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만 놓고 보면 기업 경영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요즘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18명 판사들은 회계장부와 재무제표 등 법정관리 기업들의 각종 자료에 파묻혀 지낸다. 말 그대로 눈코 뜰 새도 없다. 1999년 국제통화금융(IMF) 관리체제하에서 처음 생긴 파산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0개에 달하는 법정관리 기업과 70여 자영업자, 게다가 수많은 개인파산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살 곳은 살리고 죽을 곳은 죽여야 하는’ 극단적인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파산이냐 회생이냐, 생사를 오가는 기업들과 이들 기업을 살리려는 파산부의 모습은 영락없는 ‘병원 수술실’이다. 파산부의 가장 핵심적인 수술법은 다름 아닌 M&A(인수·합병)다. 파산부는 곧 M&A 전문기업이다.

파산부는 ‘기업 사형장’ 아닌 ‘M&A 전문기업’

2008년 12월15일 오후 3시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가 위치한 서울중앙법원 남관 3층 수석부장판사실 옆 회의실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기업회생 M&A’를 주제로 18명 파산부 판사들이 한 곳에 모였다. 정신 없이 바쁜 파산부 판사들이지만 연구활동에도 귀한 시간을 내야만 한다. 특히 이날 세미나의 주제인 ‘M&A’는 파산부가 온 신경을 쏟고 있는 화두다.

우리나라 파산부는 지난 2000년부터 많은 법정관리 대상 기업들을 조기 종결시켰다. M&A를 통해서였다. 2000년 2건, 2001년 14건, 2002년 19건, 2003년 8건, 2004년 15건, 2005년 6건, 2006년 6건, 2007년 7건, 2008년 12월15일 현재 2건 등 모두 79건에 이른다. 다른 나라 기업회생절차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성과다.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삼미특수강, 유원건설, 범양상선, 세양선박, 쌍방울, 쌍방울개발, 미도파, 한신공영, 통일중공업, 극동건설, 기아특수강, 고려산업개발, 영남방직, 뉴코아, 진도, 동서산업, 일화, 두루넷, 진로, 아남건설, 한합산업, 건영 등이 M&A를 통해 살아났다. 현재에도 여러 건의 M&A가 진행 중이다.

법정관리 제조업·건설업종 대다수 

지난 2006년부터 시행된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파산부의 이미지를 과거의 ‘형 집행자’에서 ‘수술실 의사’로 바꾸어놓았다. 부실한 기업 중에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고,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른바 ‘볼 필요도 없는’ 곳이 있다. 경제성은 있지만 일시적인 재정 부담으로 회생절차를 밟게 된 기업들에 대해선 ‘기필코 살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파산부’라는 이름은 어감상 유쾌하지 않다. ‘부실한 기업 잡아와서 완전히 죽이는 사형대’ 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계속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아 회생사건이 기각되거나 폐지되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다. 2006년 4월 통합도산법 시행 이후 현재(2008년 12월15일)까지 회생 기각 건수는 모두 12건. 접수 후 바로 기각이 된 경우다. 회생 폐지 건수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더 높다고 판단된 21건과 회생절차에 동의하지 않아 폐지된 11건을 합쳐 총 32건이다.

2008년 한 해 동안만 놓고 보자면 계속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은 경우 11건과 회생절차 부동의로 폐지된 4건을 합친 폐지 건수는 모두 15건이었다. 여기에 기각 6건을 합쳐 모두 21건이 회생에 실패했다. 

이처럼 회생을 희망했지만 결국 파산절차를 밟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보기 좋게 회생하기도 한다. 이때 M&A가 용이한 회생 방편이 된다. 파산부 판사들이 전문가를 초빙해 ‘기업회생 M&A’ 세미나를 열고 개인학습에도 열을 올릴 정도로 파산부는 M&A를 중요하게 여긴다. M&A를 부실기업 회생의 가장 효과적이고도 현실적이 방안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M&A가 민간경제활동 분야의 하나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대책의 일환으로 M&A가 활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파산부 역시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간으로 보자면 M&A와 비슷하다. 기껏해야 10년밖에 안 되는 역사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회사정리·회생실무에서 법원은 M&A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파산부는 자신하고 있다.

실제로 파산부는 회사정리 실무에서 최초의 정리계획 입안단계부터 M&A를 기준으로 삼곤 했다. M&A에 지장을 초래할만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결국 회생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정리계획 인가 후에도 관리인에게 항상 M&A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수행하도록 지도·감독하기도 했다. 이처럼 M&A는 도산 기업이 회생하는 중요한 방안이었다.

종전의 파산부에서 주관한 M&A는 추진 방식이나 세부적인 내용에서 통일된 기준이 적용되지는 못했다. M&A의 대상인 회사의 사업과 수익성, 채무이행 상황 등 기업별 상황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M&A는 비교적 잘 성사됐다.

M&A 기술도 시대 따라 익혀야

통합도산법이 시행되면서 환경이 과거와는 많이 바뀌었다. 파산부의 M&A 활용에 적잖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통합도산법이 기업회생 M&A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종전 경영자가 기업 관리인이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법정관리가 개시됨과 동시에 제3자를 관리기업의 경영자로 삼았다. 종전 경영자의 영향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M&A는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하지만 통합도산법 이후, 종전 경영자는 회생과정에서도 관리인으로 활동한다. M&A가 다소 지연될 수도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종전 경영자인 관리인이 M&A를 달갑지 않게 여길 수 있어 파산부로서는 신경이 쓰인다. 기업 지배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종전 경영자의 욕심 때문에 M&A를 통한 기업회생이 지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기업을 좋은 값에 팔아치우는 것도 종전 경영자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종전 경영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채와 각종 책임을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느냐에 온통 관심을 쏟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통합도산법 시행 이후 기업회생 M&A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산부가 M&A를 진행하면서 신경 써야 할 대상이 또 있다. 바로 채권자다. 그 동안 정리회사의 M&A는 지나치게 관리인 주도로 운영돼 왔다. M&A 결과에 가장 많은 이해관계가 있는 채권자가 M&A 과정에 개입할 기회가 적었다. 그렇다 보니 파산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채권자로부터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정리회사의 지배권을 넘겨버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곤 했다. 통합도산법 환경에서의 회생기업 M&A에서는 채권자 측의 이해관계가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추세다. 때문에 M&A절차에서 이해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다 수준 높은 조정절차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파산부 판사들이 ‘기업회생 M&A’ 연구를 계속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이다. 현재 파산부 판사들의 화두는 확실히 M&A인 듯 보인다. 2009년부터 쏟아질 건설업체들의 법정관리행 러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이들 기업을 조속히 살려낼 유일한 방법은 M&A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판사들은 M&A뿐 아니라 회계이론과 기업가치평가론 등 실무에 필요한 굵직한 주제를 놓고 다 같이 모여 세미나 형식의 연구를 진행한다.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온통 일 범벅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파산부 일상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판사실의 모습은 일반 판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일반 판사실은 보통 2명의 법관이 1실을 사용하면서 온종일 기록 넘기는 소리만 나는 조용한 절간 같은 곳이다. 하지만 구 사법연수원 교수실을 개조한 파산부 판사의 판사실은 1실을 4~5명의 법관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

판사 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있고, 실무관이 기록자료를 운반하느라 수시로 드나든다. 회계장부나 재무제표가 쌓여있고, 판사의 모니터에는 경영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그래프가 수시로 뜬다. 사무실로 찾아오는 방문객 빈도 수도 타 판사실에 비해 훨씬 잦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업 CEO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맡고 있는 회사의 경영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야 하고 관리인과 임원들을 불러 놓고 보고를 받아야 한다. 분주한 일반 회사의 경영인 방의 모습과 별 다를 게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들은 일이 두 배, 세 배로 늘었다. 지난 9월을 넘기면서 기업회생사건이 봇물처럼 터졌고 2007년 하반기 이후 하향 안정화 추세이던 개인파산·개인회생 사건이 대폭 늘어난 탓이다.

파산부에는 현재 고영한 수석부장판사(고등부장판사)를 포함, 모두 18명의 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동원 부장판사를 제외한 단독판사들은 사법연수원 제25기에서 32기까지 기수가 다양하다. 하지만 다른 부서의 판사들에 비해 경력이 많은 편이다. 파산부 판사들은 기업체 관계인들과 접촉하며 이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가급적 선임판사들이 파산부에 배정됐다.

파산부의 사무 분담은 매우 복잡하다. 파산부에는 6개의 기업회생합의부, 5개의 회생단독, 20개의 개인파산 단독, 7개의 개인회생단독, 1개의 법인파산합의부, 1개의 항고부가 있다. 6개의 회생합의부의 재판장은 고영한 수석부장판사가 전담하고, 1개의 법인파산합의부는 이동원 부장판사가 담당하고 있다. 각 단독판사들은 합의부의 배석이 되어 기업회생 또는 법인파산의 주심으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 외에도 회생단독사건, 개인파산사건, 개인회생사건까지 처리해야 한다.

법인이 아닌 자영업자 등의 회생 사건인 회생단독사건 대상 중에는, 자산 규모가 수십억~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규모의 사업체들도 있다. 2008년 1월1일부터 12월15일까지 접수된 회생단독사건은 모두 72건. 직업별로 보면 회사원(1명), 자영업(19), 의사(22), 치과의사(6), 한의사(13), 수의사(1), 약사(4), 가사(2), 회사관리인(3), 임대업(1) 등이다. 

판사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건을 중첩적으로 맡고 있다. 회생단독사건만 전담하는 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업회생사건을 담당하면서 회생단독과 개인회생 등을 동시에 맡는 그런 구조다. 

가장 많은 수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상구 판사의 경우 현재 제3파산부의 우배석으로 기업회생사건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제5회생단독, 제4개인회생단독 등 4가지 업무를 맡고 있다. 다른 판사들도 기업회생사건 이외에 보통 2~3가지 업무를 함께 소화한다. 

이처럼 파산부 판사들은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정신없는 경우가 많다. 현재 주심별로 7~8개의 회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회생계획인가 전까지의 회사는 일정에 따라 목록 제출, 채권 조사, 회생계획안의 작성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각 주심판사는 관리인이 일정에 맞추어 이를 처리하고 있는지, 또 제출한 서류에 문제점이 없는지 등을 검토해 재판장에 보고 해야 한다. 회생계획이 인가된 후라도 수시로 허가사항을 신청하기 때문에 이를 검토해서 허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신경을 덜 쓸 수 없는 업무이기 때문에 늘 예민한 상태다. 

기업과 관련된 업무는 정확성뿐 아니라 신속성이 생명이다. 때문에 회사 관련 업무가 접수되면 그날그날 즉시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회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 검토하다가 하루 일정을 마치는 경우가 있다. 정시 퇴근은 꿈꾸기 어렵다.

개인파산은 한꺼번에 100건 이상 

회사 사건이 바쁘다고 개인파산·개인회생 사건을 다른 사람이 처리해 줄 수도 없는 일. 주어진 모든 업무가 자기 자신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심야시간을 이용해 개인파산·개인회생 사건을 검토한다.

개인파산의 경우 한꺼번에 100건 이상의 기록이 올라온다. 일주일 안에 이를 모두 처리하려면 ‘내게 개인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예 속 편하다. 때문에 파산부 판사의 어린 자녀들은 아빠를 일반 회사원으로 아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판사는 근엄하고 깔끔한 법복 차림에 걸음걸이마저 여유가 있는 모습이지만 현실 속 판사 아빠는 넥타이가 약간 풀린 채 늘 일에 지친 몸으로 밤늦게 들어오는 모습이다. 휴일에도 ‘회의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양복을 차려 입고 급하게 나서는 아빠는 영락없는 ‘쉴틈없이 바쁜 회사원’이다.

이들 파산부 판사들에게 앞으로 더 많은 업무가 쏟아질 것 같다. 기업회생사건의 경우 2006년에는 22건, 2007년에는 29건이 접수되었지만 2008년 12월15일 현재 94건이 접수됐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9월 이후, 한 달 평균 6~7건이 접수되던 기업회생사건이 10건 이상 대폭 증가했다.

월별로 보면 1월 8건, 2월 5건, 3월 8건, 4월 8건, 5월 7건, 6월 6건, 7월 5건, 8월 4건, 9월 9건, 10월 13건, 11월 14건, 12월15일 현재 6건 등이다.

법인회생 사건 94건의 업종별 현황을 보면 제조업이 44건, 건설업이 30건으로 두 업종이 주를 이룬다. 제조업부문에는 차량부품제조업(2), 전자제품제조업(12), 금형·성형제조업(3), 섬유제조업(5), 피혁제품제조업(1), 식품제조·가공(2), 어패류양식업(1), 의류제조업(3), 기타(15) 등이 있다. 건설업에는 토목(5), 주택건설업(8), 레미콘제조판매(1), 부동산임대업(6), 기타(10) 등이 있다. 이외에 운송업(2), 각종 판매업(4), 소프트웨어개발업(2), 정보통신업·제조(1), 전자상거래서비스업(3), 영화상영(1), 골프회원권매매알선업(1), 의료업(6) 등도 있다. 이중 법원 계류 중인 기업회생사건 해당 기업은 모두 78개로 외환위기 직후 가장 많았던 시기에 육박하고 있다.

건설회사의 구조조정이 끝나면 은행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건설회사가 한꺼번에 회생절차를 신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파산 신청 기업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파산부 판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파산부는 외환위기 발발 2년 후인 1999년 세계은행(IBRD)이 20억달러의 구조조정 차관을 제공하면서 파산법원의 신설을 요구하며 탄생했다. 대법원은 민사 50부의 이름을 파산부로 바꿨다. 출범 당시 6명이었던 파산부 판사는 현재 18명으로 늘었다. 파산부는 현재의 18명으로 2009년 업무를 소화하기엔 벅찰 것으로 예상하고 2명의 판사를 파산부에 배정해 달라고 상부에 요청해둔 상태다.

 인터뷰  고영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판사

“파산 신청 시기 놓쳐 회생 못한 기업 안타깝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요즘 한 시라도 쉴 틈이 없다. 외환위기 때의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 초 경제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 속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마무리 될 시점엔 건설업체들의 파산 신청이 줄을 잇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파산부 18명 판사들의 수장인 고영한 수석부장판사(54·사법연수원11기)는 올 2월을 무척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재정파탄이 심화되기 전에 파산부로 찾아와 회생 신청을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산부에게 맡겨지는 업무는 거의 쏟아지는 수준이고 당분간 일은 더 늘어날 추세다. 고단한 정도가 심하지만 일의 중요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연속되는 야근, 릴레이 회의, 휴일도 제대로 없는 나날들이 힘들다고 불평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파산부는 일거리를 더 만들려고 하고 있다. ‘살릴 수 있는 기업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고영한 부장판사는 “재정적 파탄이 심화되기 전에 신청했더라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는 회사가 신청 시기가 늦어져 회생에 실패하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곤 “한시라도 빨리 운전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생과정에서 어떤 기업이 망하고 어떤 기업이 살아남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꺼렸다. 파산부에 근무한다고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설명이라고 했다. 큰 틀에서라도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하자,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경우를 보면 보통 대표이사가 투명한 회계 없이 방만하게 운영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회사가 파탄에 처한 근본 원인이 영업력에 문제가 있어 회생절차 신청 전에도 계속 적자상태였다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생절차는 회생할 가치가 있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채무자를 재건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입법적 결단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회생절차 대상은 재정적 파탄에 빠진 채무자이지 경제성이 결여된 경제적 파탄에 빠진 채무자가 아니다. 경제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부실기업을 억지로 살려놓는 것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런 기업을 회생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파산부는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하면서 의도적으로 회생절차를 악용하려는 부실기업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문제가 있을 때는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을 박탈시키고 제3자를 관리인으로 내세운다.

이에 대해 고 부장판사는 “법은 원칙적으로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해야 하지만 기존 경영자가 재산의 유용 또는 은닉이나 그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는 부실경영을 했을 때에는 제3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며 “따라서 법원은 개시단계에서부터 기존 경영자에게 이러한 사유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있고, 개시 후에도 조사위원에게 이에 대한 조사를 시켜 이러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나 기타 해임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관리인을 해임하는 등 관리인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광주 출생인 고 부장판사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4년 대전지법을 시작으로 서울지법, 서울고법 등지에서 판사로 일했다. 1994년부터 5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고, 이후 서울지법 광주고법 등지에서 부장판사로 활동했다. 2008년 2월부터 파산부 수석부장판사로 활약 중이다.   

주로 어떤 분들이 파산부 판사로 배정받습니까.

특별한 인사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전입하는 판사 중 7~8년차의 선임판사가 주로 파산부에 배정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기업의 CEO나 임직원들을 상대하려면 나이가 좀 있어야 되겠지요. 기업체 사람들을 오라 가라 해야 하고, 대면보고를 받고 또 기업을 컨트롤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경륜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합도산법 분야에 관한 연구성과가 있거나 공인회계사 자격이 있거나 세무 관련 전문지식을 갖춘 판사라면 파산부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산부 판사들 중에는 우수한 분들이 많습니다. 파산부에 배정된 후에도 꾸준한 교육이 요구됩니다. 회계나 부기 전문성을 확실히 갖춰야 하고 그래서 외부강사를 초빙해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파산부 판사들만의 애환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밤낮 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기업이 회생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일 것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수술을 집도했음에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를 지켜보는 의사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잘 회생해서 정상을 되찾는 기업을 볼 때는 보람이 큽니다. 파산부 일이 힘에 부쳐도 이런 보람을 생각하면 또 힘을 내곤 합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만의 애환이라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이기도 한데요, 지방에서 도산사건을 처리하는 판사님들이 우리 파산부의 실무방식과 경험에 대해 문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문제해결책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지만 중앙지법 파산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법정관리를 통해 살아난 대표적인 기업 사례를 소개해주십시오.  

웅천텍스텍은 통합도산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산을 신청한, 파주에 있는 섬유회사였습니다. 그 동안 섬유산업의 활황으로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대표이사는 향후 국내에서의 섬유산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미국 진출을 위해 중남미에 큰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지출됐는데 이 때문에 국내 공장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습니다. 중남미 공장에서의 수익은 향후 2~3년 후에라야만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출은행이 연말에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기존 대표이사는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향후 국내 공장 및 중남미 공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채무 변제할 것을 회생 계획으로 세워 채권자 대부분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현재 계획대로 중남미 공장의 수익으로 회생채권을 변제해 나가고 있어 조만간 종결될 예정입니다. 그 대표이사는 회사의 경영권도 보장받으면서 회사도 성공적으로 살리게 된 것입니다. 또 LCD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인 현대LCD처럼 회생절차 신청 전에 이미 인수자를 모색해 회생계획의 인가로 M&A절차가 종료되어 조기 종결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만일 회사의 사정이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M&A가 진행되었다면 성공 여부는 불투명했을 겁니다.

‘이런 기업은 망하고, 이런 기업은 살아난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파산부에 근무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회사를 보면 보통 대표이사가 투명한 회계 없이 방만하게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회생절차는 회생할 가치가 있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채무자를 재건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입법적 결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회생절차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경제성은 있지만 재정적 파탄에 빠진 채무자이지, 경제성이 결여되어 경제적 파탄에 빠진 채무자는 아닙니다. 따라서 회사가 파탄에 처한 근본 원인이 영업력에 문제가 있어 회생절차 신청 전에 계속 적자상태에 있었다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파산부는 최근 기업이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한 당일부터 ‘원스톱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법원 절차를 간소화시켰습니다. 실효성이 있습니까.

예전 회사정리 당시에는 보전처분명령 시까지 3~4일이 걸렸는데, 요즘은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하면 당일이나 그 다음날 바로 회사의 대표자를 불러 보전처분명령을 합니다. 즉시 보전처분을 함으로써 회사 재산의 산일을 방지해 혼란을 막고 회사의 대표자로 하여금 회생절차에 임하는 자세를 고무시켜 회생절차의 원활한 진행에 도움이 됩니다.

기업 회생절차에서 종전의 경영주를 부실기업의 경영 관리인으로 임명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악덕 사주들이 많아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은 원칙적으로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해야 하지만 기존 경영자가 재산의 유용 또는 은닉이나 그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는 부실경영에 기인하는 때에는 제3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개시단계에서부터 기존 경영자에게 이러한 사유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있고, 개시 후에도 조사위원에게 이에 대한 조사를 시켜 이러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나 기타 해임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관리인을 해임하는 등 관리인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기존경영자 관리인제도하에서는 감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에 감사를 통한 회사의 감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 그 시기를 인가 전 단계까지 앞당기려하고 하고 있습니다. 채권자협의회를 통해서도 관리인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경영 악화로 법정관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 CEO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재정적 파탄이 심화되기 전에 신청했더라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는 회사가 신청 시기가 늦어 회생에 실패하는 기업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회생절차를 염두에 두는 경영자라면 재정적 파탄이 심화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운전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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