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항공기는 70~90석의 소형기 시장 진입을 목표로 MRJ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 지연으로 납품이 다섯 차례 연기되는 사이 시장 환경과 회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쓰비시항공기는 70~90석의 소형기 시장 진입을 목표로 MRJ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 지연으로 납품이 다섯 차례 연기되는 사이 시장 환경과 회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7월 16일 영국 하늘에 ‘미쓰비시 리저널 제트 90(이하 MRJ90)’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적인 항공기 전시회인 영국 판버러 국제 에어쇼장에서였다. MRJ90은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자회사인 미쓰비시항공기(航空機)가 만든 90인승 여객기다. 개발 착수 10년 만에 국제무대에서 첫 비행 전시(시범 비행을 통해 성능을 알리는 것)에 나선 터라 일본 국내외 관심이 집중됐다.

10분간 하늘을 날고 무사히 내려온 MRJ90. 1차 비행은 성공적이었지만 이어지는 2차 비행엔 참여하지 못했다. 지상에서 견인차와 충돌하며 기체에 손상을 입은 탓이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반복된 납기 지연으로 무너진) 제작사의 신뢰를 찾고 성능을 과시할 절호의 무대였던 만큼 관계자들이 크게 낙담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유일한 ‘국산(國産) 여객기’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개발을 시작한 MRJ 시리즈가 대내외 악재에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설계 변경, 공정 지연 등으로 납품이 약속보다 7년이나 밀린 사이 타깃 시장에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거대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비용 부담에 제작사 재무 상태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민항기 시장은 대륙 간 장거리 국제노선을 중심으로 운항하는 중·대형기(130석 이상) 시장과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를 다니는 소형기(130석 미만) 시장으로 나뉜다. 2008년 미쓰비시항공기가 뛰어든 시장은 이 중에서도 좌석 100석 이하의 ‘리저널 제트기’ 분야다. 캐나다 봄바디어와 브라질 엠브라에르가 여기서 1, 2위를 다투고 있는데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한다.

미쓰비시항공기는 2013년 인도를 목표로 MRJ 시리즈 개발을 시작했다. 초창기 전일본공수(ANA)와 일본항공(JAL)을 비롯해 미국, 미얀마 등지의 소형 항공사로부터 600대 이상의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완제품 독자 개발 경험이 부족했던 미쓰비시항공기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전기 배선이나 계기실 배치 변경 요인 등이 발생하면서 일정이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대형사들이 1년 6개월~2년 만에 마무리 짓던 인증 작업도 3년 이상 걸리고 있다. 미연방항공국(FAA)의 인증을 받지 못하면 미국 영공(領空)에 진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총 다섯 차례 납품이 연기되면서 최종 납품 시기가 2020년으로 밀려났다.


악재 1│보잉·에어버스 소형기 시장 눈독

그 사이 시장 환경은 MRJ에 불리하게 바뀌고 있다. 대형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항공기 제작사 보잉과 에어버스가 리저널 제트기 시장까지 넘보면서 해당 시장의 1, 2위 회사들과 합종연횡을 단행한 것이다.

7월 보잉은 엠브라에르와 민항기 부문 합작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자본금 47억5000만달러 중 80%를 보잉이 출자한다. 사실상 인수다. 엠브라에르는 리저널 제트기 시장 점유율 2위 회사다. 이에 앞서 지난해엔 에어버스가 시장 1위인 봄바디어와 손잡았다. 봄바디어 소형 여객기 C시리즈 사업 부문의 지분 50.01%를 인수한 것이다. 이미 에어버스는 홈페이지에 자사 주력기와 함께 C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자사의 제품 명명 형식에 맞춰 A220으로 이름도 바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봄바디어는 약한 영업력 탓에 (소형기) 수주량이 400대에 그치는 등 고전했지만, 에어버스의 지원에 힘입어 반전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리저널 제트기 시장 규모는 대형기 시장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기체가 커질수록 단가와 시장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 분석회사 틸그룹에 따르면 2016년 대형기 시장이 1054억달러(약 118조원)였던 데 반해 리저널 제트기 시장은 54억달러(약 6조원)로 약 5%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보잉과 에어버스가 진입한 이유는 이 시장이 신규 수주 가능성이 큰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일본항공기개발협회에 따르면 2037년 항공기 신규 수요 3만9867대 중 소형기 수요는 33%에 달한다. 대형 여객기 제조사들이 여기까지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대형 제조사가 새로 소형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아예 소형기 전문사를 인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보잉은 2006년 100인승 규모의 소형 여객기 B717을 만들었지만 판매 부진으로 단종시켰다. 이성일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전략기획팀 과장은 “고객사 입장에서는 대형 제조사 제품군의 일부로 소형 여객기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면서 “MRJ 입장에서는 두 거인이 좁은 시장으로 밀고 들어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악재 2│일정 지연에 천문학적 개발비

회사의 재무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애초 MRJ 개발에 투입되는 사업비는 1500억~1800억엔(약 1조5000억~1조8000억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납품 기한이 7년이나 늘어나면서 6000억엔(약 6조원)으로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쓰비시항공기와 모회사의 재무 상황도 나빠졌다. 올해 미쓰비시항공기는 1100억엔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것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은 900억엔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최종 납품일이 2년 남은 상황이어서 당연히 추가 비용이 든다. 일본 언론들은 내년 3월까지 약 1000억엔의 개발비가 더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MRJ가 가졌던 기술 경쟁력도 추격당하고 있다. 개발 초기 20% 이상 연비 개선 효과로 주목받았던 친환경 엔진이 최근 엠브라에르의 최신 소형기 E2시리즈에도 적용됐다. 일본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MRJ가 기존 시장 강자들로부터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악재 3│中과 경쟁서도 가격 때문에 밀려

중국의 항공 굴기도 MRJ의 시장 진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2008년 출범한 국영 기업 중국상용비행기공사(COMAC)는 리저널 제트기 ARJ21과 중형기 C919 개발에 성공했다. 이미 시범 비행도 마쳤다. 특히 MRJ 가격이 대당 약 4730만달러인 것과 비교해 ARJ21은 4000만달러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일본 내부에서는 리저널 제트기 개발 결정이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미야나가 슌이치(宮永俊一)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이 지난해 “개발 전에 정보 수집과 위험 분석에 대해 좀 더 공부했어야 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불신은 계속되고 있다. 1년 이상 신규 수주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올 초엔 40대 주문 취소도 겪었다. 판버러 에어쇼에서 MRJ 신규 수주 건수는 작년 파리 에어쇼에 이어 2년 연속 ‘제로(0)’였다. 이번 에어쇼 상담 기간 전체 거래액이 직전 회차보다 54%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결과다.

송현 기자, 이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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