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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에서 구광모(맨 오른쪽) LG전자 상무가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지난 23년간 LG그룹을 이끈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의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어떻게 경영권을 승계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LG그룹뿐만 아니라 삼성·현대차·롯데그룹 등 국내 주요 재벌들도 지금 경영권 승계란 숙제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국내 재계 순위 4위인 LG그룹은 올해 마흔 살인 구광모 상무가 이끄는 것이 공식화됐다. 구 상무는 원래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데 2004년 큰아버지인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양됐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데,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대신 구 상무가 그 뒤를 잇게 된 것이다. 구 상무는 2006년 LG전자 재경부 금융팀에 입사한 뒤 12년간 경영 훈련을 받았다. LG전자의 핵심 사업인 가전·TV 부서와 LG 계열사 간 사업 조율 업무를 하는 ㈜LG 시너지팀을 거쳤고 올해 초부터는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사업부를 이끌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광모 상무가 ㈜LG의 최대주주·등기이사였던 구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아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이 관계자는 “지주회사 경영은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인재 육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구 상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 문제가 없다”며 “6명의 부회장 등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들과 공조해 구 상무를 보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상무는 6월 29일 열리는 주총에서 ㈜LG의 등기이사로 선임되고, 이후 이사회에서 직급과 역할 등이 결정될 예정이다. 구 회장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이 역할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LG家의 장자 승계 원칙을 명확히 보여준다. LG는 ‘가업은 장남이 물려받고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들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전통이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구광모 상무가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도가 구 회장 타계 직전 이미 확정됐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구 상무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별 문제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은 과거 GS그룹과의 분리에서부터 지주회사 전환까지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재 LG그룹의 지분을 보면 구본무(11.28%) 회장, 구본준(7.72%) 부회장에 이어 구광모 상무가 6.24%를 보유하고 있다. 구 회장의 지분을 1.48% 이상만 상속받아도 최대주주가 되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엔 문제가 없다. 재계 관계자는 “인화를 중시하는 LG의 기업 문화를 볼 때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잡음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LG는 4세 경영을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며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낮고, 삼성 등과 달리 지배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4세 경영 승계에 대해 시장에서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LG그룹은 당분간 6인의 부회장급 전문경영인이 구 상무를 측면 지원하면서 주요 계열사 경영을 책임지는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부회장들은 CEO 재임 기간 중 외형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14년째 CEO로 재임 중인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난 10년간 영업이익을 두 배 이상 늘릴 정도로 회사를 키웠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지난해에만 영업이익을 80% 넘게 늘렸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도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LG디스플레이는 한상범 부회장 승진 후 1조6300억원(2015년)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조4600억원으로 커졌다. 권영수 부회장이 2016년부터 경영을 맡은 LG유플러스 매출은 10조8000억원에서 12조2800억원으로 늘었다. 구광모 상무가 CEO로 일한 경험이 없는 탓에 핵심 계열사를 이끄는 이들 부회장들의 경영 능력이 당분간 LG그룹의 실적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재벌 중 첫 4세 경영

구본무 회장이 와병 중일 때 총수 역할을 했던 구본준 부회장은 당분간 기존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면서 조카의 경영수업을 도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LS그룹이나 LIG그룹처럼 LG그룹에서 독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LG그룹은 구광모 상무 중심의 새로운 경영체제로의 전환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본준 부회장은 구 상무의 경영 승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그의 거취 역시 이미 LG家 가족회의에서 결정 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LG는 전통적으로 계열 분리를 통해 장자 승계가 이어져 왔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만들어 LIG그룹으로 독립했다. 또 여섯 형제 중 넷째인 구태회, 다섯째 구평회, 막내인 구두회 형제는 2003년 계열 분리해 LS그룹을 설립했다. 구본무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던 1995년에도 당시 LG반도체를 이끌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유통사업을 담당하던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은 그룹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났다.

구 상무가 공식적인 후계자로 올라서게 되면 국내 주요 재벌 가운데 처음으로 LG그룹이 4세 경영에 나서게 되는 셈이다. 구 상무로의 경영 승계에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바로 상속세 문제다. 구본무 회장이 가진 지분은 약 1조9000억원에 이른다. 구 상무가 이걸 상속받으려면 절반인 1조원 가까이를 상속세로 내야 한다. 최근 검찰이 LG 오너 일가의 세금 탈루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선 이 문제가 경영권 승계에 복병이 될 수도 있다.


plus point

재계, 3·4세 경영 본격화

LG그룹이 4세 경영으로 승계 작업을 공식화하면서 재계를 대표하는 주요 그룹의 세대교체가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은 5월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를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 3세 경영의 포문을 열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경영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는 아직 마무리가 덜 된 상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공정위가 신격호 회장에서 신동빈 회장으로 총수를 변경하면서 법률적인 2세 경영이 시작됐다. 신격호 회장은 지난해 8월 롯데 계열사 중 마지막까지 등기임원 직위를 유지하던 롯데알미늄 이사에서 물러나면서 경영 전면에서 물러났다. 5월 11일에는 롯데지주 이사회를 통해 총괄회장이라는 직함마저 떼이면서 1세 경영의 막을 내렸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 승계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 합병이 물 건너가면서 암초에 걸린 상태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국내외 의결권자문사의 반대로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을 다룰 주주총회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3세 경영의 첫발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결국 반대 여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개편안 철회를 결정하면서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효성그룹은 지난해 조석래 명예회장이 ㈜효성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3세 경영 승계 작업이 본격화됐다. 지주회사 전환을 앞둔 ㈜효성은 장남인 조현준 회장이 승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배구조 개편안 발표를 앞둔 한화그룹이나 한진그룹 등 다른 여타 그룹들도 3세 경영 승계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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