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대 유전자원 전쟁이 시작됐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이란 유전자원을 활용해 의료·통신·신소재 등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식물 추출 의약품이 급증하는 등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이 주목받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시장 규모도 급속히 불어나고 있는 중이다.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제3세대 유전자원을 둘러 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은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을 통해 종자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전략이다.

식물•곤충이 미래의 ‘돈’ 

농업 패러다임이 바뀐다

2009년 세계 제약 업계 최대 스타는 ‘타미플루’였다.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간 신종인플루엔자의 유일한 치료약이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타미플루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사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약을 판매하는 로슈는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타미플루의 연간 시장 규모는 3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 제약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타미플루의 원재료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향신료로 사용되는 스타아니스 추출물이다. 재미 한국인인 김정은 박사는 스타아니스 추출물로 인플루엔자의 인체 감염을 일으키는 효소인 ‘뉴라미니다아제’의 활동을 억제하는 타미플루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예는 숱하다. 주목 추출물로 만든 세계적인 항암제인 ‘텍솔(12억달러)’, 브라질 뱀독을 추출해 만든 고혈압 치료제 ‘ACE억제제(20억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신약 60%, 천연물질에서 ‘심봤다’

식물을 비롯한 천연물질이 세계 제약 업계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화학성분의 약들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이 없는 데다 성분이 무궁무진해 의약품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1980년 이후 개발된 신규 의약품의 약 60%가 천연물질에서 원료를 얻었다. 시장 규모는 2006년에 37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성장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타미플루와 텍솔은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이란 바이오·정보통신·나노·환경 기술을 유전자원에 적용해 예방약과 치료제 등 의약품, 바이오 신소재와 에너지, 산업 효소, 생물 촉매제 등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원에 대한 과학적 토대와 첨단기술이 접목되는 셈이다. 이를 통한 시장 규모가 5000억~8000억달러로 석유화학이나 정보통신 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적인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석영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을 하지 않는다면 식량자원 활용은 단순히 기능성이 함유된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선에 그칠 것”이라며 “식량 유전자원은 이제 식량 이외의 것, 삶의 질을 바꾸는 보다 큰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세계는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원을 둔 신경전이 치열하다. 유전자원에 대한 ‘배타적 권리’와 ‘자원 주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다. 이에 따라 유전자원에 대한 국제기구와 협약도 늘고 있는 추세다. 자원에 대한 접근과 이익 공유에 대한 국제규범인 ‘생물다양성협약’과 ‘식량농업식물유전자원국제조약’, 유전자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관할하는 ‘국제신품종보호연맹’과 ‘세계지적재산기구’가 대표적이다.

농림수산식품부(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농진청) 등 한국 정부도 ‘종자 산업과 유전자원 강국 건설’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본격적인 경쟁 대열에 뛰어든 상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종자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섰지만 갈 길이 멀다. 먼저 관련 산업의 토대가 매우 취약하다. 이렇다 할 농업 기업 자체가 없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대표적 종묘 회사들 대부분이 외국계에 인수된 데다 살아남은 기업 대부분은 매우 영세하다. 이러다 보니 연구역량도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은 여전히 시작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얼마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관은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크게 향상된 데다 IT나 나노기술 등 주변기술이 발달해 있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유전자원 확보 경쟁 뜨겁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채워라”

경기도 수원시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에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있다. 노아의 것보다 어쩌면 외형적인 규모는 작을 것이다. 하지만 살고 있는 생물의 종류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대략 27만2000여 종류의 서로 다른 ‘생물’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살 수 있다. ‘방주’의 환경이 그만큼 좋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말하자면 그런 곳이다.

2006년 문을 연 이 센터의 유전자원 보유량은 세계 6위의 규모다. 종자·영양체·미생물·가축·곤충 등의 유전자원이 저장돼 있다. 이 가운데 식물자원만 약 16만여 점에 이르고 이 중 벼만 2만8000점이나 된다. 농진청은 이를 2020년까지 36만1000점, 세계 5위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유전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수의 유전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는 설명이다.

김정곤 농업유전자원센터장은 “유전자원은 새로운 종자를 만들 수 있는 소재이므로 유전자원센터의 임무는 새 품종 개발의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유전자원을 많이 확보한 국가가 미래의 부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 유전자원 허브의 꿈 현실화

2006년 들어선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첨단 빌딩이다.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첨단 설계 공법을 동원했다. 내진 설계가 돼 있으며 비상시를 대비해 자체 발전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완비했다. 최유미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사는 “센터의 임무는 확보된 종자의 영구보존”이라며 통제구역인 자원준비실의 문을 열었다. 자원준비실은 종자를 저장실에 넣기 전 처리를 하는 곳이다. 확보된 종자를 건조한 후 이 중 건강한 종자를 골라 저장용기에 넣는 작업을 한다.

저장용기에 들어간 종자는 중기저장고와 장기저장고, 양쪽에서 저장한다. 중기저장고는 30년 정도를 저장하는 곳이다. 연구 등을 위해 ‘분양’할 목적으로 저장한다. 장기저장고는 100년을 목표로 한다. 중기저장고에 저장된 종자를 다 쓰면 장기저장고의 것을 일부 할애해 다시 채운다. 최 연구사는 “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원은 농진청은 물론 대학과 국공립연구소, 민간 종묘 회사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연간 3000~4000점이 분양됐지만 지난해에는 8000점 이상으로 크게 불어났다”고 말했다.

저장실 규모는 중기, 장기 각각 50만 점이다. 현재 저장된 종자는 식량자원이 78%로 가장 많고 나머지를 채소와 원예·특용작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식생활 패턴의 변화 등으로 인해 향후에는 채소나 화훼 종자의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진청은 보유 유전자원을 확대하기 위해 다방면의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채집하는 것도 있지만 대학이나 연구소 등 국내 타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종자를 유치하기도 하고 해외의 유전자원을 국내에 들여오기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해외 종자 유치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농업유전자원센터에 종자 저장을 위탁하는 일이 늘고 있어서다.

미얀마가 벼 재래종과 야생종 유전자원 600점을, 대만 소재의 국제채소연구소는 콩과 녹두·고추 등 5037점의 유전자원을 센터에 기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전자원의 수와 종류가 많을수록 세계적인 종자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국제 사회로부터 기탁 받는 유전자원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이 센터가 FAO가 운영하는 세계작물다양성재단으로부터 ‘세계 종자 안전 중복 보존소’로 인증 받고 지난해에는 국제생물다양성연구소(BI)로부터 국제유전자원협력훈련센터로 지정되는 등 센터의 역량을 인정받는 것은 국제협력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농진청이 추구하고 있는 ‘동북아 종자 허브’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셈이다. 이와 관련 김 센터장은 “2008년까지 2477종의 품종을 개발했는데 이 중 토종 자원은 33%, 해외에서 도입한 자원이 67%”라며 “종자 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국내 자원과 해외 자원을 병행해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환영했다.

또 다른 ‘자원 외교’ 활발

보유 유전자원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에만 매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같은 수의 유전자원이라도 활용 가치가 높은 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활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최근 ‘유전자원의 전략적 수집’이라는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로열티 문제 완화와 바이오에너지 작물, 기후변화 대응 작물 등 쓸모가 많은 유전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확보해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의미다.

김 센터장은 “벼를 예로 들면 1970년대는 생산량이 많은 게 각광받았지만 1980년대엔 양질, 1990년대엔 고품질, 2000년대엔 기능성·재해 저항성이 높은 유전자원이 요구되고 있다”며 “유전자원의 전략적 수집은 필요한 유전자원을 찾고 골라 확보해 실용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국제협력이다. 활용가치가 높은 유전자원을 ‘공짜’로 내주는 인심 좋은 나라는 없다. 무언가 우리도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농업진흥청은 BI·국제미작연구소·국제옥수수연구소 등 국제 농업연구기관 및 러시아·우즈베키스탄·몽골 등 자원 부국과 공동연구 및 협력관계를 강화해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유전자원을 보존할 능력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의 유전자원을 무상으로 위탁관리해주면서 자원을 공유하는 식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일본·러시아·독일 등 해외로 유출된 우리 토종 자원 4422점을 돌려받을 수 있었던 것도 ‘자원 외교’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자원을 수집한 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증식이 필요하다. 처음 확보한 자원은 소량이기 때문에 이를 늘릴 필요가 있다. 활력이 떨어지는 유전자원은 증식 과정을 통해 건강한 자원으로 전환시켜야 나중에 이용할 수 있다. 농진청은 92개 유전자원 관리기관과 함께 2012년까지 11만4000점의 유전자원을 증식한다는 목표다.

이용형질을 평가하는 것도 유전자원 관리의 중요한 파트다. 특정 유전자원이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측정해 유전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 일을 맡은 곳이 DNA분석실이다. 현재 15%인 유전자원에 대한 정밀평가 비율을 2017년까지 80% 수준으로 확대해 조기 산업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이석영 농업유전자원센터 연구관은 “과거엔 유전체 분석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빠르게 시간이 단축되고 있다”며 “성분을 분석, 혼·융합해 형질을 전환하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새로운 유전자원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사례

신소재•의약품 ‘유전자원에 물어 봐’

한국은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 부문에서 아직은 강국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성공사례가 연이어 나오고 있어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곡물·과일·꽃·동물 등에서 추출한 유전자원을 활용해 신소재·의약품·화장품 등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상용화된다면 그 부가가치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곡물이나 과일·꽃으로 팔 때의 그것과는 도저히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농업이 녹색성장의 한 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감귤을 이용한 인공피부

지난 2월18일 최동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가졌다. 귤에서 인공피부를 만드는 데 적합한 소재인 ‘겔’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순수 식물성 셀룰로오즈로 독성도 없고 냄새도 없다. 다른 치료제와도 잘 섞인다는 장점이 있다.

감귤을 이용한 인공피부는 2002년부터 국내 과실류를 활용한 소재 개발 연구가 바탕이 됐다. 우수한 겔을 만드는 균을 찾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외국산에 비해 물성이 뛰어난 겔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의 활용 범위는 다양하다. 우선 상처 보호 및 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세포 재생을 촉진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 소재로도 쓸 수 있다. 천연 소재여서 피부 안정성과 결합력이 높아 기능성 화장품의 피부 침투력을 높일 수 있다. 이 외에도 IT 제품의 소재나 향균종이를 만들 수 있다. 올 연말에 ‘감귤 겔’을 활용한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메밀에서 뽑아낸 항당뇨 유전자

국내 사망요인 5위인 당뇨병 환자는 약 400만 명에 이른다. 성인 인구의 상당수가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메밀이 최근 들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것도 ‘루틴’이라는 강력한 항당뇨 물질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은 중국의 3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쓴메밀을 육성한 ‘대관 3-3’을 품종 출원했는데 이 품종엔 일반 메밀에 비해 루틴이 70배나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메밀의 루틴을 통해 당뇨를 치유하는 유전자를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이 유전자는 항당뇨 외에 인체 세포의 활성도를 높여 염증과 암, 노화를 억제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대관 3-3’은 잡곡 산업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식품 소재와 산업현장에서 실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동시에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누에고치를 이용한 인공고막

고막시술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금까지 고막시술은 고막성형술과 종이패치술이 주로 이용됐는데 두 시술 모두 단점이 있다. 고막성형술은 비용이 많이 들고 회복시간이 길다. 종이패치술은 생체 친화성인 재생 효율이 낮다.

농촌진흥청과 한림대의대가 공동 개발한 신소재인 ‘실크인공고막’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생체 적합성이 뛰어난 누에고치를 활용해 만든 이 소재는 시술이 간단하고 저렴하며 고막 재생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고막 재생 성공률이 100%에 육박하며 시술 후 2주 안에 고막이 재생된다.

연구진은 이 소재의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임상실험을 추진해 2013년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인공고막 시장은 국내 30억원, 세계 2500억원으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실크인공고막’이 인공뼈 시장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라는 사실이다. 세계 인공뼈 시장은 5조원대에 달하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농업과 의학이 만났다는, 학문간 융합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붓꽃으로 만드는 항암제

붓꽃(아이리스)은 보기도 좋으려니와 예로부터 약재로 많이 쓰였다. 피부병과 인후염 치료에 사용해왔다. 약재로서 붓꽃의 가치는 암 치료제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붓꽃의 종자 추출물이 암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붓꽃의 항암 물질은 천연물질이어서 화학적으로 합성된 항암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없다는 강점이 있다. 현재 항암제 대부분은 세포의 이상 증식을 억제해 암세포를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p53항암유전자와 카스파제를 활용한다. 하지만 p53항암유전자는 변이가 생겨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붓꽃 추출물을 활용하면 부작용 없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들깨에서 얻은 오메가-3 지방산

머리를 맑게 해줘 학습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은 인체에서 자체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생선과 같은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식물에도 있기는 하지만 소량이라고 알려졌는데, 이제부터는 아니다. 농촌진흥청은 4000여 종의 참깨와 들깨 유전자원을 연구한 결과 오메가-3 지방산의 일종인 알파리놀렌산을 다량 함유한 종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을 이렇게 많이 함유한 종은 이번에 발견한 것이 처음이다.

봉독(蜂毒)으로 만든 항생제

벌침에 함유된 독성물질인 봉독은 가축용 항생제 원료로 쓰일 전망이다. 정제된 봉독을 어린 돼지에게 투약한 결과 체중이 증가하고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다. 젖소의 유방염에 대해서는 완벽한 항균효과가 있다는 점도 밝혀졌다. 농촌진흥청은 봉독의 대량 채집기술도 개발해 놓은 상태여서 봉독을 활용한 가축용 항생제 시장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원, 산업화로 가는 길

영세성 탈피 시급 “선택과 집중하라”

#1  1947년 미국인 식물채집가인 마더는 북한산에서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 또는 정향나무로도 불린다)’ 씨앗을 채취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털개회나무는 품종개량의 과정을 거쳐 ‘미스김 라일락’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나왔다. 이 나무는 대표적인 조경식물로 자리 잡으며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 ‘미스김’은 마더가 자신을 도와 준 한국인 타이피스트를 기억해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구상나무는 미국으로 건너가 품종개량 후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가 됐다. 

#2  대학찰옥수수는 한국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옥수수 품종이다. 당도가 높아 많이 찾는다. 이 옥수수는 최봉호 전 충남대 교수가 개발했다. 하지만 현재 농가에서 심는 씨앗은 미국에서 들여온다. 최 전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한 국내 종묘 회사가 미국계 회사에 인수되면서 지적재산권도 넘어간 상태다. 품종의 특성상 이 옥수수는 농가에서 채종할 수가 없어 매년 종자를 사야 한다. 다른 품종에 비해 값도 비싼 편이다. 

 

미스김 라일락, 구상나무, 대학찰옥수수는 한국 종자 산업의 역사를 반영하는 ‘증인’인 동시에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종자의 중요성을 잘 몰라 소중한 유전자원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조하고 자본과 산업의 취약성으로 어렵사리 만든 품종의 주권을 잃어버렸던 아픈 과거를 담고 있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2020 종자산업 육성대책’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현재 3000만달러 수준인 종자 수출액을 2020년까지 2억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려 종자 강국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3MC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Market Creation(시장 창출), Mind Change(사고 전환), Method Change(새로운 방식과 시스템 도입)가 그것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수요자 중심의 R&D를 통해 농업과 식품·관상·제약 등이 연계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종자 산업을 수출 산업화한다는 것이다.

종자 산업 대책의 핵심은 궁극적으로는 ‘산업화’다. 이는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 전략도 마찬가지다. 이 측면에서 한국의 기반은 매우 허약하다. 외환위기 이후 대표적인 종묘 회사들이 외국계 기업에 인수됐다. 덩달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종자들의 주권도 외국에 넘어간 상태다. 우리가 잘 아는 ‘청양고추’도 같은 길을 걸었다. 토종기업들은 농우바이오를 제외하면 97%가 10인 이하의 영세기업들이다. 산업화를 담당해야 하는 기업들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민간 육종단지 조성해 기업 지원

전문가들은 영세한 한국의 종자 기업들이 산업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윤 창출이 가능한 고소득 작목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규모, 경쟁 환경, 가격, 소비자 기호 등을 분석해 전략을 짜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해외 의존도가 높아 로열티 부담이 많은 과일과 화훼 등이 주목할 만하다.

김현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업체 간 M&A와 파트너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 연구원은 “국내 종자 기업은 자본력과 기술력이 취약하므로 핵심기술을 지닌 바이오기업이나 식품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종자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다국적 기업들도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또 대기업과 종자 기업의 협력을 주문했다. 특히 위험 부담이 크고 첨단기술이 필요한 영역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산업화를 위한 전문 인력의 양성도 요구된다. 특히 육종 전문 인력이 급하다. 육종이란 일반적으로 품종개량을 말하는데 교잡육종·돌연변이육종 등의 방법이 있다.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성장국에서 교잡육종 종자의 수요가 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은 ‘구인난’이 심각하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을 거점으로 150명의 육종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육종에 특화된 대학에 장기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민간 육종연구단지도 조성한다. 소규모 종자 업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2015년까지 연구단지를 조성해 20개의 중견 종자 업체를 육성하고 2020년 이 단지에 입주한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방사선 돌연변이 연구센터’를 설립해 방사선 육종도 체계화한다. 방사선 육종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 20%, 일본 10%인데 비해 한국은 0.5%에 불과한 실정이다.

주요국 종자 산업 동향

고품질 종자 개발로 해외시장 ‘정조준’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종자 산업의 중요성을 알고 발전시켜왔다. 현재 세계 종자 산업을 쥐고 흔드는 기업들이 대부분 이 지역에 속한다. 미국은 민간을 중심으로 고품질 종자를 앞세워 종자 산업을 수출 산업화하고 있다. 기후적·지리적 다양성을 이용한 광범위한 생산 기반이 강점이다. GMO종자 산업의 활성화와 소비자 인식 변화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본은 기업의 규모에 따라 다른 전략을 취한다. 대기업은 수출, 중소기업은 내수 위주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소비자 지향적이고 기능적인 품종개량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 종자 산업의 경쟁력은 ‘부가가치’에 있다. 양으로 치면 수입이 수출보다 46.6배나 많지만 액수로 보면 1.3배에 불과하다. 네덜란드는 종자 단일 상품이 아니라 종자와 재배법, 친환경 농법, 시설 등을 패키지로 묶은 수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터뷰   김재수 농촌진흥청장

“열린 연구로 첨단 녹색기술 앞장설 것”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은 국내 대표적인 농업 R&D센터다. 근 50년간 농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농진청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시쳇말로 ‘도대체 뭐 하는 기관이냐’는 식의 비판을 가하는 일도 적잖았다. 한때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민영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힘을 얻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내심 섭섭함을 느끼는 눈치였다. 

“지난해 쌀 생산량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재배면적은 줄었습니다. 기후 조건이 유난히 좋아서였습니까. 아닙니다. 기술이 들어간 겁니다. 농업기술에 대한 이해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획기적인 기술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차곡차곡 성과가 쌓여 현실화하는 게 기술입니다.”

김 청장은 농진청이 한국 농업 발전에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녹색성장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화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도 그 중 하나다. 기술에 대한 김 청장의 이해를 다시 곱씹어보자면 오랫동안의 많은 연구 성과가 ‘차곡차곡’ 쌓여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에 대한 김 청장과 인터뷰는 ‘한국 농업기술 발전’이라는 더 넓은 시각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농진청에 그만한 연구 역량이 있다고 보십니까.

올해 농진청은 국가연구개발성과 100선 중 7개가 선정되며 국가연구기관 1위를 달성했습니다. 지난해에도 서울대와 동률 1위를 차지했죠. 농진청은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다양한 연구를 하죠. 50년간 축적한 기술이 결실을 맺고 있는 셈입니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 부문에서도 충분한 활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자원 활용을 포함해 연구기관의 경쟁력은 전문 인력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기관에서 전문 인력 부족을 호소합니다. 농진청은 어떻습니까.

중요한 얘기입니다. 다른 연구기관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농진청은 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농업 연구의 저변이 다른 분야에 비해 약하니까요. 현재 농진청에 1200여 명의 연구 인력이 있는데 막상 필요할 때는 전문가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시장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어 고민입니다. 일단은 연구 분야를 다원화하되 과장급 이상 연구 인력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농진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연구의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실제는 어떻습니까.

일반의 오해와 달리 실용화될 첨단기술이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죠. 최근에 돼지기름에서 바이오에탄올을 개발했습니다. 열효율도 괜찮습니다. 향후엔 닭과 소의 기름으로도 에너지를 만들 것입니다. LED시설원예의 경우 기존 시설원예보다 70%나 전력 소모량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염생식물과 한의학 소재를 활용한 녹색기술 등 상당히 많습니다. 

 

지난해 실용화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성과가 나오고 있는지요.

종전까지는 연구원이 기술개발에서 사업화까지 책임져야 했는데 이건 맞지 않다고 보고 민간 실용화재단을 만들었죠. 실용화를 위한 민간조직과 연구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델인데, 국내에서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벌써 실용화 성과가 여러 건 있습니다. 다른 부처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죠. 잘되면 국가연구기관의 실용화 모델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농진청에선 식물에서 곤충·가축·기계 등 대단히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경제적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 분야를 고른다면 무엇입니까.

식물공장과 생물자원활용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식물공장은 도심에서 기계화 장치를 통해 농사짓는 것인데 무공해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술입니다. 최근에 남극에 식물공장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로 우리 기술이 뛰어납니다. 식물공장에서 나오는 작물이 아니라 식물공장을 만들고 운영하는 기술은 수출 전망이 좋습니다. 생물자원 곤충이나 식물 등을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음식물쓰레기 퇴치용 곤충, 누에고치를 활용한 인공고막, 귤을 이용한 인공피부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고의 기술은 환경의 균형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생물자원을 활용한 기술이 그렇습니다.

식물공장이나 생물자원 활용은 모두 고부가가치 사업이고 선진국들도 관심이 많습니다. 지속적인 경쟁력 유지를 위한 방안이 있습니까.

재원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백화점식 연구를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열린 연구가 요구됩니다. 최근 기술 수요는 복합적이어서 농업기술 하나만으로 부족합니다. 여러 분야의 연구자가 모여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습니다. 열린 연구의 최근 사례로는 농진청과 한림대가 공동 개발한 누에고치를 활용한 인공고막을 들 수 있습니다. 농진청은 외부 대학·산업체·연기기관과 MOU를 맺고 공동연구를 확대하고 있는데 연구자들은 아주 반가워합니다. 연구자들은 대개 자기 분야에선 전문가지만 다른 분야는 잘 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못 찾는 경우가 있는데 열린 연구를 통해 이런 것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제3세대 유전자원 활용을 통한 종자 강국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일단은 유전자원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보유 유전자원 6위인데 좀 더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질적으로 우수한 유전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좋은 유전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종자 산업에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유전자원을 잘 활용해서 상용화하는 종자 회사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종자 회사들이 외국계로 넘어가면서 연구 인력들도 대부분 나왔다고 하는데, 농업계 인재들이 갈 곳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농업과 농업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합니다. 농업기술은 어느 분야 못지않은 첨단기술임을 알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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