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가운데) 전 닛산 회장이 1월 8일 레바논 베이루트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그는 이날 “탈출하지 않았으면 난 일본에서 죽었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작은 사진은 1월 2일 일본 도쿄에 있는 그의 자택 앞에 몰려있는 취재진. 사진 블룸버그
카를로스 곤(가운데) 전 닛산 회장이 1월 8일 레바논 베이루트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그는 이날 “탈출하지 않았으면 난 일본에서 죽었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작은 사진은 1월 2일 일본 도쿄에 있는 그의 자택 앞에 몰려있는 취재진. 사진 블룸버그

“나는 지금 레바논에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지난해 12월 31일 미국 측 대변인을 통해 이런 성명을 발표하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곤 전 회장은 거주하고 있던 일본의 사법 당국에 의해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곤 전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일본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더는 유죄라고 전제한 채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부당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다”라며 “불공정하고 정치적인 박해로부터 도망쳤다”라고 밝혔다. 이어 1월 6일(현지시각) 미국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나를 회장 자리에서 밀어내려는 사내 쿠데타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와 문서를 가지고 있다”라며 “내가 체포된 배경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1월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관계자의 실명을 밝혔다. 곤 전 회장은 일본에서 소득 축소 신고, 특별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그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8년 동안 유가증권 보고서에 본인의 보수를 약 91억엔(약 979억원) 축소 기재했다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곤 전 회장은 혐의를 전면 부정하며 자신은 ‘음모의 희생자’라고 주장해왔다. 곤 전 회장은 2018년 11월 구속됐다가 2019년 4월 일본 도쿄 내에 거주할 것을 조건으로 보석됐다.

그의 도피 경로는 1월 8일 오후 10시 현재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곤 전 회장이 지난해 12월 29일 밤 터키에서 개인 제트기를 타고 레바논에 입국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NHK에 따르면 레바논 치안 당국자는 곤 전 회장이 입국 당시 다른 이름으로 입국했다고 밝혔다. 일본 출입국 기록에도 곤 전 회장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곤 전 회장의 첫 공판은 애초 올해 4월쯤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백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일부 가벼운 범죄 등을 제외하고는 공판 기일에 피고인 본인이 법원에 출두해야만 개정할 수 있다. 곤 전 회장이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사건 심리는 정지된다.

곤 전 회장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러나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의 갈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르노는 닛산을 사실상 지배(지분율 43.4%)하고 있지만, 경영권을 두고 순탄치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르노와 닛산의 인연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프랑스 르노가 도산 위기에 처한 닛산 지분을 사들여 재건에 나섰다.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곤에겐 자신감이 넘쳤다. 곤이 구조조정 지휘봉을 잡은 뒤 닛산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1999년 7000억엔(약 7조6500억원)에 달했던 적자를 이듬해 3000억엔(약 3조3000억원) 흑자로 반전시켰다. 곤이 ‘코스트 커터(비용을 자르는 칼)’라는 별명답게 철저한 비용 삭감에 나선 결과였다.

이후 곤은 일본에서 영웅이 됐다. 그러나 곤의 집권이 장기화하면서 일본 내 불만이 커졌다. 그가 과도한 연봉을 챙기고 르노에 더 이익이 되는 경영 판단을 한다는 등의 이유였다. 구조조정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이후 르노가 닛산을 완전히 통합하려고 하면서 닛산과 일본 정부의 우려는 더욱더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곤 회장이 갑자기 체포됐다.

해외 언론은 르노에 모든 걸 뺏길 것으로 판단한 일부 일본 경영진과 정부가 연합해 르노의 대리인을 쳐낸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분석한다. 일본 언론도 곤 사건이 정부가 개입한 국책(國策) 수사였다고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르노의 최대 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르노에 ‘닛산을 완전히 통합하라’고 압박했는데, 일본이 이를 막는 과정에서 곤이 표적이 됐다”고 했다. 이어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 출신이 곤 체포 5개월 전인 지난해 6월 닛산 사외이사로 온 사실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도쿄지검 특수부가 곤을 체포하기 4개월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가까운 검찰 인사가 도쿄지검 고위직에 부임한 사실도 사전에 치밀하게 짠 각본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결사 항전 선포…닛산 홀로서기 어려워져

이번 사태로 향후 일본 뜻대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은 작아졌다. 앞서 지난해 11월 곤의 변호인은 “곤 기소는 불법”이라며 “2020년 열릴 재판에서 검찰이 주장한 혐의가 모두 근거 없는 것임을 밝히겠다”고 했다. 도쿄지검은 2018년 11월 1차 체포 때 곤이 보수 중 50억엔(퇴임 후 고문료)을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설명이 의혹을 키웠다. 검찰이 이런 사유로 임원을 기소한 전례가 없는 탓이다. 검찰의 과잉 수사, 인권 침해 논란도 부담이다. 곤은 독방에 갇힌 지 몇 주 뒤에야 겨우 10분간 판사 앞에서 진술서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닛산의 홀로서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경영의 중심인 곤을 잃은 지난해 상반기 닛산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85% 줄었다. 1만2500명 정리 해고 계획도 발표했다. 실적이 계속 나빠지면 대주주 르노의 간섭을 막기가 어려워진다. 일각에서는 르노의 닛산 통합을 차단한 후, 닛산과 혼다를 제휴시켜 도요타 연합과 양강 체제를 만든다는 일본의 시나리오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도요타는 스바루·마쓰다·스즈키와 자본 제휴해 연합을 결성한 상황이다. 불투명한 닛산의 미래에 곤의 결사 항전 선포가 기름을 부은 셈이다.


plus point

그는 왜 레바논으로 갔을까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은 1953년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브라질을 포함해 레바논, 프랑스 등 삼중 국적을 갖고 있다. 그는 레바논 혈통인 레바논-브라질 이중 국적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6세 때 친할아버지의 고향인 레바논으로 이민했다. 그는 닛산 회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종종 레바논을 방문해 사회봉사 활동을 펼쳤다. 이 때문에 레바논에서는 곤 전 회장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레바논 정부는 2018년 11월 곤 전 회장이 체포되자 베이루트에 주재하는 일본 대사를 호출해 체포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곤 전 회장이 도쿄 구치소에 구금돼 있을 때도 레바논 대사관 관계자가 자주 면회하러 갔다.

레바논은 일본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나라다. 이 때문에 일본이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를 요구해도 레바논 측이 응하지 않으면 체포할 수 없다. 일본은 외교 경로를 통해 레바논 정부 측에 계속 요청할 수밖에 없다. 곤 전 회장 입장에서 레바논은 제2의 고향이자 최고의 도피처인 셈이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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