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둔 8월 28일 스팸 선물세트를 판매 중인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코너. 사진 정미하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둔 8월 28일 스팸 선물세트를 판매 중인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코너. 사진 정미하 기자

한국인 대부분은 ‘깡통에 들어 있는 햄’ 하면 ‘스팸(Spam)’을 떠올린다. 스팸은 미국 식품 회사 ‘호멜(Homel)’이 1937년에 만든 캔에 담긴 햄 상품명이지만, 한국에서는 ‘캔 햄’ 그 자체인 셈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캔 햄’ 절반 이상이 스팸이다. 정보분석 기업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스팸의 시장 점유율은 56.7%로 2위인 동원 리챔(17.9%)보다 세 배 이상 높다.

스팸의 국내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스팸의 국내 생산과 판매를 맡고 있는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스팸의 연 매출액은 이 제품이 국내에 출시된 1987년 70억원에서 1997년 520억원으로 7배 넘게 늘었다. 이어 △2016년 3000억원 △2017년 3500억원 △2018년 4100억원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누적 매출액은 2018년 기준, 4조원을 돌파했다. 판매량으로 환산하면 약 12억 개(200g 기준)다. 한국 사람 1명당 약 24개의 스팸을 먹은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팸 매출액의 60%가 명절 기간 선물세트 판매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추석 연휴를 2주 앞둔 8월 28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스팸 선물세트는 자연산 송이버섯, 고급 한과, 정육 세트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0년 6300억원이었던 가공식품 선물세트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2000억원으로 8년 만에 두 배가량 성장했다. 가공식품 중 선호도 1위는 스팸 선물세트였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추석용으로 지난해보다 9% 늘린 710만 세트를 준비했다.

외국에선 우리나라 사람이 명절 선물로 스팸을 주고받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미국 일간지 LA타임스는 2005년 “세계 11위 경제 대국인 한국에는 신선한 육류가 넘쳐난다”며 “스팸이 인기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신선한 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왜 ‘캔 햄’을 먹느냐는 것이다. 정작 스팸이 탄생한 미국에서는 저렴한 식료품 취급을 받는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듯 원치 않는 이메일을 ‘스팸메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스팸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을까. 스팸의 인기 비결을 살펴봤다.


비결 1│미군 통해 접하며 풍요·영양 상징

한국인은 1950년 6·25전쟁 이후 미군을 통해 스팸을 처음 접했다. 스팸은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아도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식량으로 쓰였다. 고기는 물론 음식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당시, 스팸은 부유층이나 미군 부대와 연줄이 있는 사람만 접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스팸은 암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스팸은 특별한 음식으로 대접받았고, 부(富)를 상징했다. 스팸을 구할 수 없는 사람은 미군 부대 쓰레기통을 뒤져 남은 스팸이나 소시지, 햄, 베이컨 등을 모아 식당에 팔 정도였다. 이는 스팸에 김치 등을 섞어 만든 음식, 부대찌개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 저소득층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스팸이 먹을 것이 부족했던 한국인에게 따뜻한 한 끼를 선사한 것이다.

수입품이던 스팸은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1987년 호멜과 기술 제휴를 하고 생산과 판매를 시작하면서 국산화했다. 당시 광고 문구는 ‘세계적인 명성, 세계적인 품질, 스팸을 제일제당이 만듭니다’였다. 스팸은 출시 첫해에만 500t이 팔렸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던 비슷한 제품인 ‘런천미트’ ‘로스팜’ 등을 제치고 단숨에 1위로 치고 올라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14년 ‘스팸과 사랑에 빠진 한국’ 제하의 기사에서 “스팸이 미군을 통해 한국에 들어가면서 영양과 풍요를 상징하는 식품이 됐다”며 “이후 한국에선 여전히 스팸이 고급 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결 2│쌀밥과 찰떡궁합인 맛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쌀밥에 올린 구운 스팸 한 조각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을 흘리게 한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먹을 것이 풍부하다. 그렇지만 스팸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스팸의 짭조름한 맛이 쌀밥 및 김치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2002년 배우 김원희를 모델로 한 광고에서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문구를 쓰며 스팸이 밥반찬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스팸을 만들고 있다. 미국산 스팸보다 염분을 줄이는 등 자체적인 레시피를 이용해 충북 진천공장에서 생산한다. 돼지고기 비중(93%)도 경쟁사 제품(66~91%)보다 높여 품질을 관리한다. 미국 스팸과는 달리 핏줄이나 힘줄 등 부산물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거하는 과정도 거친다. 동일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사후 관리에도 힘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스팸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생산한 제품의 맛을 매일 평가한다”며 “검증된 맛을 제공해야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비결 3│나름의 고급+합리적 가격

연예인 하정우·이서진·김래원·김원희·전소미.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스팸 광고모델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CJ제일제당은 ‘스팸=고급 식료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모델 선정에도 공을 들였다. 호멜의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인 제이니 다이크스 수석은 “유명 연예인이 스팸 광고에 등장하다니 확실히 한국에서 스팸의 위치는 미국과는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유기농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팸에 덧씌워진 고급 이미지는 다소 퇴색했다. 그러나 인기는 여전하다. 스팸만큼 가성비 좋은 선물은 드물기 때문이다. 한우나 굴비 세트는 20만원이 훌쩍 넘고, 10만원대에서 고를 수 있는 과일 선물세트는 보관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스팸 선물세트는 2만원대부터 7만원대까지 구성이 다양하고 장기 보관도 가능하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국민 지갑이 얇아질수록 스팸 인기는 오히려 높아졌다”며 “합리적인 가격에 실용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plus point

10·20대 공략 나선 스팸

스팸 폰케이스(왼쪽), 스팸 치약. 사진 CJ제일제당
스팸 폰케이스(왼쪽), 스팸 치약. 사진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은 최근 젊은 소비자를 공략한 스팸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주요 구매자인 30·40대에서 10·20대까지 소비층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소셜미디어(SNS)에 스팸 관련 ‘B급 감성’ 콘텐츠를 올린다. 스팸 맛 아이스크림 ‘스팸 바’, 지우면 스팸 향기가 나는 ‘스팸 지우개’, 스팸 향 나는 ‘스팸 립스틱’과 ‘스팸 치약’ 이미지를 올리는 식이다. SNS에서 사람들은 ‘판매를 원한다’ ‘출시되면 대박일 거 같은 느낌’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앞서 선보인 스팸 폰케이스, 스팸 에코백은 10·20대의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이슈를 만들기도 한다. 스팸을 ‘통먹(통째로 익혀서 먹기)’할 것이냐 ‘썰먹(썰어서 구워 먹기)’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마치 탕수육을 먹을 때 찍먹(탕수육 소스를 찍어서 먹는 것)파, 부먹(소스를 탕수육 위에 부어서 먹는 것)파로 나뉘는 것처럼 통먹과 썰먹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스팸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스팸 통먹은 유튜브 덕도 봤다. 유명 먹방(먹는 모습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 유튜버 벤쯔가 업소용인 1.8kg짜리 스팸을 통째로 먹은 것.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에어프라이어처럼 새로운 주방 기기가 나오면서 스팸을 통째 먹는 게 가능해졌다”며 “유튜버를 중심으로 통먹 먹방이 인기”라고 말했다. 스팸은 최근 새로운 맛을 선보이기도 했다. 구매층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CJ제일제당은 불맛 소스로 청양고추에 버금가는 매운맛을 낸 ‘핫&스파이시’, 진한 치즈 맛을 내는 ‘리치 치즈’ 2종의 새로운 스팸을 출시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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