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시크릿의 실적은 여성의 성 상품화 논란, 트렌드 변화에 직면해 악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패션쇼 피날레 장면.
빅토리아시크릿의 실적은 여성의 성 상품화 논란, 트렌드 변화에 직면해 악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패션쇼 피날레 장면.

미란다 커, 지젤 번천, 아드리아나 리마, 하이디 클룸…. 세계 톱 모델들이 고급스러우면서도 섹시한 이미지의 ‘빅토리아 시크릿(이하 빅시)’ 속옷을 입고 흥겹게 걸어 나온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 무렵 열리는 빅시 패션쇼는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불릴 만큼 세계를 주목시킨다.

그러나 늘 화려할 것 같았던 미국 최대 란제리 회사 빅시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기준 빅시의 오프라인 매장 1(제곱피트)당 평균 매출은 784달러를 기록, 2년 전(864달러)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이 기간 모(母)회사 L브랜즈의 영업이익은 17억2800만달러로, 2015년보다 21% 감소했다. L브랜즈의 주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올 초 주당 60달러에 육박했던 L브랜즈 주가가 현재 32.1달러(8월 16일 기준)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속옷 브랜드 중 하나인 빅시의 전성기는 끝난 것일까. 빅시의 최근 부진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실패요인 1 | 페미니즘에 발목

지난해 빅토리아시크릿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이 사진은 ‘여성의 성 상품화를 부추긴다’는 10대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사진 빅토리아시크릿 페이스북
지난해 빅토리아시크릿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이 사진은 ‘여성의 성 상품화를 부추긴다’는 10대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사진 빅토리아시크릿 페이스북

2016년 1월 빅시 페이스북 계정에 빨간 시스루 속옷을 입은 금발의 모델이 손바닥에 생크림을 짜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이 사진은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해 ‘여성들이여, 남자친구(남편)를 위해 빅시 속옷을 입고 이벤트를 하라’는 메시지로 읽히며 “모델을 포르노 배우로 소비하고 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를 강타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페미니즘’ 흐름은 ‘여성의 성 상품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빅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초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YouGov)에 따르면 빅시에 대한 미국 여성들의 인식은 여성 운동이 활발해진 2013년을 기점으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유고브가 18~49세 여성 고객들이 빅시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 들은 바를 토대로 계산하는 브랜드 인덱스 지수는 최근에 23포인트를 기록,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빅시 성 상품화의 정수로 불리는 연말 패션쇼도 명성을 잃었다. 2014년 912만 명이던 시청자는 2016년 498만 명까지 급감했다. 지난해 시청률은 1.5%(시청자 수 대비 TV 소유 가구 수 비율)로 사상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2월엔 18년 연속 빅시 패션쇼 무대에 서며 세계적 모델로 이름을 알린 아드리아나 리마가 “더는 (눈요기용으로) 옷을 벗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빅시의 특장점이 페미니즘에 직격탄을 맞은 사이 ‘현실과 먼’ 섹시한 TV 속 톱모델이 아니라 현실 모델들을 전면에 내세운 속옷 브랜드들이 부상했다. 저가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이글의 ‘에어리’, 속옷 스타트업 ‘어도어미’ ‘라이블리’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 브랜드는 장애가 있는 여성부터 뚱뚱한 여성 등을 포함해 일반 체형의 여러 모델을 기용하고 광고에 포토숍을 사용하지 않는 등의 원칙을 내세워 인기몰이했다. 에어리의 경우 12분기 연속 매출이 증가하며 빅시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고 있다. 


실패요인 2 | 화려함보다 기능성 우선하는 트렌드

빅시는 몸을 옥죄거나 얽매지 않는 새로운 여성 속옷 시장의 유행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상체를 꽉 조여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코르셋, 가슴을 커 보이게 하는 푸시업 브래지어 등 ‘몸매 보정용 속옷’이 빅시의 주력 제품군이다. 하지만 최근 여성 속옷 시장은 가슴을 위로 올려주는 철사(와이어)도 가슴을 커 보이게 만드는 패드도 빼, 편안함을 강조한 브라렛(bralette)이 대세다. 

빅시 마니아인 이모(33)씨는 최근 브라렛을 입어보고 ‘브래지어의 신세계가 열렸다’고 했다. 이씨는 “한 번 브라렛을 입어본 순간 뉴욕 매장에서 산 빅시 와이어 푸시업은 서랍 속 신세로 전락했다”며 “빅시 속옷을 입으면 갑갑하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 조사기관 에디티드의 조사 결과 지난해 푸시업·패드 브래지어 판매는 전년보다 감소한 반면 브라렛과 스포츠 브래지어 판매가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브라렛 제품군 가격대는 빅시 보정용 속옷의 절반 수준인 35달러 선이다. 미국 금융 기업 웰스파고의 조사에서 빅시 속옷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절반 이상인 58%가 가격이 비싸다고 응답했고, 이들 경험자의 68%는 과거보다 브랜드 선호도가 떨어졌다고도 말했다. 가디언은 “핵심 고객층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CNN도 “소비자들의 선호도 변화는 빅시가 브래지어 시장에서 가졌던 강점을 잃게 됐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실패요인 3 | ‘온라인 퍼스트’에 매장 매력 급감

핑크와 검정으로 꾸며진 빅시 특유의 매장에 들어가면 고급스럽고 섹시한 속옷이 즐비하다. 이에 걸맞은 향수 냄새도 난다. 속옷을 구경하다가 착용해볼 수 있는 것은 호기심으로 매장을 찾았던 소비자를 ‘빅시 팬’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주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때 미국을 찾는 여성들의 필수 쇼핑 코스로 통했던 빅시 오프라인 매장은 회사의 ‘온라인 퍼스트’ 정책에 밀려 예전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빅시는 온라인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유통 시장 구조가 온라인 중심으로 변하면서 2016년부터 무료로 제공하던 카탈로그를 없앴다. 고객들이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매하도록 유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슬리 웩스너 회장이 사업 전면에 다시 나서게 된 이후 북미 사업의 20% 정도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빅시가 다른 속옷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었던 핵심 무기인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경험을 온라인에서 그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이미언 시겔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온라인에서 빅시의 매장 경험을 느끼지 못해 발길을 끊은 소비자들을 되돌리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매년 20% 성장하는 中서 돌파구 찾아 

최근 빅시는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속옷 시장은 지난해 250억달러로, 2020년에는 3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빅시는 그동안 뉴욕, 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만 열었던 연말 패션쇼를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했다. 빅시의 패션쇼가 아시아 지역에서 열린 것은 23년 만에 처음이었다. 빅시는 작년 처음으로 중국에 매장을 열기도 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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