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가 금지된 합숙 생활에 나선 ‘투 핫!’의 출연자들. 사진 넷플릭스
성관계가 금지된 합숙 생활에 나선 ‘투 핫!’의 출연자들. 사진 넷플릭스

“합숙 참가 조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성행위를 자제해야 합니다. 합숙 기간 내내요. 발각되면 상금에서 벌금이 차감됩니다.”

중앙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 인공지능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스피커를 둘러싸고 앉은 20대 남녀 10명이 각기 ‘경악’ ‘당황’ ‘실망’의 표정을 짓는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작작 좀 해!”와 같은 야유가 터져 나온다. 4월 1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8부작 예능 프로그램 ‘투 핫!(Too Hot to Handle)’의 한 장면이다.

‘투 핫!’은 성적 개방성이 높은 젊은 남녀가 육체적 교감을 금지당한 채로 합숙 생활을 하는 예능이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가 2020년 1분기 화상 실적발표회에서 “넷플릭스 사상 최대의 서바이벌 쇼”라고 강조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올해 들어 영미권 제작사와 독점 계약한 예능을 잇달아 공개하고 있다. ‘투 핫!’ 이전에는 1월 1일 12부작의 ‘더 서클(The Circle)’, 2월 13일 11부작의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Love Is Blind·이하 블라인드 러브)’를 차례로 선보였다. 모두 흥행에 성공해 시즌2·3 제작도 계획됐다.

세 편의 예능은 각기 다른 제작사가 만들었는데도 공통된 문법을 따른다. 10명 안팎의 일반인이 사회 실험에 참여하고 이들은 대인관계 속에서 ‘진정성’의 가치를 깨닫는다. 이 예능들의 유사한 설정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전 세계 1억6000만 명의 넷플릭스 가입자를 고려한 결과물이다.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고 인류 보편의 관심사를 담은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넷플릭스의 등장은 콘텐츠 생태계를 바꿨다. 콘텐츠 유통망이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 연결되면서 ‘국경 없는’ 콘텐츠가 수익을 내는 시대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콘텐츠 기획자와 마케터를 위해 넷플릭스 3대 예능의 성공 공식을 분석해봤다.


성공비결 1│인간을 실험하라

세 편의 예능은 모두 ‘사회 실험’의 형식을 따른다. 일정한 제약 조건 속에서 참가자들의 행동 변화를 관찰한다.

‘더 서클’은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만 대인 관계를 맺는 실험이다. 영국 런던의 아파트에서 참가자 8명이 15일 동안 홀로 생활한다. 참가자는 대면하지 않고 오로지 제작진이 마련한 스크린 속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교류해야 한다. 매일 호감도 1위 ‘인플루언서(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를 투표해 승자를 가린다.

‘블라인드 러브’는 외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사랑이 지속 가능한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15쌍의 남녀가 밀폐된 각방에서 벽을 두고 1 대 1 대화를 나눈 이후 10일 안에 마음이 통하는 상대와 약혼한다. 이후 현실 세계에서 한 달 동안 신혼여행, 가족 소개 등을 진행하면서 결혼을 준비한다. 결혼식에서 최종 혼인 여부를 결정한다.

‘투 핫!’은 육체적 교감 없이 정서적 교감만으로 연애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멕시코의 바닷가에서 20대 남녀 10쌍이 수영복을 입고 한 달 동안 생활한다. 육체적 관계를 맺으면 공동 상금 10만달러에서 벌금이 차감된다.


왼쪽부터 채팅 프로그램으로 교류하는 ‘더 서클’ 출연자, 각방에서 서로를 보지 않고 결혼 상대를 찾는 ‘블라인드 러브’ 출연자들. 사진 넷플릭스
왼쪽부터 채팅 프로그램으로 교류하는 ‘더 서클’ 출연자, 각방에서 서로를 보지 않고 결혼 상대를 찾는 ‘블라인드 러브’ 출연자들. 사진 넷플릭스

성공비결 2│코로나 특수? 비대면 사회에서 ‘진정성’을 외치다

실험을 통해 출연자들은 대인관계에서 ‘진정성’의 소중함을 느낀다. ‘블라인드 러브’를 기획한 크리스 코엘렌 키네틱 콘텐츠 최고경영자(CEO)는 “사는 곳, 외모, 나이, 배경, 계층, 사회구조에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내면, 즉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어한다”면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블라인드 러브’에선 처음 대화로 끌렸던 상대와 외모, 가족관계, 성장 배경 등 제약 조건을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하는 커플이 등장한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에 외적 조건을 명기하고 일생의 동반자를 찾는 요즘 세태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더 서클’도 허구의 이미지에 따라 ‘좋아요’를 누르는 소셜미디어 트렌드에 반기를 든다. 실험에서 호감표는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돌아간다. 실험 종료 후 생존자가 서로 만나 “우린 사칭(catfish)이 아니라 진짜였어!”라고 환호할 정도다. ‘투 핫!’에선 육체적 관계는 능숙하지만 정서적 교감에 미숙한 출연자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나온다.

프로그램의 메시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덕분에 더욱더 주목받았다. 언택트(untact·비대면) 사회가 실현되면서 대인관계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실험에 동참한 이들도 생겼다. 미국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티 Q. 람과 란스 닉스는 ‘블라인드 러브’의 원제 ‘사랑에 눈멀다(Love is Blind)’를 패러디한 ‘사랑은 자가격리(Love is Quarantine)’라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이름, 나이, 성별, 성 정체성, 도시, 전화번호를 적으면 운영진이 전화 데이트를 주선한다. 참가자들은 데이트 후기 영상을 찍고 운영진에게 보낸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데이트 참여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자신이 20대에 쓴 시를 낭송하는 노인의 영상에는 “당신이 몇 살이든, 당신이 어떤 인생을 살았든, 당신은 당신 그 자체!(you are YOU!)”라는 응원 댓글이 달려 있다.


성공비결 3│‘다양성’ ‘솔직함’ 중심 일반인 발굴

전 세계 동시 방영 프로그램인 만큼 출연진의 출신 배경은 다양하다. ‘투 핫!’에는 영국,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 미국인이 출연한다. ‘더 서클’과 ‘블라인드 러브’에도, 외모(마른 체형과 통통한 체형), 인종(흑인과 백인), 성적 지향(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이 모두 다른 출연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제작진이 직접 발굴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다. 연예인은 섭외 대상에서 제외했다. 실험 결과의 투명성을 담보하려면 참가자가 솔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엘렌 CEO는 “인기를 끌고 싶은 사람보다 솔직한 사람, 장기적 관계를 원하는 사람을 찾았다”면서 “이 실험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참여를 제안했다”고 했다.

이들의 ‘솔직함’은 글로벌 시청자가 반응하는 ‘공통어’였다. 출연진의 팬은 나날이 늘고 있다. 일례로 ‘투 핫!’ 출연진 프란체스카 파라고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4월 말 기준 420만 명으로 출연 이전(30만 명)보다 1300% 늘었다. 클로이 베이치의 팔로어는 같은 기간 2000명에서 140만 명으로 증가했다. 증가율만 6만9900%다.

경제적 효과도 막대하다. 영국 통신 서비스 업체 마주마의 추정 결과, 프란체스카는 한 게시물당 2만5180달러(약 3083만원)의 광고비를 받을 수 있다. 그와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은 남자친구 해리 조시의 예상 광고비는 건 당 2만774달러(약 2543만원)다. ‘투 핫!’ 출연진 중 가장 팔로어가 적은 매디슨 와이보니도 예상 광고비가 1095달러(약 134만원)에 달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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