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제시 젱(가운데 앉아있는 여성)은 인스타그램 유명인들의 사진에 달린 댓글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인기 있는 스타일의 옷을 즉시 제작해 파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창업자 제시 젱(가운데 앉아있는 여성)은 인스타그램 유명인들의 사진에 달린 댓글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인기 있는 스타일의 옷을 즉시 제작해 파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지난 7월 중국 상하이에 있는 삼성물산 패션브랜드 ‘에잇세컨즈’의 초대형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닫았다. 개점 2년 만이다. 총면적이 3630㎡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 데다, 중심 쇼핑가인 화이하이루(淮海路)에 자리 잡아 에잇세컨즈의 중국 시장 ‘본진’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회사는 온라인 시장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내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들이 고전하고 있다. 국내 패션 시장 성장이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니클로’ ‘자라’ 등 글로벌 기업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한다. 실제로 유니클로의 한국 매출(2016년 9월 1일~2017년 8월 31일)이 1조3000억원을 기록한 반면, 에잇세컨즈 매출은 1800억원(추정치)에 그쳤다. 또 다른 토종 SPA 브랜드 스파오(3000억원), 탑텐(2000억원)도 자라(3350억원)에 밀려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새로운 SPA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인스타그램 속 유명인들이 입은 옷 중 인기 있는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고 주문량에 맞춰 ‘초스피드’로 제작해 판다. 제작부터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한 데 더해 대형 SPA 브랜드가 안고 있는 재고 문제까지 해결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설립된 초스피드 SPA 브랜드 ‘추지(Choosy)’다. 회사를 세운 지 1년도 안 된 올해 5월 NEA 벤처캐피털로부터 540만달러(약 62억원)를 유치했고, 7월 제품 판매를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3만달러어치를 파는 등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징 1│
‘옷에 미쳐’ 만든 ‘따라하기’ 제품

추지의 창업자 제시 젱(26)은 스스로를 “옷에 미쳐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졸업 후 시티은행에서 외환 트레이더로 일하던 그는 틈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유명인들의 사진을 보는 게 취미였다.

그러던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유명 모델이자 인스타그램의 막강한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을 가진 사람) 지지 하디드의 게시글이었다. 진주 장식이 화려하게 들어간 청바지를 입고 있는 하디드의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달린 수천개의 댓글 대부분은 “브랜드가 무엇이냐” “어디 가면 이 제품을 살 수 있느냐” 등의 구입처를 묻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하디드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상품이었다.

젱은 이렇게 유명인의 패션을 선망하는 젊은 여성이 많지만, 실제로 이들이 입은 옷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 제품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제품을 바로 만들어 싼 가격에 공급한다”는 아이디어가 출발선이었다. 실제로 추지가 팔고 있는 의류 가격대는 모두 100달러(약 11만원) 미만으로 책정돼 있다. 추지가 7월 서비스 시작 전 시험적으로 판매한 지지 하디드 스타일의 진주 청바지는 판매를 시작한지 1시간 만에 매진됐다.


왼쪽부터 영국 메간 마클 왕세손 부인, 미국 가수 리아나. 모델 지지 하디드가 올린 게시글에는 구입처와 브랜드 정보를 요청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고, 추지는 여기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왼쪽부터 영국 메간 마클 왕세손 부인, 미국 가수 리아나. 모델 지지 하디드가 올린 게시글에는 구입처와 브랜드 정보를 요청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고, 추지는 여기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특징 2│
빅데이터로 ‘팔릴’ 옷 ‘즉시’ 제작

그런데 문제는 이미 세상엔 유행하는 고가 의류와 ‘비슷한 스타일’의 제품이 널려있다는 점이다. 추지는 여기에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차별점을 뒀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반응이 폭발적인 유명인의 패션을 즉시 분석해 사흘 안에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주문을 받아 바로 제작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유명인이 올린 사진 밑에 달린 수천 건의 댓글 중 ‘구매 의도(purchase intention)’를 가진 댓글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하버드대에서 영입한 수학자가 이를 분석할 수 있는 ‘자연언어처리’ 알고리즘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구매욕을 가장 많이 자극한 유명인의 사진 10건을 추렸다. 잘 팔릴 만한 옷의 실루엣과 색상을 조합해 ‘비슷한’ 디자인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소비자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는 제품 디자인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고, 추지는 즉시 주문 제작에 들어간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하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운영 방식 덕분에 추지는 SPA 브랜드들이 직면한 재고 부담에서 태생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H&M의 재고는 43억달러(약 5조원) 규모에 달했다. 같은해 매출액(243억1000만달러)의 18%에 달하는 수준이다. 패스트컴퍼니는 “유행을 비껴간 제품이 막대한 재고로 되돌아와 환경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전했다.


특징 3│
중국 제조 네트워크 활용해 기간 단축

추지의 경쟁사는 ‘울트라 패스트패션’ 브랜드 아소스, 미스가이디드, 부후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제작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인 ‘리드타임’이 단 2주 안에 해결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 H&M의 리드타임은 평균 5주다.

추지가 주문을 마감하고 제품을 생산해 배송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2주다. 여기에 유명인의 사진을 분석해 제품 디자인을 만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3일을 추가하면 17일 만에 소비자는 인스타 유명인이 입고 있던 제품과 비슷한 옷을 입어볼 수 있다.

추지가 이렇게 빠른 생산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현지에 가진 제조공장 네트워크 덕분이다. 젱은 창업을 결심한 2016년, 은행을 그만두고 베이징으로 건너가 친척이 운영하는 섬유 공장을 돌며 일을 배웠다. 젱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중국 현지에 민첩한 생산을 자랑하는 200개의 소규모 공장 네트워크에서 주문과 동시에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짝퉁’을 판다는 부정적인 시선은 회사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추지가 팔고 있는 제품은 모두 유명인들이 입어 화제가 됐던 옷과 흡사하다. 영국의 메건 마클 왕세손 부인이 해리 왕세손과 데이트할 때 입어 화제가 된 초록색 드레스를 비롯해 미국의 팝스타 리아나가 입은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의 가죽 드레스 등 대부분이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됐던 옷과 비슷하다. 심지어 추지 홈페이지에 내걸린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모델 사진은 리아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구도와 똑같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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