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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단시일 내에 풀리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일부 매각을 두고 시장에서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시일 내에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을 압박하던 정부가 ‘나 몰라라’하고 있어 꼬여 있는 문제를 풀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5월 30일 장 종료 직후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2700만 주(1조3165억원)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 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삼성생명이 0.38%인 2298만 주, 삼성화재가 0.07%인 402만 주를 한 주당 4만8750원에 전량 팔았다. 양 사는 “이번 매각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위반 리스크를 사전에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산법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들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10% 넘게 갖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생명(8.19%)과 삼성화재의 지분율(1.43%)은 9.62%였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올해 안으로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이어서 이들의 지분율은 10.45%로 높아지게 된다. 10%를 초과하는 지분만큼 시장에 매각한 것으로, 두 회사의 합산 지분율은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후에는 9.9997%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다. 이 개정안은 금산 분리를 위해 보험사가 계열사의 주식을 ‘공정가액(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게 주요 내용이다. 지금도 금융사가 재벌의 지배구조에 활용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의 일정 비율(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다만 은행과 증권사 등은 시장가격을, 보험사는 ‘취득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행 법은 ‘삼성생명 특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8.23%)은 시장가격으로 계산하면 27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지분이 삼성생명 총자산(283조원)의 3%인 8조5000억원을 넘지만, 취득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보유가 가능하다. 삼성전자 지분은 취득 당시 가격인 주당 5만여원을 기준으로 하면 총 5000여억원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보험업법이 바뀌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최소 19조원어치 팔아야 한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면 따라야 하겠지만 보험사 입장에서 삼성전자 같은 우량기업에 투자해야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지분을 늘리지 않았지만 삼성전자 실적이 좋아 주식가치가 계속 올랐다”고 말했다.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내놓는 삼성전자 지분을 누가 살지가 문제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4.6%)이 이를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봐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2016년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중 2% 정도만 삼성물산에 넘기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약 7조원이다.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고, 이 돈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살 수 있는 방안을 고려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문제 삼으면서 이 방식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출구가 안 보이는 삼성 지배구조 개편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가 2년 전과 크게 달라진 점도 문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11월 상장했고, 현재 삼성물산은 약 10조원(43.44%)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물산이 추가로 삼성전자 지분 2%를 사들이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는 약 21조원에 달하게 된다. 두 회사에 대한 지분가치가 삼성물산 자산 총액(49조원)의 절반을 넘어서면 삼성물산은 법에 따라 자동으로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이 경우 현행 법에 따라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분만 최소 14% 더 사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약 44조원이 필요하다.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처리하기엔 너무 막대한 규모다. 그렇다고 삼성 계열사들이 나눠 매입하면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약 19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이번 블록 딜처럼 여러 차례 나눠 시장에 팔기도 쉽지 않다. 주식시장과 삼성전자 주가에 미칠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자칫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15%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3.88%로 이 부회장(0.57%)보다 훨씬 많다. 향후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상속세로 납부하게 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분은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투기 세력이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면 삼성전자 경영권이 흔들리게 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주주 비율이 52%에 달한다. 이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은 19.9%다. 계열사 등 우호세력을 총동원해야 삼성에 대한 지배가 가능하다.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대한 이슈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선진국에 있는 포이즌필(적대적 인수·합병 시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도록 한 권리)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재벌 지배구조 개혁을 밀어붙이는 건 삼성으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경영권 안정을 꾀하면서도 주식 매각 등에 따른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삼성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지만 정부가 타협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경제 미칠 여파 큰 데도 손 놓은 정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이 암초에 걸렸지만 그동안 이를 압박해 오던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금산 분리와 재벌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바로잡겠다는 경제 공약을 내걸고 출범했다. 정부는 그동안 보험업법 개정 전이라도 삼성생명이 자발적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해 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업법으로 인해 증시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영권이 해외 투기 세력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선 정부가 눈을 감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분투 중인 기업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주식시장 전체로 위기가 퍼진다. 삼성전자의 몰락은 곧 삼성그룹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국가 경제의 마비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경제에 충격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대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주식을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당이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이란 ‘뜨거운 감자’를 놓고 말을 아끼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가 삼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 당위성이 있지만 한국 경제의 특수한 상황이나 중국 거대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적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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