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왼쪽에서 4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제23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한 계도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홍남기(왼쪽에서 4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제23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한 계도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너무 힘들다. 근로시간 단축이 누굴 위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다 망하라고 하는 것이다. 기업이 망하면 직원은 어디서 일을 하나. 모두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도금 업체 용주산업의 황찬익 대표)

“숙련 근로자들이 투입되는 선박 시운전(시험운전)은 통상 6~8개월이 소요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현재 3개월)이 연장되지 않으면 현행 제도로는 근로시간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 (조선 업계 관계자)

2018년 7월 주 52시간 근무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 산업계에서 쏟아진 목소리다.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급격한 근로시간 조정으로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이대로 가다간 살아남는 기업이 없을 것”이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다 고용 부진과 경기 악화가 이어지자 정부는 강경한 정책 추진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다. 근로시간 단축 위반 사업장 계도 기간도 연장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2018년 12월 26일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탄력근로제 도입 기업이나 도입을 위해 노사 협의가 진행 중인 기업의 경우 탄력근로 관련 개정법 시행 시까지 계도 기간을 연장키로 했으며, 그 외 기업은 2019년 3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현행 3개월로 돼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여부를 2019년 2월 말까지 결론 짓기로 했다.

재계의 바람대로 근로시간 단축 계도 기간이 연장됐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계도 기간이 끝나면 아직 준비가 안 된 기업은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은 어느 정도 대비가 됐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여전히 제도 연착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다양한 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정책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해법 1│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그렇다면 현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제도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탄력근로제’다. 이 제도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 불필요한 연장근로 유발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활용률이 4~7%에 불과하다. 단위기간이 2주·3개월 단위로 한정돼 있어 업무량 사이클이 2주나 3개월보다 긴 주기로 변화하는 기업에는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신제품 개발, 연구·개발(R&D) 등으로 3개월간 이상 업무량에 변화가 있는 전자·반도체·바이오·제약 업계와 정보기술(IT) 업계, 특성상 야근이 많은 벤처·스타트업 업계, 빙과류 판매 등 계절에 영향을 받는 제과 업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예지(31)씨는 “앱 서비스 개발은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로 한정하면 우리 회사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영우 한국기술교육대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1년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현행 단위기간 3개월을 바로 1년으로 늘리긴 어렵겠지만 1차로 6개월로 늘리는 등 단계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법 2│재량 근로시간제 대상 업무 확대

본인 재량에 따라 비규칙적으로 근무하는 전문직 근로자가 증가한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연구원이나 기자처럼 업무 특성상 근로자가 얼마나 어떻게 일했는지를 사업주가 뚜렷이 구분할 수 없는 직업군의 경우 재량 근로시간제를 통해 노사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신상품·신기술의 R&D, 인문·사회·자연과학 연구 업무, 신문·방송·출판사의 취재·편성·편집 업무, 의복·실내장식 등 디자인·고안 업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문제는 기술 혁신, 정보화, 디지털화 등으로 자신의 재량에 따라 근무하는 전문직 근로자가 늘어났는데도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대상이 일부 업무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보다 앞서 재량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일본은 노동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후생노동성 고시를 개정해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일부 사무직에 재량 근로시간제를 허용하는 ‘기획 업무(사업 운영에 관한 기획, 입안·조사·분석 업무)형 재량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현재 한국이 적용하고 있는 대상 외에 카피라이터,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게임용 소프트웨어 개발자,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14개 직군을 추가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해 12월 17일 고용노동부와 국회에 제출한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제도 개선 과제’ 건의서를 통해 “현재 대부분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 업무 특성상 수행 방법, 시간 배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처럼 R&D 지원, 금융 상품 개발, 투자 분석 등 재량 근로시간제 대상 업무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해법 3│인가 연장근로 대상 확대

현재 자연재해나 사고 발생 시에만 연장근로가 허용됐던 ‘인가 연장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 1주 12시간 연장근로가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자연재해 등을 수습하기 위해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한경연은 “자연재해나 사고에 한정된 인가 연장근로 대상을 석유·화학 업계의 정기 보수, 조선 업계의 선박 시운전, 기후에 따라 근로시간이 바뀌는 해외 건설 작업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업계의 정기 보수 작업에는 2~3개월간 대규모 인력의 집중 근로가 이뤄진다. 숙련 근로자가 투입되는 선박 시운전도 업무 특성상 집중 근로가 필요한 분야다. 건조된 선박을 안벽에 계류해 성능을 검사하는 ‘안벽 시운전’은 통상 6~8개월이 소요되며, 건조된 선박을 해상으로 이동해 실제 운항 조건에서 검사하는 ‘해상 시운전’은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린다.

성태윤 교수는 “정부가 가능한 근로 형태를 제시할 게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에 맞는 다양한 업무 형태를 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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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 근로시간제 유연근무제의 일종으로, 특정일의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정 기간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2주 이내 또는 3개월 이내 단위기간을 정해 운영할 수 있다.

plus point

근로시간 줄이더라도 ‘유연성’ 살리는 일본

한국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당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제한하고 있다. 1주에 52시간을 넘어서면 바로 법 위반이 돼 사업주가 처벌받는다. 이에 비해 일본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면서도 한국과 달리 기업 현장을 고려해 ‘유연성’을 대폭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법정 근로시간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으로 한국과 같다. 시간 외 근로는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까지로 정해져 있다.

여기에 일본 노동기준법 제36조는 노사 간 서면으로 협정을 체결하고 행정 관청에 신고한 경우 특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 연장근로의 적용 시간, 임금 할증률 등은 협정 내용에 포함된다. 실제로 도요타자동차 노사는 연장근로를 월 최대 90시간, 연 최대 720시간까지로 하는 협정을 맺어 운영 중이다. 특별 연장근로는 계절적 요인, 제조 공기 단축, 제품 납기 이행 등의 사유가 발생할 때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기업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시간의 유연성을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근로자는 할증임금을 받는 장점이 있다.

백예리 기자, 이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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