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1일 광군제 때 1682억위안(약 27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리바바. 사진 AP연합
지난해 11월 11일 광군제 때 1682억위안(약 27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리바바. 사진 AP연합

직장인 김지민(27)씨는 요즘 퇴근만 하면 중국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다. 11월 11일(현지시각) ‘광군제(光棍祭)’ 때 살 물건을 미리 골라둬야 하기 때문이다. 광군제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2009년 시작한 행사로, 솔로를 뜻하는 숫자 ‘1’이 가장 많이 들어간 11월 11일에 열린다. ‘외로운 청춘을 위로한다’며 알리바바가 파격적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광군제는 벌써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할인 가격으로 결제하는 것은 광군제 당일이 돼야 가능하지만, 할인 품목과 할인율은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 상품은 광군제 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소진되기 때문에, 김씨처럼 지금부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뒀다가 광군제 시작과 동시에 한꺼번에 결제해야 한다. 당일에 쇼핑을 시작한다면 원하는 물건을 못 살 확률이 높다. 김씨는 “의류와 가방은 최대 70%, 전자제품은 60%까지 할인돼, 고르기만 해도 신이 난다”고 말했다.

광군제는 시작한 지 10년 만에 세계인의 쇼핑 축제로 거듭났다. 광군제 하루 동안 알리바바가 벌어들인 돈은 2009년 5200만위안(약 85억원)에서 지난해 1682억위안(약 27조5000억원)으로 3243배 늘었다. 지난해 한국의 백화점 매출 총액이 29조원이었는데, 이에 맞먹는 돈을 알리바바는 단 하루에 벌어들인 것이다. 중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광군제 택배량은 작년보다 33%가량 늘어난 20억 건 이상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미국의 11월 추수감사절 다음 날, 대규모 할인 판매를 함)로 불리는 광군제는 승승장구하지만,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코리아세일페스타(KSF)’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KSF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쇼핑·관광 축제다. 2016년부터 이름을 KSF로 바꿨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한 이 행사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는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가전사까지 포함해 45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주부 정윤희(32)씨는 “10월 초 대형마트에 갔다가 KSF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할인율이 기존 할인행사 수준이었고 할인 품목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온라인 구매에 나설 때는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는 조바심이 드는데, KSF 땐 그런 느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의 말대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중국 광군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할인율과 다양한 품목이다. 두 축제의 할인율은 최대 90%에 달한다. 반면 KSF의 경우 할인율은 10~30%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인터넷 최저가나 해외 직구 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한국 특성 고려 없이 ‘베끼기’에만 급급

이는 정부가 한국의 유통구조 특성에 맞는 행사를 기획한 게 아니라, 해외 사례를 베끼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등은 백화점 같은 유통업체가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직접 사서 판매하는 ‘직매입’ 방식이 보편적이다. 겨울이 되면 새로운 시즌 물건을 사와야 하는데, 그 전에 팔리지 않은 재고를 털어내야 하다 보니 블랙프라이데이 때 높은 할인율을 책정할 수 있다. 반면 국내 백화점은 각 브랜드에 판매 공간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임대업’에 가깝다. 백화점이 직접 판매하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재고가 거의 없다. 제조사로부터 외상으로 사 오고 남은 물건은 반품하는 ‘특약 매입’이 70% 이상이기 때문이다.

‘관제 행사’라는 한계도 있다. 광군제를 주도하는 알리바바의 경우 직매입 방식은 아니지만, 높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제조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 알리바바는 제조사에 최소 10% 이상의 할인 혜택과 ‘1+1 행사’ 등을 제공할 수 있어야 광군제 참여 자격을 부여한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많은 물량을 제작해야 하는 만큼 자금 부담이 크지만, 그 이상의 매출 상승효과를 볼 수 있어 기꺼이 알리바바의 요구에 응한다. 광군제 참여 업체의 당일 매출은 평균적으로 한 달 치 매출과 맞먹는다. 반면 KSF의 경우 기업이 자발적으로 높은 할인율을 제공할 유인책이 없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 A씨는 “나라에서 하는 행사라는 명분 때문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행사 시점도 KSF의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광군제는 11월 11일,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는 11월 넷째 주 금요일, 영국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부터, 홍콩 메가세일은 12월부터 시작된다. 소비 여력이 있는 연말연시와 가깝게 배치한 것이다. 반면 KSF는 추석 직후인 9월 말부터 10월 초순에 열린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 B씨는 “추석 때 이미 많은 소비를 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또다시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SF의 실적 역시 매년 감소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행사 첫해인 2015년 10월 1~14일 2주간 참여 업체의 매출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0.7% 증가했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은 “예년 정기 세일 기간 수준의 매출 성장에 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20.7%라는 숫자는 그 이후 시행된 KSF의 실적에 비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KSF로 이름을 바꾼 2016년 참여 업체 매출액은 1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에는 5.1%로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올해 KSF의 실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역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 C씨는 “올해의 경우 지난해보다 행사 예산도 줄고(51억원→34억원) 행사 기간도 한 달가량에서 10일간으로 줄어든 만큼, 매출이 크게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KSF 폐지론’이 매년 언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KSF가 실패했다고 해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적 낭비라고 지적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KSF를 “정부 주도 행사의 한계를 드러내며 완전히 망가진 대표적 프로젝트”라면서도 “브랜드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몇 년간 ‘KSF’라는 브랜드를 위해 수십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만큼, 폐지하기보다는 행사 콘텐츠, 시기 등을 전략적으로 재검토하는 ‘리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광군제 위해 위성까지 쏘아 올리는 알리바바

알리바바의 물류 자회사 ‘차이냐오’가 사용하는 로봇. 사진 바이두
알리바바의 물류 자회사 ‘차이냐오’가 사용하는 로봇. 사진 바이두

광군제는 알리바바가 개발한 첨단기술을 시험하고 발표할 수 있는 또 다른 장(場)이다. 장융(張勇)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는 10월 21일 기자회견에서 “광군제는 알리바바의 금융·물류·클라우드·인프라를 둘러싼 ‘디지털 혁신’을 보여주는 자리”라며 “광군제가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올해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전용 미니 우주정거장과 통신위성을 발사하는 ‘이잔이싱(一站一星)’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거래가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광군제 특성을 고려해 소비자들이 원활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통신과 데이터 처리를 돕기 위해서다. 알리바바 측은 “이잔이싱 프로젝트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즐거운 쇼핑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물류 기술도 선보인다. 알리바바의 물류 자회사 차이냐오(菜鸟)는 최근 장쑤성 우시의 ‘사물인터넷(IoT) 미래단지’에 있는 스마트 로봇창고를 가동했다. 이곳엔 700대의 운반 로봇 ‘샤오란런(Xiaolanren)’이 있다. 샤오란런은 주문서에 맞는 택배 상자를 스스로 찾아 운반할 수 있고 장애물을 피할 수 있으며, 스스로 충전도 가능하다. 공장 면적은 3만㎡(약 9000평)에 이른다. 창고 내 카메라는 영상 촬영과 보존뿐 아니라 창고 상황까지 스캔한다. 이를 통해 회사는 재고와 입·출고 상황을 자동으로 계산할 수 있다. 알리바바는 이 같은 최첨단 기술을 통해 물류 처리 효율성을 기존보다 20%가량 끌어올렸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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