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중국 총리가 전인대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리커창 중국 총리가 전인대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이 경기하강 속에 새해 성장률 목표치를 6~6.5%로 제시했다. 지난해 목표치 6.5% 안팎은 물론 28년 만에 가장 낮은 작년 성장률(6.6%)에서도 하향 조정한 것이다. 목표치를 구간으로 제시한 것은 경제 불확실성이 컸던 2016년(6.5~7%) 이후 3년 만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회) 제2차 전체회의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 보고를 통해 “올해 격전을 치를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며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올해 정부 운영 방향을 발표했다. 올해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작년보다 0.2%포인트 올렸지만 2017년 수준인 예상치(3%)보다는 낮다. 리 총리는 “향후 나타날 수 있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공간을 남겨두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중국 지도부의 위기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 개인 부담 더는 감세 개혁 가속화

2900여 명의 13기 전인대 대표들이 3월 15일 전체회의 폐막에 앞서 승인할 이 보고 초안에 따르면 ‘최소 성장률 6%는 지킨다’는 ‘바오류(保六) 총력전’을 위해 기업과 개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감세 개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리 총리는 올해 기업의 세금과 사회보험료 납부 부담을 2조위안(약 334조원) 덜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작년 기업의 감세와 비용 부담 감소액보다 7000억위안(약 117조원) 많은 수준이다.

리 총리는 지난해 1억 개를 넘어선 기업(자영업자 포함)이 활력을 가지면 경기하강 압력을 이겨낼 수 있다며 감세 및 비용 인하 정책은 기업의 약점을 보완하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포인트 인하했던 제조업 부가가치세율의 경우 올해 3%포인트 떨어진 13%로 조정될 예정이다. 일반 공업용 및 상업용 전기료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평균 10% 추가 인하하기로 했다. 물류비용도 줄인다. 2년 내 전국 고속도로 성간 통행료뿐만 아니라 철도·항구 관련 비용 징수도 없애기로 했다.

중국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맨다. 리 총리는 정부의 3공 경비(관용차 구매 및 관리비, 공무 접대비, 해외 출장비)를 3% 감축하고, 일반성 지출을 5% 이상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온건한 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대규모로 자금을 쏟아붓는 정책은 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영·중소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책은 더 강화하기로 했다. 중소은행의 특정 지급준비율 인하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모두 민영기업, 소기업, 영세기업 대출에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대형 국유 상업은행이 올해 소기업과 영세기업에 대한 신용대출 자금을 30% 이상 늘리도록 했다.

리 총리는 경기부양책으로 부채 리스크가 재부각될 것을 우려한 듯 “단기적인 부양책 때문에 장기적인 발전을 해치는 새로운 위험이 생기게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은행이 대출을 과도하게 회수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성장과 위기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중국 당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일자리 확보에도 총력 대응

중국 정부는 일자리 확보에도 모든 힘을 쏟기로 했다. 리 총리는“올해 처음으로 취업 우선 정책을 거시 정책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밝혔다. 리 총리가 제시한 대책은 취업 안정과 혁신 성장 동력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게 핵심이다. 농촌 빈곤 인구와 도시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정책을 확대하고, 연인원 150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교육 예산도 늘리기로 했다. 또 저임금 노동력 대신 전통 산업의 고도화와 혁신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소비 촉진과 유효 투자 확대 등 내수 잠재력을 키우는 것도 올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이날 공개한 2019년 국민경제 사회 발전 규획 초안에 따르면 새 소비 성장 동력으로 문화 관광 업그레이드, 양로 산업 고속 발전, 스포츠 산업 혁신 발전, 가정 서비스 품질 제고, 정보 소비 확대 업그레이드 등 5가지가 제시됐다. 리 총리는 60세 이상에 달하는 2억5000만 명의 노인 인구를 겨냥해 지역사회 양로 서비스업을 발전시키기로 하고 조세 비용 감면, 자금 지원, 물·전기·가스·난방 요금 특혜 등의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효 투자도 확대한다. 주로 인프라 투자에 투입되는 지방정부 특별채권 발행 규모를 작년보다 8000억위안(약 134조원) 늘어난 2조1500억위안(약 359조원)으로 잡았다.

리 총리는 지난해 정부업무보고에 포함돼 있던 ‘중국 제조 2025’와 ‘5G(5세대)’를 올해엔 빼고,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를 누차 강조하는 등 중국의 기술 탈취와 기술 굴기 산업 정책을 비판해온 미국에 화해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전인대에서 의결할 외상(외국 기업) 투자 법안에 강제 기술 이전 금지와 지재권 보호 등 미국의 요구를 반영한 조항이 담겨 있다. 리 총리는 “중·미 무역협상을 계속 추진하겠다”면서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제조 2025’란 표현만 빠졌을 뿐 곳곳에 제조 강국 지원 정책을 담았다. 과학기술 예산을 전년보다 13% 늘렸다는 점에서 첨단산업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다.


plus point

전인대는 무엇?
백가쟁명 실종된 무늬만 최고 권력기관

전인대는 헌법에 중국 최고 국가 권력기관으로 적시돼 있는 입법 의결기구다. 하지만 공산당이 정하는 내용을 추인하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늘 받아왔다. 2900여 명의 전인대 대표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는 물론 마화텅(馬化腾) 텐센트 창업자 같은 기업인과 학자들도 포함돼 있다. 형형색색의 전통 복장을 한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도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56개 민족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의식’이 행해진다는 메시지다.

리 총리는 정부업무보고에서 “중·미 무역마찰이 일부 기업의 생산과 경영, 시장 기대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미·중 무역전쟁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번 전인대에서 무역전쟁 관련 논쟁이 엿보이지 않는다(홍콩 빈과일보)”는 지적이 나온다. 시진핑 정부의 무역전쟁 대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대응책이 완벽하다기보다는 사상 논쟁의 결핍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사상의 발전을 이끈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온갖 꽃이 같이 피고, 온갖 학파가 논쟁을 벌이게 하라는 말로 누구든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논쟁할 수 있다는 뜻)’을 두고 마오쩌둥(毛澤東)은 1956년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을 번영시키기 위한 방침이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우파 공격을 위한 권력투쟁 수단’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은 문화대혁명 시기 부르주아 문화로 탄압됐다가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장려되며 1978년 헌법에도 삽입됐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권력을 굳힌 이후인 1982년 개헌을 통해 삭제됐다. 언론 출판 자유가 헌법에 삽입돼 있어 불필요하다는 게 이유였지만 중국이 처한 사상 시장의 결핍을 보여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 전 미 시카고대 교수는 “중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결함은 바로 사상 시장의 결핍”이라며 “개방과 자유가 부여된 사상 시장이 잘못된 사상과 사악한 신념을 막아낼 수는 없지만 사상을 억제하는 건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갈파한 바 있다. 지난해 전인대에서 헌법 개정으로 주석의 임기제를 폐지해 1인 권력체제를 굳힌 시 주석이 책임도 함께 늘었지만 기강 잡기로 비판을 잠재우며 난국을 돌파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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