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가 된 일들만 놓고 보면 이웃 나라에서 흥미진진한 영화 한 편이 개봉한 듯하다. 영어 교사에서 출발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을 일군 자가 정부를 공개 비판한 뒤 잠적, 기업공개(IPO) 무산 이후 숱한 음모론이 쏟아지는 상황에 다시 등장, 기업의 향후 운명에 쏠리는 전 세계의 이목까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과 중국 당국 간 최근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심지어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이른바 권력투쟁설을 전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많은 한국인이 이 사건에 집중하는 건 중국이 기본적으로 개인 자유가 제한된 사회주의 국가여서가 아닐까. ‘사람과 돼지는 튀면 먼저 죽는다’는 농담이 있는 중국에서 마윈은 눈에 띄기로 작정한 듯 거침없는 인물이다. 그 이질적인 조합 자체가 다른 나라에는 관전 포인트로 충분하다. 일론 머스크가 미국 정부를 비판한 뒤 잠시 조용했어도 이렇게까지 화제를 모았을까.

그러나 ‘소신 발언과 후폭풍’ 정도의 가십성 이슈로 이해하고 넘기기에는 이번 일의 함의가 크다. ‘이코노미조선’이 공격받는 마윈을 주제로 커버 스토리를 준비한 이유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를 포함한 중국의 정보기술(IT) 산업과 관련 정책 움직임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혁신 기업의 공존이 과연 가능한지에 관한 오랜 궁금증이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라고 분석한다. 장면을 앞으로 돌려보자.

2020년 10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 서밋에 참석한 마윈은 평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 작심한 듯한 얼굴은 잔뜩 굳었고,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원고가 들려 있었다. 무대에 오른 그는 중국 당국을 정조준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중국에는 금융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형 은행은 담보 없이는 움직이지 않고, 혁신하려고 하면 규제가 가로막는다. 탁상공론이 판치고, 어제의 기준으로 미래를 관리한다.”

이날 VIP 테이블에는 이 포럼 조직위원회 주석이자 국가개발은행 회장 등을 역임한 천위안(陳元)이 앉아 있었다. 천위안의 아버지인 천윈(陳雲)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 중국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수립을 진두지휘한 경제 전문가다. 천윈이 설파한 ‘조롱경제론(鳥籠經濟論)’의 핵심은 ‘새(경제)는 새장(계획경제)에 가둬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마오쩌둥의 시대도 지나갔지만, 커다란 새장 속에서 시장을 춤추게 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기본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당 지배 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시진핑 지도부에서는 말이다.

새장의 존재를 모를 리 없는 마윈이 천위안을 비롯한 새장 관리자들 앞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낸 이유는 뭘까. 한 번 더 장면을 앞으로 돌려보자. 마윈은 2016년 11월 중국 관영 CCTV와 인터뷰에서 새장 탈출의 꿈을 언급한 바 있다. “진정한 하나의 경제 체제를 원한다. 국경과 시공을 초월하는 경제 체제는 탄생한 적이 없다. 수억 명의 소비자와 대량의 금융·자본·자원이 모두 존재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갖출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와 기업이 온라인상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앤트파이낸셜의 금융 혁신 시도는 마윈이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행보는 앤트파이낸셜이 결제 서비스를 넘어 대출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제동이 걸린다. 2조위안(약 344조원)에 육박하는 개인 소비 대출을 쏟아낸 앤트파이낸셜이 금융 안정을 강조하는 중국 금융 당국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금융 소외층을 줄이겠다는 중국 정부의 지향점에서 보면 저소득층을 향한 앤트파이낸셜의 대출 서비스는 환영받아야 했지만, 금융 안정이라는 대전제가 딜레마로 작용하면서 파열음을 안겼다.

이번 사태 이후 수면으로 떠오른 중국 공산당과 혁신의 공존에 관한 딜레마는 더 있다. 우선 시장 자율의 힘과 국가자본주의가 충돌하는 딜레마다. 중국은 미국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중국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할 시기에 자국 혁신 기업을 억누르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정보 권력을 움켜쥔 기업과 데이터 감시망을 사수해야 하는 당의 충돌도 딜레마다. 마윈이 세운 알리바바는 9억 명의 고객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본업인 전자상거래는 물론 결제와 미디어 등에서 오랜 기간 쌓은 방대한 데이터는 중국인의 모든 행동 패턴을 실시간 파악하고도 남는다. 데이터 권력이 알리바바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 영향력을 키운 마윈과 당의 선전 체제 간 충돌도 딜레마다. 중국 기업인 가운데 해외 국가수반을 가장 많이 만난 인물이 마윈이다. 마윈 같은 혁신가의 글로벌 존재감은 지배 체제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 당국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다. 통제 가능한 새장 안에서 혁신이 이뤄지길 바라는 관리자와 그 새장을 벗어날 때 진정한 혁신이 이뤄진다는 새의 동상이몽은 앞으로 더 많은 숙제를 안길지 모른다. 제2, 제3의 마윈은 계속 등장할 것이기에.


국가와 빅테크 진통은 전 세계 국가의 과제

사실 중국만 이런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게 아니다. 비단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혁신을 표방하는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지위에 관한 이슈는 세계 각지에서 신규 규제 수립과 기존 제도 보완을 야기한다. 마윈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한국은 네이버·카카오·토스 등 급성장하는 국내 플랫폼 기업과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고 부작용을 극복해 나가고 있나.

더불어 이번을 계기로 혁신이 많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만 동시에 빈부 격차나 삶의 질 저하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월 6일 ‘홍위병이 돌아오다(Red Guards, redux)’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혁신 기업에 대한 중국 사회의 반감 분위기를 자본가를 저격한 문화대혁명 시절과 비교했다. 재물신으로 추앙받던 마윈이 공격받는가 하면 ‘996(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뜻)’이라 불리는 중국 인터넷 업계의 장시간 노동 문화를 비판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앤트파이낸셜 IPO 무기한 연기 사태가 중국 공산당의 마윈 개인을 향한 괘씸죄 차원의 보복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많은 국가와 플랫폼 업체가 이번 사태의 시그널에 주목한다. 그 메시지를 ‘이코노미조선’ 독자들도 함께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바란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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