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석 별똥밭 대표가 한 농산품 전시회에서 감자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별똥밭
노재석 별똥밭 대표가 한 농산품 전시회에서 감자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별똥밭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작물을 잘 키우는 일은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씨앗에, 성능은 우수하면서도 몸에 덜 해로운 농약, 질 좋은 비료,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고성능 농기계 등 농사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농업 생산성이 과거보다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농촌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부들이 적지 않다. 아무리 질 좋은 농산물을 많이 생산해도 제값을 받고 팔기는커녕, 파는 것조차 어려워 썩혀 버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감자도 마찬가지다. 2017~2018년 작황이 좋지 않았던 감자 가격은 지난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 박스가 2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하지만 올해 감자 한 박스 가격은 2만5000원쯤이다. 가격이 10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타 작물 재배를 포기하고 감자 재배 면적을 크게 늘린 농부들의 푸념도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감자농사로 돈을 버는 농부가 있다. 주인공은 경기도 양평에서 농사를 짓는 노재석(40) 별똥밭 대표다. 그는 감자농사를 짓고, 수확한 감자를 칩으로 만들어 판다.

7월 7일 오후 5시쯤 노 대표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세계도자공원을 찾았다. 노 대표는 자신이 생산한 감자로 만든 감자칩과 고구마칩을 팔고 있었다.

노 대표의 가두점포에서 눈을 사로잡은 것은 커다란 무쇠 가마솥이었다. 반질반질하게 길이 난 검은 가마솥은 옻칠한 전통가구보다 더 반짝였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감자밭. 사진 별똥밭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감자밭. 사진 별똥밭

귀농하게 된 배경은.
“고향이 경기도 양평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젖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었다. 어렸을 때는 농사일이 싫었고, 커서 시골에서 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군대 다녀온 뒤에 잠깐이지만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을 관두고 커피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나이를 먹었다. 어느 때인가부터 고향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고, 여자친구는 ‘농업은 체력이 되면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는 평생직장’이라며 선뜻 찬성해줬다. 용기를 얻었고, 귀향을 결정했다. 서른네 살 때다.”

농사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농촌 생활을 꺼리는 것 같다. 여자친구와 함께 농사를 짓나.
“여자친구는 의사다. 인하대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개인병원에서 일한다. 현명한 친구라서 농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중요한 산업이고 앞으로 비전이 있다고 했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농사를 배우라고 적극 추천했다. 농사를 짓고 싶다는 내 생각에 확신을 줬다.”

감자 기르는 농부가 감자칩 만든 이유는.
“나는 1년에 평균 15~20t 정도의 감자를 수확한다. 이 중 파치(팔지 못하게 된 감자)가 2t쯤 된다. 양이 많아 이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어느 날 불현듯 칩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실행했다.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부모님과 형네 가족이 먹는 양에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파치로 만든 감자칩을 형이 운영하는 치킨가게에서 손님에게 서비스로 나눠줬다. 조카들 유치원에도 무료로 제공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형네 가게에서 서비스 감자칩이 떨어졌다고 하니 사먹겠다고 주문하는 손님이 생기더라.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실행에 옮겼다.”

가마솥에 감자칩을 튀기게 된 계기는.
“처음 감자칩을 만들어 팔 당시에는 나조차 내가 만든 감자칩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가 인정해줬다. 귀농하기 전 커피숍을 운영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그때부터 ‘손님을 끌려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마솥 치킨도 있는데 가마솥 감자칩을 만들면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가마솥에 튀긴 감자·고구마칩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소비자 반응은 어느 정도였나.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처음에는 가내 수공업 형태로 감자칩을 만들었는데 만들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작은 무쇠솥을 쓰다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큰 솥으로 바꿨다. 하루에 1000봉지를 팔기도 했다. 하루에 700만원을 번 것이다. 가격(한 봉지 100g)은 7000원으로 비싼 편이다. 그래도 문화 행사장 같은 곳에서 팔면 감자칩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부모님은 원래 감자칩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께 감자칩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더니 무뚝뚝한 아버지는 ‘알았다’고만 하시더라. 그런데 며칠 뒤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 보니 젖소가 없어졌다. 아들을 위해 평생 키워 온 젖소 농장을 정리한 것이다. 지금 감자칩 가공공장이 들어선 곳이 전에 젖소를 키우던 자리다.”

감자칩 사업 시작 이후 어려움은 없었나.
“소비자 반응이 좋으니 당연히 대박을 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못 한 문제가 생겼다. 식품 제조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이었다. 정말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자칩이 잘 팔리니 이를 시샘한 누군가가 허가 없이 식품을 제조한다고 정부 당국에 나를 신고했고 장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식품 제조 허가를 신청하고 허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 번 맛본 손님 중에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이들이 많았지만 몇 개월 동안 팔 수가 없었다. 금전적으로도 엄청 어려웠다. 감자칩 제조시설을 만들기 위해 4억원을 들여 264㎡(80평) 건물을 지었는데 대출 이자 때문에 고생했다.”

최근 매출은 얼마나 되나.
“요즘 감자칩과 고구마칩으로 한 주에 많게는 400만~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적을 때는 100만~200만원쯤 된다. 앞으로 감자칩 판매를 재개했다는 소식이 좀 더 널리 알려지면 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농사를 지을 계획인가.
“물론. 친환경 농법으로 감자농사를 짓고, 귀농 초기에 시도했다가 포기한 커피 농사도 다시 할 계획이다. 감자칩도 계속 만들어 팔 것이다. 첨가제나 보존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감자의 품종과 자라는 밭에 따라 감자칩 맛이 달라진다. 굳이 감미료나 조미료 등 첨가물을 넣을 필요가 없다.”

귀농·귀촌을 준비 중인 예비 농부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농업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많지만 농부라는 직업은 흔치 않은 평생직장이다. 여자친구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나에게 해준 얘긴데 100% 동감한다. 나는 귀농·귀촌을 할 의사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 귀농·귀촌 희망자들은 사전에 어떤 작물을 키우고, 어떻게 팔 것인지 미리 조사하고 계획했으면 한다. 좋은 작물을 많이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제값 받고 파는 것이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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