’에 성공한 케이스다. 복지가 잘 돼 있다는 외국계 금융기관의 동년배들 중에서 다소 빨리 부장이라는 직급을 달았고 연봉도 3000만원 이상 올랐다.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1년에 벌어들이는 소득이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처럼 좋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배경에는 그의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지만 13년 직장생활에서 터득한 ‘이직=신분 상승’이라는 나름대로의 신념(?)도 한몫 했다.

 “스카우트가 들어올 때 처음처럼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인간적인 정’도 중요하지만 다가온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3년 직장생활 동안 스스로가 조금 변했다고 한다.

  “솔직히 1992년 처음 입사 당시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많이 탁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은 열정이죠. 열정은 순수한 것이고요. 하지만 직장생활로 경제적 동물이 되다 보면 열정보다는 열망이 커지는 것 아니겠어요.”

  임 부장의 소득은 여타 동기생이나 동년배들과 비교할 때 30% 이상 많다. 하지만 일평균 근무시간을 감안하면 그럴 법도 하다. 회사에서 상품 개발을 담당하는 그는 매일 아침 8시 일반 샐러리맨과 비슷하게 출근하지만 퇴근시간은 밤 11~12시가 보통이다. 하루 19~20시간, 주 5일 근무를 감안해도 한 달 평균 150시간 이상을 일한다. 오전 9시~오후 6시에 출퇴근하는 일반 샐러리맨과 비교할 때 2배 이상 많이 일하는 셈이다.

  “근무시간 이후에는 연장선상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지만 주로 해외 유명 상품 스터디 등 자기 개발에 시간을 보냅니다. 저라고 해서 사오정, 오륙도라는 이 시대 샐러리맨의 비극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능력도 좋고 직장도 좋지만 정년에 대한 불안감은 그 역시 최대 고민거리다. 직장인의 평균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젊고 영특한 후배들은 밑에서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는 항상 경계심과 불안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권 구조 조정 속에서 능력 있는 많은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직장을 잃거나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나마 자리를 옮긴 사람들은 조금 낫지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 안도하고 채찍질하게 됩니다.”

  정년을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꺾는 그의 모습에는 경제적 동물보다는 오히려 피곤한 가장의 그늘이 오버랩됐다.

  이처럼 성공과 불안이 공존하는 가운데서도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임 부장은 가족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 그는 가족의 유일한 남자다. 지난 95년 아내와 결혼, 2명(8살, 3살)의 딸을 뒀지만 아들 욕심은 없다. “아들 둬야죠”라고 묻자 “유일한 남자로 오랫동안 남고 싶다”며 “특별히 아들 욕심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임 부장은 일을 핑계로 평일에 딸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점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2003년부터 5평 남짓의 주말농장을 빌렸다. 주말에 가족들과 강서구에 위치한 주말농장을 찾아가 고추나 토마토 등을 심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친구나 회사 선후배들을 만날 때 항상 주말농장을 권합니다. 샐러리맨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평소 가족들이랑 대화하며 마음을 털어놓기 힘들잖아요. 오랜 시간 같이 일도 하면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주말농장은 고립화되는 가족에게는 참 유익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2005년에는 평수를 2배 정도 늘릴 계획입니다.”

  현재 그가 13년 직장생활로 모아둔 자산은 3억원 정도인 33평 아파트와 1000만원 정도의 예금이 전부다. 자수성가한 2명의 딸을 둔 여느 중산층 아빠로서 양육비나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 주식이나 펀드 등에도 투자해 보긴 했지만 워낙 소액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2004년으로 주택 담보 대출 등 부채가 줄어 순자산이 늘었다는 것이 성공이라면 성공이란다.

  임 부장은 이제 여유가 생긴 만큼 노후나 자녀 교육을 위해 재테크에도 좀 더 신경을 쓸 예정이다.

  “교육비가 계속 늘어나겠지만 다소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노후나 딸들을 위해 재테크를 할 생각입니다. 2005년부터는 여유 자금 중 50%는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예금 MMF 등 안전 상품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재테크와는 반대로 지출에 대해서는 경기가 불투명한 만큼 크게 생각한 것도 없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2~3년 후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집을 옮기는 것을 생각하는 정도다.

  소득이 늘어난 만큼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소득의 여유가 생긴 것은 이제부터인데 쓸 것부터 생각하면 안 된다”며 “딸들이 계속 커 가고 있어 지출보다 재테크나 저금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불투명한 경제 전망도 지출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기관 종사자로 다소 긍정적인 경제 전망을 갖고 있다는 그 역시 2005년 전망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2005년 상반기까지는 경기 침체가 이대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더욱이 특별한 경기 부양책이 없다면 내년 하반기에도 경기가 살아나리란 보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송년회 등 모임으로 친구들과 만나면 2005년에도 허리띠를 조르고 또 조르자며 주문을 외우다시피 합니다.”

  임 부장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샐러리맨들의 운명도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돈키호테처럼 포부를 더욱 높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60세 이상까지 직장생활을 할 겁니다.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될 수 있다면 사장 자리에도 앉고 싶습니다. ‘정점에 올라서는 것’ 이게 바로 샐러리맨의 공통된 꿈 아닌가요.”

  불혹의 플랫폼 앞에 선 임 부장의 지쳐 보이는 어깨가 이 시대 가장이며 경제 주체인 3545세대의 모습인 듯 애처롭게 보였지만 언젠가 정점에 서리라 외치는 눈과 미소는 따뜻하고 뿌듯하게 느껴졌다. 



 리리충 상하이 선물거래소 차장


 “딸 교육비 위해 수입의 70% 저축해”

 상하이 = 최범수 기자 gaia@chosun.com



  인터뷰가 약속돼 있는 2004년 12월10일 상하이 시내의 호텔 커피숍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모던한 인테리어로 서울의 특급 호텔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길 하나 건너에는 공중 화장실이 흉물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에서 나오는 오수가 도로로 넘쳐 나고 있었다. 신호등이 있었지만 택시도 사람들도 지키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 걸맞지 않은 무뚝뚝한 서비스를 받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상하이선물거래소 리리충(36) 차장이 나타났다. 노타이 차림이었지만 짙은 감색 슈트와 블루 셔츠가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가.

 “전문 직종의 화이트칼라란 점을 고려하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의 조건을 들라면 어떤 것을 꼽겠는가.

 “월 평균 2만위안(약 268만원. 중국의 낮은 물가를 고려하면 실질 가치는 서너 배 정도로 뛴다)에 집과 차가 있고, 가정부를 두고 있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중산층이라고 본다. 지인 중에 한국 사람이 있는데 상하이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보다 더 안락하게 산다고 말한다(웃음). 상하이, 베이징, 선전, 그리고 광저우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곳이다. 중국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안 된다.”

직장 때문에 한 달 전 가족을 베이징에 남겨두고 혼자 상하이로 왔다는 리리충씨는 아직 상하이에는 아파트를 마련하지 못했지만 베이징에 방 3개의 31평대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차는 대우 프린스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연봉은 22만위안으로, 해외 근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에 비해서 높은 편이라고.

 중국의 경우 주택 가격의 10~30%만 있으면 2%대의 저리로 융자를 받아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아파트 소유자들이 대부분이 대출금을 갚는 데 소득의 많은 부분을 할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에게 “당신도 그런 경우인가”라고 묻자 베이징에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는 “저축을 통해 구입한 것이지만 상하이에 한 채를 더 구입해야 한다면 융자를 통해 사들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의 많은 부부가 맞벌이라고 한다. 자신도 맞벌이였지만 부인 주연씨가 2년 전 딸 후안그를 낳은 다음부터는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사표를 냈고 지금은 자기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커플들은 부부가 합쳐 월 소득이 2만위안이지만 내 경우 혼자서 그 정도를 벌 수 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사표를 내게 했다. 아내는 회계 직종에서 일했는데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 아내의 친구들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아내를 무척 부러워한다(웃음).”

 리리충씨는 부인이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 바람직하기 때문에 사표 내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했다고 한다. 1979년 ‘1가구 1자녀 갖기’ 이후 중국에선 한 자녀에게 일가가 모든 것을 쏟는다며 ‘샤오황디’(小皇帝)란 말까지 생겨났다. 그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아 부모 외에 조부모와 외조부모까지 딸 후안그를 바라보며 살고 있단다.

 재테크 방법으로 어떤 것을 선호하는가.

 “보수적인 편으로, 우리 부부를 위한 노후 보험 외에는 전액 저축에 의존한다. 주식 투자는 거의 안 한다.”

 재테크 등 돈과 관련된 것은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고, 자신은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인가라고 묻자 일급비밀이라며 대답을 피한다. 질문을 돌려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족들에게 어떤 것을 선물할 계획인가 물었다. “아내에겐 진주 목걸이, 딸에겐 장난감을 선물할 생각”이라는 그에게 예산을 묻자 1만위안(144만원)까지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용돈이 많은 편이라고 말하자 “월급 외에 부수적으로 생기는 것이 있다. 그것을 아내에게 들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저축을 어느 정도 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안 쓰는 편이다. 집도 넓혀야 하고, 차고 새로 구입하고, 조만간 아이 교육비로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수입의 70% 정도를 저축하고 있다. 이 중 3분의 1이 아이를 위한 저축이다.”

 한국 돈으로 15만원이면 가정부를 둘 수 있을 정도의 물가이기 때문에 급여의 30%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경제적인 정보는 어디에서 얻고 있는가.

 “인터넷 뉴스와 TV를 통해서이다. 친구들은 신문을 보지만 난 인터넷을 더 선호한다.”

 최근 가장 큰 관심 사항은 무엇인가.

 
“당연히 위안화 절상 문제다. 그 다음은 건강이고.”

 위안화가 절상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암묵적으로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다. 최소 5%라고 본다.”

 취미 생활로 즐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테니스를 치고 있고, 몇 달 전부터는 골프를 시작했다.”

 중국도 주 5일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주말에는 어떻게 보내나.

 “가족과 근처로 피크닉을 가고 아내와 함께 영화도 보고 부모님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즈음에서 중국의 소득 수준과 소비생활 패턴을 들여다보자. 인구 통계조차 오차를 1억명으로 보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공식 집계를 잡는 것이 힘들지만 아무리 작게 잡아도 4000만명은 시쳇말로 ‘백만장자’라고 한다.

 이들의 소비생활은 흔히 그리는 중국의 그것과는 천지 차이다. 중국 안에서 비교하기보다는 유럽 등 서구의 상류층과 비교해야 한다. 벤츠와 BMW를 몰고, 철 따라 해외여행을 즐기며, 명품 아니면 걸치지 않는다. 물건이 필요해서 산다기보다는 쇼핑을 즐기는 것이다. 이들이 유독 브랜드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녀 교육에 신경 쓰고 고등학교부터는 유학을 보내는 것이 정착됐다.

 이 같은 백만장자 바로 뒤에 포진해 있는 이들이 바로 리리충씨 같은 중산층이다. 중산층에 대한 규정 자체가 힘든 실정이지만 대략 1억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0년까지 이 숫자는 4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출간된 ‘중국 중산층 연구’에서는 이들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가 돼 있다. 제일 조건은 15평 이상 되는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해서도 상세한 조건이 제시돼 있는데 밖보다 안을 꾸미기 좋아하는 중국의 특성이 여기에도 반영돼 한국보다 호화롭다는 게 중론이다. 예를 들면 응접실은 나무 바닥에 양모 카펫이 깔려 있어야 하고 유화 두 점과 열대어 수족관, 그리고 DVD 등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 등이다. 냉장고 외에 홈바가 있어야 하는데 그 안에는 마오타이주, 뉘얼훙, 스카치 위스키, 브랜디, 와인 등이 구비돼 있어야 한다. 신문 구독도 중산층의 표식인데, 특히 경제신문은 부의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구독해야 한다고.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리리충씨에게 마지막으로 중국 경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질문했다.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프트랜딩을 위해 중국 정부에서 컨트롤하려고 하지만 8% 이상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막말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국제박람회가 열릴 때까지는 낙관한다.”

 중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마츠다 겐지로 세콤 영업부 주임

 “내 집 마련이 가장 시급한 문제”

 도쿄=오성택 기자 ost69@chosun.com



 2004년 12월8일 저녁 7시, 도쿄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인 아카사카 역 근처는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일터를 빠져 나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건 일본의 직장인들도 다를 게 없다.

 마츠다 겐지로(36)도 빼곡한 시민들 틈에 섞여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는 5분 거리. 집이 있는 도쿄 근교의 미타카까지는 30분 남짓 걸린다. 승차권 자동판매기에서 210엔(한화 2125원)짜리 티켓을 끊은 마츠다씨는 이미 승객으로 빼곡한 전철에 올랐다.

 마츠다 겐지로는 보안업체인 ‘세콤’(SECOM)사에 근무한다. ‘본점 영업 제2부 제1과 주임’이 그의 공식 직함이다.

 “영업사원이라 낮에는 주로 고객을 찾아다니고, 오후 늦게 사무실에 와서 밀린 업무를 봅니다. 보통 오전 8시 반에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은 10시가 넘기 일쑤죠. 주 5일 근무라 일주일에 이틀은 쉬는 게 낙입니다.”



두 아이 아빠 된 후 좋아하던 술자리도 자제

 8년 전 요코씨(31)와 결혼해 슬하에 딸(4)과 아들(2)을 두고 있는 그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4일은 동료, 친구들과 퇴근 후 한 잔을 즐겼다”며 웃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론 “가정적으로 변했다”고 고백한다.

 전기업체에서 근무하다 세콤으로 옮긴 지 4년째라는 그의 1년 연봉은 800만엔(한화 8096만원) 남짓. 연 200%의 상여금을 포함한 액수다. 또래의 평범한 직장인과 비교할 때 100만엔 정도 많거나 적은 연봉이라고 한다.

 “월급은 아내가 관리하고 저는 용돈을 타 씁니다. 한 달 6만엔(60만7200원) 정도가 정해진 용돈인데, 보통 1만엔 정도 초과합니다. 신용카드는 하나 가지고 있지만 절대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제 주변 동료나 친구들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의 직장인 문화가 그렇듯 술값, 밥값은 당연히 각자 먹은 만큼 부담하는 ‘더치페이’로 이뤄진단다. 또 자정을 넘겨 술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술값 지출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지하철, 전철 등이 끊기면 부득이 택시를 타야 하는데 할증까지 붙은 택시 요금은 1만엔을 훌쩍 넘기기 일쑤라 대중교통으로 집에 갈 수 있을 때까지만 술을 마신다.

 “생활비가 얼마나 들고, 저축을 포함한 재테크를 어떻게 하는지는 저는 잘 몰라요. 아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제 관심사는 제 일에 대한 부분이 큽니다. 오랜 경기 불황을 겪으면서 종신 고용의 신화가 끝난 뒤라 언제까지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외국어, 특히 영어 공부가 필수라 공부는 해야겠는데, 솔직히 손을 못 대고 있어요.”

 마츠다씨는 틈틈이 공부를 해 ‘시스템 경영 관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현재의 직장이 언제까지나 자신을 고용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고, 그 자신도 정년까지 회사에 다닐 생각은 없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상 중인 사업을 실천에 옮겨 월급쟁이가 아닌 개인 사업자가 되고 싶다.



 1년에 5~6회의 가족 여행이 유일한 낙

 “일본은 물가가 비싸고, 게다가 저는 아이가 둘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대략 800만엔 정도 저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당장의 목표는 우리 가족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내 집을 갖는 것이에요. 3LDK(LDK는 Living room, Dinning room, Kitchen의 약자. 방 3개에 거실과 주방, 욕실이 있는 형태)나 4LDK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내 집 마련은 3년 후쯤으로 생각합니다. 대부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생각입니다. 장기 대출로 30년 정도 원금, 이자를 갚아야 하죠. 운 좋은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할 겁니다.”

 미타카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마츠다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방과 거실, 주방이 1자 형태를 이룬, 한국으로 치면 ‘원룸’에 가깝다. 수입에 비해 작은 집에 사는 셈인데, 이유가 있다. ‘월세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는 사람이 돈을 받지 않고 집을 빌려줘 살고 있어요. 이만한 크기의 집도 월 6만~7만엔 정도는 줘야 하거든요. 비용이 그만큼 들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저축을 할 수 있죠. 일본 부동산은 거품이 꺼졌다고는 해도 워낙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월급 생활자에게는 주거 비용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됩니다.”

 마츠다씨의 아내 요코씨는 전업 주부. 유치원에 다니는 큰딸과 두 돌이 지난 아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하루 종일 정신없이 사는 평범한 주부인 그녀는 스스로를 ‘별로 알뜰하지 못한 주부’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1주일에 2000엔을 쓰지 않을 정도로 절약파.

 “결혼 초에는 주식 등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금 외에는 전혀 다른 재테크를 하지 않고 있어요. 이웃의 주부들도 저와 비슷해요. 집을 투자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제 관심사도 작은 집에서 벗어나는 건데 방 4개짜리는 희망사항이고 3개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식음료품 등 생필품은 근처 슈퍼마켓에서 주로 구입하고, 의류 등을 살 때만 백화점을 찾는다는 요코. 두 아이 양육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까닭에 한 달 저축은 6만~7만엔(보험 제외)이 전부. 단, 상여금은 전액 별도로 저축하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해서(마츠다씨는 대학 럭비부 출신이다) 직장 동료, 대학 동기생들과 1년에 10번 정도 시합을 해 왔는데, 2004년에는 2번 정도밖에 못 갔습니다. 아내와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1년에 6번 정도는 주말을 끼고 온천 같은 곳에 여행을 갑니다. 생활에 활력을 주는 유일한 대상이 가족이고,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아내와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믿기보다 로또를 믿는다

 
일본의 매스컴도 일본이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마츠다씨에게 이 같은 뉴스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개인적으로 정부의 경제정책, 그에 관련된 보도를 별로 믿지 않는다”는 그는 “나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미래가 불안정한 또 하나의 이유가 국민연금 제도입니다. 솔직히 제가 늙어서 국민연금을 받게 될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국가 경제가 호전된다고 해도 저에게는 돌아올 것이 없는 거죠. 물론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말예요.”

 마츠다씨는 매주 로또 복권을 산다. 큰 금액에 아직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는 그는 ‘당첨이 되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자 한참 생각 끝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은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일에서 느끼는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일이 좋습니다. 문제는 일을 하고 싶지만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죠. 저에게 행운이 온다면, 불안해하지 않고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 내 사업을 했으면 합니다. 아, 내 집 마련이 조금 빨라지고, 대출금이 많이 줄어들 수도 있겠군요.(웃음)”

 2005년 마츠다씨 가족의 소망과 계획은 지금까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월급이 더 오르길 바라거나, 새로운 가구나 제품도 살 계획도 없다. 가계 운용의 방향이 3년 후 내 집 장만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곧잘 조잘거리는 다섯 살배기 딸과 벌써 개구쟁이 짓이 완연한 아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내 집 마련을 위해 마츠다씨 부부의 2005년도 경제 목표는 그래서 ‘절약, 그리고 저축’이다.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