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위기의 중산층, 숫자 줄고 씀씀이 감소”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은 많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196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중산층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을 중산층 육성이 중심이 되는 균형적 발전으로 할 것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1980년대 후반에는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중산층이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과거의 해묵은 논쟁을 들추는 이유는 중산층이라는 용어에 깔린 깊은 의미의 공통분모에 주목하기 위함이다. 경제정책이 되었건 민주화가 되었건 중산층은 안정을 대변하는 것으로 표상된다.

 중산층은 엄밀하게 본다면 경제적 기준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중산층에 속하려면 소득과 재산면에서 중간적 위치에 놓여야 하지만, 이때 ‘중간적’이라는 의미는 수리적 혹은 통계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정치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중산층은 많은 경우 가장의 안정적 직업에서 나오는 소득을 누리면서 주택을 소유하고, 또한 자녀의 교육에 투자하고, 문화적 생활을 영위할 여유가 있는 사회적 계층으로 정의된다. 중산층은 객관적으로만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중산층으로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몸에 익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산층이 사회적으로 많을수록 그 사회는 안정 속에서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6~7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이 위기에 놓였다고들 한다. 중산층의 위기는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지속적인 현상이라고 해야 하겠다. 우선 소득 분배가 악화되면서 중산층의 경제적 기반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인 이후에도 소득 격차는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경기적 요인만이 아닌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고용 불안과 일자리 감소 역시 중산층을 계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일자리 부족은 대를 이어 중산층을 괴롭힌다. 가장의 직업적 안정이 위협받을 뿐 아니라 비싼 학비를 들여 고등교육을 시킨 자녀들이 취업할 길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안정된 가정생활을 위해 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2000년대의 부동산 경기 과열은 또 하나의 큰 타격이었다.

 중산층의 위기를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감소이다. 통계청에서 실시하는 사회통계 조사에서 1994년에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0%를 넘었지만, 2003년에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6%로 감소한 반면, 하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같은 기간에 38%에서 42%로 증가했다.

 이보다 더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조사 결과도 있다. 1996년 설문 조사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결과 41%가 넘게 그렇다고 응답했던 반면, 2004년 말 설문 조사에서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한때는 중산층이었지만 더 이상 아니다’는 반응이 다수인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20~30대보다는 40~50대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중산층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위기 속의 중산층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며 새해에 중산층의 경제생활은 어떠할까?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우선 현재 참여정부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이른바 3040세대의 상당수가 중산층에 속하거나 중산층을 지향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지난 2년 동안 중산층은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 중산층으로서의 만족스러운 삶에 가깝게 다가섰는가?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각한 실업과 고용 불안정 문제,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해법은 제시되지 못했고, 고작해야 중산층의 마지막 남은 안정적 미래의 보루인 연기금을 내용도 불확실하고 효과가 미지수인 경기 부양책에 쏟아 붓겠다는 주장만 있을 따름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구체적 대책이 실종되다 보니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월평균 소득 격차는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과거라면 중산층으로서 가장 안정적인 생활을 누려야 할 40대 중·후반에 이미 직장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퇴직 후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폭락은 심각한 가계 부채 상황의 압력을 남겼다.

 2005년 새해 중산층의 경제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전반적인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고 밝지 못하기 때문에 새해에도 중산층은 많은 불안과 내핍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4%를 맴도는 낮은 경제 성장률에 대한 예측은 경제 주체로서 소비자와 기업들로 하여금 소비 심리와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경제 위기 이후 6년 동안 최저치를 기록한 소비 심리의 위축은 2004년 중반부터 중산층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산층 소비지수의 기준이 되는 백화점 매출이 1년 내내 계속되는 세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다른 유통업체들의 고전도 한 해 동안 계속됐다. 앞으로의 소비 지출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미래소비지출지수를 보더라도 새해 중산층의 씀씀이 규모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중산층들이 돈 쓰기 힘든 것이 전적으로 경기가 부진한 탓만도 아니다. 국민연금, 조세 등 비소비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위해 저축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15년 동안 중산층의 저축률은 27%에서 15%로 크게 떨어졌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 인상, 종합부동산세로 인한 세금 부담 가중, 계속되는 가계 담보 대출 압력과 고용 불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전망은 새해에도 중산층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요인들이다.

 앞에서 중산층이 안정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중산층은 앞으로의 미래 희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산층이 희망을 가질 때 전체 사회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새해에도 중산층의 희망을 키우기보다는 불안을 가중시키는 일들이 보다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제 미래와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중산층에게 희망을 주는 경제정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배영준 LG경제연구원 상임연구원

“중산층 6000만명, 소비시장 폭증”



 
35세의 전업주부 쑨링링(孫笭笭)은 베이징 근교의 고급 빌라에 살고 있다. 남편은 해외 MBA 출신으로 미국계 기업에서 억대의 연봉을 받는다. 쑨 부인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 햇살이 따스한 뒤뜰 야외 벤치에서 가벼운 웨스턴 푸드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엔 근처의 대형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 후, 명품매장 쇼핑을 하거나 뷰티센터에서 정기적인 피부 관리를 받는다. 집안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몇 년째 고용하고 있는 가정부와 정원사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출산 후 늘어난 체중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이쯤 되면 강남의 부유층이 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중국의 신흥 고소득 소비 계층인 이들은 보보스(BOBOS: Bohemia Bourgeois)에 빗대어 ‘차보스’(CHABOS: China BOBOS)라 불린다.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은 샤넬, 구찌 등 명품 브랜드에 익숙한 중국 소비시장의 ‘트렌드 세터’(Trend-Setter)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서구화 경향은 놀라울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사 하셨습니까?’란 말로 안부 인사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 얼마나 말랐니?’로 바뀌었다는 농담도 있다.



 프리미엄 시장의 고속 성장세

 쑨 부인과 같은 초고소득 계층은 도시 인구의 1%가량을 차지한다. 중국 13억 인구 중 도시 인구를 약 5억명이라 한다면 500만명가량의 ‘쑨 부인’이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러한 초고소득층 소비자는 약 10만명에 달하며, 이들이 명품 구입에 쓰는 돈은 연간 20억달러에 이른다. 20억달러라면 상하이에서 일반 노무직 근로자 300만명을 1년 동안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또한 도시에는 쑨 부인의 생활을 동경하는 6000만명가량의 중산층이 존재하며, 그 비중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득을 기준으로 한 인구 분포는 피라미드 모양에서 럭비공 모양으로 바뀌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도시 거주 인구의 26%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관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최근 상하이의 한 수입 자동차 딜러는 대당 수십만 달러나 하는 고가 모델을 몇 대나 주문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너무 고가의 제품이라 운송 및 통관 비용도 많이 들어 만일 수입한 후 팔리지 않을 경우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몇 대만 수입해서 전시한 후 고객들에게 선주문을 받기로 했다. 결과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전시한 첫날 초기 수입 물량이 모두 팔렸으며, 며칠 되지 않아서 추가로 수십 대의 구매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중심가의 매머드 쇼핑몰인 ‘동방신천지’(東方新天地)에는 주말에 40만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곳에는 구찌, 버버리, 루이뷔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 숍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명품을 구매할까?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서는 사람의 차림새를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세련되지 못한 차림새의 사람이 명품 매장에서 수백만 원어치의 쇼핑을 하고는 벤츠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톱클래스 소비시장, 중국

 중국 소비시장의 성장은 중국 정부의 내수 시장 진작 정책과 관련이 있다. 수년 전부터 실시해 온 주5일 근무제도와 연간 세 차례나 있는 7일간의 황금 연휴는 중국 소비자의 레저 관련 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2%대의 낮은 금리, 주택과 자동차 구매 시의 손쉬운 대출 시스템으로 인해 부동산 및 자동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줄곧 ‘세계의 공장’으로 불려 왔다.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 낮은 임금 수준, 지방 정부의 매력적인 투자 조건 등은 글로벌 기업의 공장을 중국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의 막대한 소비 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소비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1인당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이미 1만달러를 넘어선 데 비해 ‘중국은 아직 12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는 13억 인구로 인한 ‘평균의 오류’라 말하고 싶다. ‘13억 인구에게 껌 한 통씩만 팔아도 얼마야’라는 식의 막연한 생각은 버릴 때가 됐다. 13억명의 사람이 ‘이렇다’고 한 가지로 단정 짓는다는 게 얼마나 우매한 생각인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구의 1% 정도가 한국인이 생각하는 수준의 ‘부자’라 한다면, 13억의 1%만 해도 1000만명이 넘는다.

 2004년 중국의 GDP는 한국의 두 배가 넘는 약 1조50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2010년에는 세계 톱클래스의 경제 규모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GDP 중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 정도로 미국의 70% 비해 크게 낮다. 향후 중국 GDP는 연 8%대의 고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민간 소비의 비중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중국의 소비 시장은 지금도 엄청난 규모이지만,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이라는 국가 브랜드(Country Brand)에 대해서 막연히 ‘싸구려 같다’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고부가가치 소비 시장을 보유한 신소비대국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중국이 바뀌는 만큼 우리의 중국 소비 시장에 대한 시각 또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노무라 다케시, 시오자키 주니치 노무라종합연구소 선임연구원

“40대 이후 세대가 소비 이끌어”



  소비 침체에 환율 상승으로 불황 우려가 높은 한국 사람들에게 10년의 장기 불황을 끝내고 3년째 성장 중인 일본 경제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불황 탈출의 모델’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0년의 불황을 견딘 후 성장 궤도에 올라선 일본 경제’는 계속된 경기 침체로 불황 터널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은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경제는 2002년부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됩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일본의 수출이 살아나고, 소비도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지갑을 열지 않던 일본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죠.”

  전 세계에서 가장 저축률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 국민들은 불황이 시작된 후 지갑을 꽁꽁 닫았다. 그 결과 일본 가계의 금융 자산은 1396조엔(2002년 말 기준)으로 불황이 시작된 10년 전보다 383조엔이나 증가했다. 소비의 위축은 생산의 위축으로 이어졌고 13년이란 긴 불황이 지속되었다.

  “1인당 금융 자산으로 환산했을 때 한 사람당 1000만엔의 예금이 있습니다. 일본 소비자의 세대별 특징은 젊은 세대는 가난하고 중장년은 여유가 있다는 점입니다. 30대 초반까지는 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할 여력이 없죠. 그런데 40대 이후 세대는 자녀 교육 부담에서 놓여나는 등 소비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일본 소비 활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입니다.”

  노무라연구소는 지난 2000년과 2003년에 걸쳐 ‘일본인의 구매행동’을 파악하고자 소비자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를 담당했던 시오자키 주니치 연구원은 일본인의 구매 특성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편리성 소비형’, ‘프리미엄 소비형’, ‘알뜰 소비형’, ‘철저 탐색 소비형’.

  2000년 조사 결과를 보면 가격을 따지기보다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인 ‘편리성 소비형’(37%)과 품질은 따지지 않고 무조건 싼 제품을 선호하는 ‘알뜰 소비형’(40%)이 다수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서비스나 정보 등 부가가치가 있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 ‘프리미엄 소비형’(13%)과 여러 정보를 모아 비교하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철저 탐색 소비형’(10%)은 소수에 불과했다.

  3년 후 소비패턴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는 흥미롭다. ‘편리성 소비형’과 ‘알뜰 소비형’이 여전히 다수를 이뤘지만 각각 2%, 6%의 감소를 기록한 반면 ‘프리미엄 소비형’과 ‘철저 탐색 소비형’(10%)은 각각 5%, 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 같은 소비자의 구매 패턴의 변화는 일본 경제 전반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됩니다. ‘프리미엄 소비형’의 예가 고가의 명품 소비 붐입니다. 의류나 가방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아니라도 일반 소비 품목에서도 점차 이런 추세가 늘고 있습니다. ‘철저 탐색 소비형’은 인터넷 사용이 점차 늘어나면서 젊은 층 위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편하게 여러 제품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보니 제품의 질과 가격을 함께 볼 수 있게 된 거죠.”



 불확실성 해소가 소비 촉진

 일본 소비의 회복을 가리켜 ‘미래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됐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대세다. ‘미래의 불확실성’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소비자 개개인의 측면에서는 말 많던 ‘국민연금’ 문제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노무라연구소 관계자는 분석했다.

 “아직 여야가 제시한 해법이 다르긴 하지만, 경제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게 했던 ‘내가 연금 수령을 할 때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투명성이 상당 부분 해소가 된 겁니다. 미래에 어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자 비로소 소비에 나선 것이죠.”

 일본의 중장년층은 2차 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다. 일본 경제 성장의 신화를 이룩한 주역인 이들은 이제 “미래의 일본을 지탱하기 위해 베이비 붐 세대는 젊은 세대들에게 일자리를 양보하는 게 당연하다”(노무라종합연구소 나카무라 연구이사)는 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일본 사회가 가장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부분이 바로 ‘고령화로 인한 다양한 미래 상황’이고, 연금 문제는 일본인 개개인에게는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인 셈이다.

 “지금까지 일본 경제는 성장 위주인 미국식 모델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식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일본 사회에 맞지 않습니다. 인구는 더 이상 늘지 않고,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일본 사회는 미국 모델을 버리고 유럽 모델을 취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성장이란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자랄 대로 자랐습니다.”

 2005년 일본 경제에 대해 노무라연구소측은 실질 GDP(물가 상승률을 제외한 국내총생산) 2.2% 성장(2004년 대비)을 예상하고 있다. 2004년의 실질 GDP 성장률 3.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미국의 달러화 약세는 일본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3년 동안의 불황을 겪으면서 일본 기업들은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 내부 구조 조정을 겪으며 체질이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변수는 중국 경제입니다. 중국 경제의 성장이 일본 기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고, 불황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상황 변화가 일본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노무라종합연구소 노무라 다케시 광보과장)

 일본의 국내 소비 시장의 규모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된다. 이는 한국 소비 시장의 약 8배에 이르는 거대 시장.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이 일본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1993년 이후 일본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13년 전, 일본 거품 경제 붕괴의 신호탄이었던 부동산 가치는 2002년 기준 870조엔으로 1990년 대비 374조엔 감소했다. 안정된 부동산 가격은 소비자에게 상대적으로 소비에 더 많은 돈을 쓰게 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박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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