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트렌비 대표 영국 옥스퍼드대학원 소프트웨어 공학 석사, 전 캠든소프트 CEO, 전 훈스닷넷 CEO / 사진 트렌비
박경훈
트렌비 대표 영국 옥스퍼드대학원 소프트웨어 공학 석사, 전 캠든소프트 CEO, 전 훈스닷넷 CEO / 사진 트렌비

2016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소프트웨어 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한 청년은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바로 꼭두새벽부터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해 아웃렛을 찾고, 두 손 가득 명품을 구매해 떠나는 관광객을 본 것. 그는 ‘온라인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하는 시대인데, 명품을 사기 위해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의문을 가지게 됐다.

개발자였던 그는 한국에서도 유럽에 있는 것처럼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전 세계 유통업체의 명품 가격을 비교하고, 구매를 도와주는 사업 모델을 생각해냈다. 이런 배경을 안고 2017년 탄생한 스타트업이 명품 구매 플랫폼을 만든 ‘트렌비’다. 그야말로 ‘명품업계 스카이스캐너(글로벌 여행 검색 비교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트렌비의 지난해 거래액은 1080억원으로, 전년(451억원) 대비 2.5배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월간 순이용자(MAU)는 2017년 32만 명에서 2020년 11월 455만 명으로 증가했다. 뮤렉스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 LB인베스트먼트 등 벤처캐피털(VC)로부터 400억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이코노미조선’은 트렌비 창업자 박경훈 대표와 3월 31일 유선 인터뷰를 진행하며 성장 비결을 들었다. 다음은 박대표와 일문일답.


명품 가격 비교, 구매 대행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명품 가격이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관세, 세금 등에 따라 2배가량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빅맥지수처럼 나라별 특성을 반영해 가격이 형성되지만,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기 쉽지 않다. 해외 직구를 하려고 해도 언어를 잘 모르면 가격 비교가 어렵다. 그래서 AI, 크롤링 등 기술을 활용해 유통업체별 가격 차이를 보여주고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를 돕고자 했다. 물론 명품이 불황 등 외부 경제적 요인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고, 개성에 따라 구매하는 ‘롱테일 상품(소량 생산과 한정 수량으로 유통되는 틈새 상품)’이라는 점도 창업 이유 중 하나다.”

국가별로 명품 가격 차이가 큰 이유는 왜일까.
“수요·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는 희소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량 생산·유통을 하지 않고, 모든 상품의 재고를 넉넉히 두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국가별 재고가 다르고, 가격 차이도 크다. 한국에서는 인기가 있는데 재고가 없어 리셀이 벌어질 만큼 없어서 못 사는 제품들이 너무 많다. 반면 많은 명품 제품이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제작돼 유럽 현지에서는 수급이 빠르고 원활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국내 유통업체가 가지고 있는 재고가 많거나 큰 폭의 할인을 할 경우 오히려 국내 판매가가 더 저렴한 경우도 있긴 하다.”


트렌비는 전 세계 유통업체 300여 곳에서 팔리는 명품 가운데 최저가를 찾아준다. 사진 트렌비
트렌비는 전 세계 유통업체 300여 곳에서 팔리는 명품 가운데 최저가를 찾아준다. 사진 트렌비

명품 판매 플랫폼이 늘고 있는데, 트렌비만의 강점은.
“트렌비는 영국부터 미국, 독일, 프랑스까지 약 6곳의 주요 글로벌 쇼핑 거점에 자회사를 설립해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인력(59%)과 해외 인력(41%) 수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해외 근무 직원들이 파트너사 상품과 오프라인 상품을 직접 소싱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품군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국내에 없는 현지 상품부터 온라인에는 없는 오프라인 할인 상품, 온라인 전용 상품까지 구할 수 있다. 감정팀이 상품을 검수한 뒤, 해외배송, 통관, 국내 출고과정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가품(假品⋅짝퉁) 우려도 덜 수 있다. 가품 유통 시 200%를 보상한다는 정책을 내세우는 등 사후관리도 보장한다.”

전 세계 최저가 상품을 어떻게 찾아내나.
“자체 개발한 검색엔진인 ‘트렌봇’을 활용한다. 트렌봇에는 크게 ‘트렌봇 스캐너’와 ‘트렌봇 AI’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트렌봇 스캐너는 매일 30분마다 한 번씩, 온·오프라인의 최저가를 확인한다. 하루 평균 들여다보는 웹사이트는 300여 개, 페이지는 4500만 개에 달한다. 트렌봇 AI는 세일가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가격 경쟁력 추이 등을 분석한다. 고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최근 6개월간 상품 가격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며 의사결정을 돕는다.”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명품 시장의 변화를 느끼나.
“창업 초기에는 이렇게까지 명품 구매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가 주요 명품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온라인 명품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들은 백화점에서 명품을 구입하기보다 온라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사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명품의 온라인 판매 비중은 2017년 9%에서 2019년 12%로, 2020년에는 25%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또 과거 명품 소비가 3~4년에 한 번씩 명품 가방을 구매하는 것에 그쳤다면, 요즘에는 보다 다양한 품목의 명품을, 1년에도 여러 개씩 자주 구매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MZ 세대는 기존 정통 명품 브랜드뿐 아니라 메종마르지엘라, 스톤아일랜드 같은 컨템퍼러리 브랜드를 찾는 경우도 늘었다. 가방, 지갑 등 전통적인 명품 구매 품목 외 신발, 의류 소비도 활발한 편이다. 신발의 경우 ‘슈테크’라는 신조어가 떠오를 만큼 최근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명품을 중고로 판매하는 서비스를 출시한 이유도 이 때문인가.
“맞다. 소비자들이 구매한 명품을 꾸준히, 자주 사용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구매한 상품을 집에만 두면 그야말로 낭비 아닌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상품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주고, 새로운 상품을 살 수 있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또 중고 거래 시장은 커지는데, 중고 명품에 대한 우려는 남아있다는 점을 해결하고자 했다. 트렌비는 중고 명품도 신상품과 마찬가지로 정품인지, 짝퉁인지를 감정한다. 판매자에게 과도하게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거나, 갑자기 거래를 파기하는 등 불쾌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고객 간 거래를 대행해주고 있다.”

올해 22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무엇을 할 계획인가.
“올해 AI 이미지 매칭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이탈리아에 지사와 물류센터를 설립해 제품·가격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일본 진출에도 나선다. 일본은 럭셔리 마켓 규모가 크지만,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가격 정보의 불균형이 큰 편이다. 연내 글로벌 앱을 출시하고 일본어 버전을 시작으로 언어 서비스 범위를 확대해 나가면서 글로벌 고객을 모을 예정이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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