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9월 2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미 장기 금리 급등에는 이런 연준의 금리 인상 배경을 투자자들이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 AFP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9월 2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미 장기 금리 급등에는 이런 연준의 금리 인상 배경을 투자자들이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 AFP 연합뉴스

여유 자금 1억원으로 국내 주식 서너 개에 분산투자하고 있는 직장인 김성욱(35)씨는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미국 증시를 체크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간 주요 기술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 상승장을 주도했던 미 나스닥 지수가 10월 10일(현지시각) 하루 사이에만 4% 넘게 곤두박질친 것이다. 국내 증시의 향방을 미리 알 수 있는 ‘선행 지표’ 역할을 하는 미 증시 대표 지수가 흔들리자, 뒤이어 11일 열린 국내 주식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4.4% 떨어져 2200선이 붕괴됐다. 코스피지수가 4% 이상 급락한 것은 7년 만에 처음이었다. 김씨는 “특별히 새로운 리스크가 불거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갑작스레 장이 폭락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손절매(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파는 일)를 해야 할지, 버티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셀 스톡(Sell Stock∙주식 매도)’ 바람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를 덮치고 있다.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최근의 폭락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증권 전문가들은 갑작스럽게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핵심 요인으로 ‘미 국채 10년물 금리 급등(국채 가격은 하락)’을 꼽는다. 안전자산인 국채 10년물의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장기로 묻어둘 수 있는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는 것으로, 그만큼 미국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나 전망에 따라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연준의 긍정적인 경제 전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경우 돈은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으로 흘러가 증시 역시 호황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미국 경제가 ‘정말’ 좋아지면 연준은 그간 풀었던 돈줄을 다시 죄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고, 신흥국 위기는 재차 부각된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3.2%를 기록해 2011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을 이어갔다. 투자자들이 왜 미국 경제가 진짜로 좋다고 판단했는지 세 가지로 정리했다.


1│美 경제 지표 개선

최근 미국 장기 금리가 급등한 것은 주요 경제지표를 통해 2020년 초까지는 미국 경기 호황이 지속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2.3% 내외를 기록하며 잠재 성장률(1.8%)를 크게 웃돌고 있다. 여기에 미 공급관리자협회(ISM) 비제조업 지수가 지난달 61.6을 기록, 1997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한 것도 경기 확장의 장기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지난 3일 “기준금리가 아직도 (물가 상승이나 하락 압력이 없는 금리 상태를 뜻하는) 이상금리와 거리가 멀다”는 매파적 발언을 내놓으며 올해 12월 재차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연준은 현재 이상금리를2.75~3% 수준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 기준금리가 2~2.25%인 만큼 더 올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2│물가 상승 압력 커져

경기가 좋아야 물가가 오른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물가 상승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와 소비자물가지수(CPI) 두 가지가 크게 오르고 있다. PCE의 경우 지난 5월부터 목표치인 2%에 도달해 있는 상태다. 연준은 통화정책과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하는 데 PCE를 핵심 인플레이션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연준이 보조 지표로 활용하고 있는 CPI 역시 상승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 등 산유국의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국제 유가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물가 상승 기조를 부채질하고 있다.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최근 배럴당 70달러 선을 웃도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유가가 올라가면 수입 물가가 올라간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 가치가 떨어지면(달러화 약세) 각종 비용 증가로 PCE는 최고 2.5% 이상 치솟을 수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지는 이런 흐름을 달러화 강세를 통해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3│돈 풀던 유럽도 ‘돈줄 죄기’

장기 금리 급등은 글로벌 주요국이 경기가 좋아졌다고 판단해 테이퍼링을 본격화한 결과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0~12월 자산 매입 규모를 150억유로로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 상태다. 연말까지는 채권 매입을 통한 돈풀기를 아예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미 연준처럼 기준금리까지 인상하는 시기는 내년 상반기 이후가 될 전망이다.

이런 식으로 주요국들이 점진적으로 돈줄을 죄면,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내년 최고 4%까지 오를 수 있다. 금리가 이 수준까지 오르면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글로벌 주요 펀드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등 글로벌 자금 흐름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장∙단기 금리차를 봐야”

다만, 미국의 장기 금리 급등이 결과적으로 경제가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투자자들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국채 10년물보다 단기 금리(2년물)가 더 빨리 올라오히려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는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니 라이프지거 전 세계은행 부총재도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특별 강연에서 “현재 미국의 장∙단기 금리는 거의 동일한 상황”이라면서 “미래에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 투자자들이 단기로만 돈을 맡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말 장∙단기 금리 차를 의미하는 미 국채 10년물과 2년물의 금리차는 18.84bp(1bp는 0.01%포인트)까지 좁아졌다. 단기 국채에 돈이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안 좋아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잠깐씩 자금을 맡기고 흐름을 지켜보겠다는 수요가 반영되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 차가 축소되거나 아예 역전되는 것은 ‘경기 후퇴의 전조’로 해석된다. 10월 5일 현재 장∙단기 금리 차는 34.87bp 수준으로 벌어진 상황이다. 투자 기간이 긴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더 올라간 것이 영향을 미쳤는데, 안심하기엔 이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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