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유튜버 현상인(25·유튜브 닉네임 ‘현감독’)씨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영상을 편집하다가 뒤돌아봤다. 사진 윤정욱 사진작가
8월 20일 유튜버 현상인(25·유튜브 닉네임 ‘현감독’)씨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영상을 편집하다가 뒤돌아봤다. 사진 윤정욱 사진작가

취업준비생 A(28)씨는 최근 지상파 방송국 면접과 콘텐츠 기업 입사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평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영상 연출직의 꿈을 키워왔다. 지상파 방송국 입사는 영상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꿈의 직장’이다. 높은 채용 문턱을 넘으려면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A씨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은 면접 기회를 꼭 살려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채용 전형 도중 A씨가 콘텐츠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다. 유튜브 예능 영상을 제작하는 연출 PD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A씨는 결국 오랜 꿈을 포기하고 유튜브 콘텐츠 기업 입사로 마음을 기울였다. A씨는 “방송국에서는 연출을 맡으려면 7년은 족히 걸린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바로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존중 받는 환경에서 나만의 개성을 담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D 지망생들이 최근 들어 방송국이 아닌 유튜브 플랫폼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인 취준생들이 주목한 부분은 유튜브 콘텐츠의 제작 방식이다. 방송국의 신입 PD는 수십 명의 제작팀과 협력하면서 몇 년이고 도제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유튜브 콘텐츠 기업에서는 소수의 PD가 전권을 쥐고 영상을 만든다.

현상인(25·유튜브 닉네임 ‘현감독’)씨는 방송국 입사를 준비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영상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촬영 편집 기술을 설명하는 튜토리얼 영상이 주요 게재 대상이다. 외주 제작비를 주 수입원으로 삼고, 유튜브로 부대 수입을 채우는 식이다. 현씨는 “외주 제작자들은 영상을 의뢰하는 고객사들을 응대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유튜브는 눈치볼 고객사가 없어 원하는 영상을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

현씨 유튜브의 팔로어는 3만 명에 불과하지만 협찬이 끊이지 않는다. 영상 제작과 관련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카메라 회사인 캐논, 니콘, 파나소닉, 소니에서 간접광고 콘텐츠 제작을 의뢰한다. 강연 등 오프라인에서 수익을 얻을 기회도 생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광고대행사의 의뢰로 갤럭시 노트10의 카메라 사용법을 설명하는 강연을 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주 제작비와 부대 수입을 합치면 월 매출이 1000만원에 달한다.

올해 초까지 종편 방송국 입사 시험을 봐왔던 배근주(30)씨도 최근 유튜브로 진로를 변경했다. 지난해 그는 SK와이번스에서 외주를 받아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팔로어가 4000명까지 늘었다. 배씨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시청자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좋다”면서 “한때 방송국을 선망했지만 어느새 뉴 미디어 산업에 푹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로 진로를 결정한 이들을 위한 취업문이 넓어지고 있다. 배씨는 8월 초 교육 예능 제작 기업 ‘유니브’에 입사했다. 유니브는 대학생 예능 유튜브 채널 ‘연고티비’를 운영하는 영상 제작사로 구독자가 28만 명에 달한다. 이 회사는 대학생 출연진과 20·30세대 기획, 촬영 편집 PD 등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병재, 풍월량 등 300명의 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종합 멀티채널네트워크(MCN) 기업 샌드박스 네트워크에 인수됐다.

일반 사기업들도 미디어 커머스를 시도하면서 PD 채용 수요를 늘리고 있다. 미디어 커머스란 상품을 SNS에서 짧은 예능 영상으로 홍보하는 판매 방식을 의미한다. 마약베개를 판매하는 블랭크코퍼레이션은 tvN의 윤상희 PD와 장가람 PD를 영입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도 동영상과 커머스 부문을 강화하면서 영상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방송사 순수익=1보람’ 자조 섞인 농담도

PD 지망생들이 뉴 미디어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기성 방송국의 위기와도 관련 있다. 종이신문, TV방송으로 대표되는 레거시(legacy·유산이라는 뜻으로 낡은 기술이나 방법론을 지칭) 미디어의 인기가 저물고 뉴 미디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 자금도 덩달아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 미디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어린이 방송 채널 ‘보람튜브’를 운영하는 이보람(6)양의 가족 회사 보람패밀리가 강남 청담동 건물을 95억원에 매입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미국 SNS 분석 사이트인 소셜 블레이드는 보람튜브 관련 채널에서 매달 37억원의 광고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국내 유튜브 콘텐츠 중 가장 많은 광고 매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7월 26일 MBC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어제 하루 MBC 광고 매출액이 1억4000만원을 기록했다”면서 “임직원 1700명의 지상파 방송사가 여섯 살 이보람양의 유튜브 방송과 광고 매출이 비슷해졌으니, MBC의 경영 위기가 아니라 생존 위기가 닥친 것”이라고 했다. 방송계에서는 “방송사 순수익이 ‘1보람(보람튜브 광고 수익×1)’이 안 된다”는 자조적인 농담도 나온다.

3년 경력의 지상파 방송국 PD B씨는 “TV 프로그램은 투입 대비 성과가 적어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면서 “유튜브 영상은 노동 투입량이 적고, 방송 품질이 떨어져도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종편 방송국 PD인 C씨는 “현직 PD들도 유튜브에 관심이 많지만, 일과 개인 유튜브를 병행하기엔 시간이 모자란다”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나희선 샌드박스 네트워크 이사
PD 지망생 출신 유튜버의 ‘원조’ “1년 만에 방송국 생각 접었다”

PD 지망생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나희선(33·유튜브 닉네임 ‘도티TV’) 샌드박스 네트워크 이사가 원조다. 그는 2013년 10월 연세대 법학과 4학년 시절 처음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편성 PD를 지망했던 그가 유튜브 경력을 방송국 입사 스펙으로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게임 방송의 인기와 파급력을 실감하면서 유튜브를 본무대로 삼았다. 현재 그의 채널 구독자는 250만 명이 넘는다.

2014년 그는 다중채널네트워크 기업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창업했다. 다중채널네트워크란 여러 유튜브 채널과 개인 방송가들을 전담 관리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300명의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계약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82억557만원이었다.


PD 준비 당시 레거시 미디어와 뉴 미디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유튜브에 기회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디지털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구독자를 1000명 정도 모아서 방송국에 입사할 때 스펙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송국 입사를 접고 유튜버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은.
“방송을 시작한 바로 이듬해부터였다. 콘텐츠의 기획·제작·편집·유통·편성 과정을 모두 책임졌는데, 직접 영상에 출연하면서 팬덤과 채널의 영향력을 체감했다. 전업으로 삼으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산업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지금은 유튜브 산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매우 많아졌다. 방송국 PD나 제작팀이 우리 회사(샌드박스 네트워크)에 경력직으로 오기도 한다.”

변화의 원인을 꼽자면.
“‘대세감’ 아닐까. 광고 수익도 뉴 미디어가 레거시 미디어를 추월하고 있다. 20대 사이에서도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하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수요가 있는 것 같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기성 방송국이나 프로덕션에 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다만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만큼 디지털 산업도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유입되면 뉴 미디어 산업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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