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 LG유플러스 상무가 1월 11일 서울 시흥동 LG유플러스 빌딩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고객센터 상담사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고은정 LG유플러스 상무가 1월 11일 서울 시흥동 LG유플러스 빌딩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고객센터 상담사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켜켜이 쌓은 성실의 시간만큼 빛나는 게 있을까.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도 묵묵함과 꾸준함을 만나면 얼마든지 타고난 재능을 압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마지막에 웃는 자는 우공이산(愚公移山) 정신으로 무장한 보통 사람이다.

2900여 명이 근무하는 LG유플러스 홈 상담(인터넷·IPTV) 고객센터를 책임지는 고은정 LG유플러스 고객센터 대표(상무)도 오랜 시간 한 우물에 머물며 깊고 푸른 성실의 샘을 판 인물이다. 고 상무는 지난해 말 LG유플러스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하며 임원진에 합류했다. 이 소식이 화제를 모은 건 그가 고객센터 상담사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국내 통신 업계에서 고객센터 상담사가 본사 임원 자리까지 오른 이는 고 상무가 유일하다.

감정 노동의 일선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렇게 보낸 22년의 세월은 어느덧 후배 상담사에게 고은정이라는 사람을 든든한 현장 선배이자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최종 목적지로 만들었다. 그의 성실한 발자취를 엿보기 위해 1월 11일 오후 서울 시흥동에서 고 상무를 만났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임원이 되려고 직장 생활한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성과를 인정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고객센터 대표는 2018년부터 맡았다. 처음 대표가 됐을 때도 책임감을 느꼈는데, 이번에 상무로 승진하고 나니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내가 최초라서 기쁘다기보다는 후배 상담사에게 ‘나도 열심히 하면 저 자리까지 갈 수 있구나’라는 기대감을 주게 됐다는 점이 뿌듯하다.”

회사에서 어떤 점을 인정했다고 생각하나.
“현장감. 고객 접점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나. 고객센터는 ‘정말로’ 고객 접점에서 일한다. 상담사는 단순 문의와 거친 항의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귀로는 경청하면서 눈으로는 고객 히스토리를 재빨리 파악하고, 손으로는 필요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예기치 못한 변수도 종종 튀어나온다. 나는 1998년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부산고객센터 상담사 1기로 입사해 일반 팀장, VIP 팀장, 실장, 센터장, 운영 담당 등을 차례로 거쳐 대표직까지 오른 경우다. 고객 접점의 현장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상담사 출신이 고객센터장을 맡은 것도 실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런 경험 덕에 상담 현장과 동떨어지지 않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이 부분을 좋게 봐주지 않았을까.”

현장 경험을 담은 업무 시스템 구축 사례를 소개해달라.
“가서 팀장 데려오라는 고객에게 실제로 팀장을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상당수 고객이 차분해진다. 더 많은 권한이 있는 자를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격앙됐던 감정을 추스른다. 비로소 이성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사는 거친 고객을 만났을 때 팀 리더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한다. 문제는 이런 성가신 상황을 일부러 외면하려는 팀장이 예전에는 많았다는 점이다. 나는 팀장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첫 번째 미션을 ‘상담 문제 해결’로 지정했다. 팀장은 팀원의 상담 과정을 관찰하다가 개입 필요성이 감지되면 즉시 넘겨받아야 한다. 성희롱과 욕설을 일삼는 악덕 소비자의 전화를 고객센터에서 먼저 끊을 수 있도록 바꾼 것도 생각난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회사가 먼저 끊는 건 금기 사항이었다. 직원 연결 전에 상담사의 실제 가족이 육성 녹음으로 상담사를 소개하는 ‘마음 연결음’ 서비스도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고객보다는 상담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조치다.
“상담사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기분이 좋아야 상냥한 상담이 가능하더라. 감정 노동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고객을 웃게 하려면 반드시 상담사부터 웃게 해야 한다. 예전에는 많은 리더가 한자리에 직원들 모아놓고 따뜻한 말로 격려하거나 법인카드로 거하게 회식시켜주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일회성 위로에 불과하다. 맛있는 밥 얻어먹고 들어가서 종일 욕설을 들어야 한다면 한우 회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상담사의 고민을 시스템으로 푸는 게 진짜 위로다.”

팀원 상담까지 대신해주면 중간 관리자들은 힘들 수 있겠다.
“아이가 부모 언행을 모방하듯 직원은 자신의 상사에게서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한다. 뒤에서 내 등을 쳐다보고 성장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부끄럽지는 않아야지.”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마음의 고됨을 아니까, 애틋하다. 상담은 상대방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하는 일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근무 환경을 개선해주려고 한다. 사실 나를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직장 생활하면서 깨달은 점을 하나 꼽으라면,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언제나 진리더라.”

잘 웃고 씩씩하게 말한다. 원래 성격은 어떤가.
“타고난 성격은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다. 적극적인 모습은 상담 일을 하면서 노력으로 만들었다. 소심한 게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 있으나, 꼼꼼하고 주변을 세심하게 살핀다는 측면에서는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아무리 바빠도 매일 아침 30분 정도는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쓴다. 딱히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넋 놓거나 정서적 안정에 도움 될 만한 책을 읽는 정도다. 그런데 효과는 정말 뛰어나다. 가령 전날 감정적으로 크게 속상한 일을 겪었어도 이 30분을 보내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직원들에게 웃으며 인사할 힘이 생긴다.”

2021년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내 이벤트, 팀워크 활동 등 모든 대면 활동을 중단했다. 이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동료와 수다로 풀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스도 점점 쌓여간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선 임직원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시 말하지만, 상담 직원부터 행복해야 한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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