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턴 크리스텐센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2007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클레이턴 크리스텐센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2007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의 창시자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센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1월 23일(현지시각) 숙환인 소포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25년 전 발표한 논문 ‘혁신 기업의 딜레마’로 세계적인 경영학자 반열에 오른 크리스텐센 교수는 그간 학계와 산업계를 넘나들며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 많은 경영인에게 영감을 줬다.

‘이코노미조선’은 현대 경영학과 기업 성장에 크게 기여한 크리스텐센 교수의 노고를 기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가 주창한 파괴적 혁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 또 최선을 다했음에도 경쟁자에게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는 혁신 기업의 딜레마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파괴적 혁신’이란 표현은 크리스텐센 교수가 199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혁신을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으로 구분했다. 존속적 혁신은 주요 시장에서 활동하는 주류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에 맞춰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하는 것이다. 크리스텐센 교수는 “특정 산업 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기술 진보는 존속적인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선도 기업은 존속적 혁신을 부지런히 실행하면서 주류 고객의 요구에 호응하고 다른 회사와 경쟁에서 앞서 나간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술·가격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이때 파괴적 혁신이 등장해 선도 기업을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게 크리스텐센 교수의 논리다.

파괴적 기술에 기초한 제품은 일반적으로 더 싸고, 더 단순하고, 더 작고, 더 사용하기 편하다. 파괴적 혁신은 이런 제품 또는 서비스로 선도 기업들이 간과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한다. 후발 주자는 저렴하고 단순한 상품으로 시장 진입에 성공한 다음 주류 고객이 원하는 제품까지 내놓으며 선도 기업의 점유율을 장악해 나간다. 기존 기업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대응했는데도 점차 몰락하게 되는 셈이다.

크리스텐센 교수가 서술한 파괴적 혁신 사례로는 디스크 드라이브, 굴착기, 오토바이 등이 있다.


디스크 드라이브 1980년대 초 미니컴퓨터 제조사들이 사용하던 드라이브의 표준 크기는 8인치였다. 당시 5.25인치 드라이브는 갓 등장한 새로운 아키텍처(architecture·설계 방식)였다. 8인치 드라이브는 용량, 메가바이트(MB)당 비용, 액세스 타임(중앙처리장치가 기억장치에 전송 명령을 내린 후 전송이 이뤄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 성능 측면에서도 5.25인치 드라이브보다 우위에 있었다.

대신 5.25인치 드라이브는 작고 가벼웠다. 가격도 약 2000달러로 3000달러 수준인 8인치 드라이브보다 저렴했다. 이후 등장한 데스크톱 컴퓨터는 8인치가 아닌 5.25인치 드라이브를 택했다. 슈가트 어소시에이츠, 마이크로폴리스, 프라이엄, 퀀텀 등 당시 8인치 드라이브 산업을 이끌던 4대 기업 중 5.25인치 드라이브 제조사로 살아남은 회사는 마이크로폴리스 한 곳뿐이다.


굴착기 굴착기 시장에서 기존 기업들을 무너뜨린 파괴적 혁신은 ‘유압기술(hydraulics)’이다. 최초의 유압 굴착기는 영국 기업 J.C. 뱀포드가 1947년 개발한 모델이다. 이전까지 시장 내 주류 기업들은 케이블을 감고 푸는 방식으로 굴착기를 움직였다. 초기 유압 굴착기는 기존 기술과 비교해 힘이 약하고 작업 반경도 1.8m에 불과했다. 또 케이블 구동 굴착기는 360도 회전할 수 있지만, 유압 굴착기는 회전 각도가 180도에 그쳤다.

후발 주자인 유압 굴착기 업체들은 소형 산업용·농업용 트랙터에 부착할 수 있는 굴착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규모 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 건설 업자가 좋아했다. 덩치가 크고 정교함이 떨어지는 기존 케이블 구동 굴착기로는 수행하기 어려워 일일이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도랑 파기 등의 일을 이동이 쉬운 소형 트랙터에 달린 굴착기로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유압 굴착기 업체들은 기기 성능을 강화해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오토바이 혼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원동기 장치 자전거(motorized bicycle) 공급 업체로 등장했다. 혼다는 1950년대 일본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북미 오토바이 시장 진출을 꾀했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장거리 운전에 주로 활용하는 미국인에게 혼다 제품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혼다 오토바이는 미국 고속도로를 오래 달리면 엔진에서 기름이 새거나 클러치가 금세 닳아버리는 단점을 노출했다.

북미 진출 초반 쓴맛을 본 혼다는 전략을 수정했다. 작고 귀여운 자신들의 오토바이가 여가용으로 쓰일 때 진가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 BMW 등 기존 업체가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던 이 시장을 다시 공략한 혼다는 큰 성공을 거뒀다. 소형 오토바이 시장에서 기술력·자본·인지도를 축적한 혼다는 차츰 고가 오토바이 분야로도 영토를 넓혔다.


더 활발해지는 파괴적 혁신

시간이 흐르면서 크리스텐센 교수가 언급한 파괴적 혁신 사례들도 너무 옛날이야기가 됐다. 그러나 파괴적 기술이 등장해 기존 시장과 선도 기업을 흔드는 일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연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달 덕분이다. 크리스텐센 교수는 데스크톱·노트북을 어디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스마트폰, 은행원의 판단과 계산을 없앤 신용점수 기반의 자동 대출 심사, 대형 마트를 개점 휴업 상태로 만든 온라인 마켓, 인간 조종사가 필요 없는 무인기, 자기공명영상(MRI) 장비에 들어가지 않고도 질병 여부를 알 수 있는 휴대용 의료 기기, 경영대학원의 존재 가치를 무색하게 만든 기업의 자체 경영 훈련 프로그램 등을 요즘의 파괴적 기술 사례로 꼽았다.


plus point

한국을 사랑한 경영학 구루

크리스텐센 교수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79년 하버드대 MBA를 마친 후 한국으로 건너와 모르몬교 선교사로 2년 동안 활동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구창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사망 전까지 보스턴 한인 사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교류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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