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SK그룹에서는 최근 10년 새 가장 젊은 사장이 탄생했다. 바로 추형욱(47) SK주식회사 투자1센터장. 그는 지난해 12월3일 SK그룹 인사에서 SK E&S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1974년생인 그는 대표적인 대기업의 ‘젊은 임원’이다. 추 사장은 임원을 단지 3년 만에 초고속 승진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올해 1월 4일 임직원과 신년간담회에서 재택근무 활성화 여부를 묻는 한 직원에게“직원이 어디에서 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과만 잘 내면 됩니다”라고 답해 성과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추 사장은 취임 직후 본인의 강한추진력을 몸소 보여줬다. 1월 7일 SK E&S는 SK㈜와 각각 8000억원을 출자, 약 1조6000억원(15억달러)을 투자해 수소 관련핵심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플러그파워 지분 9.9%를 확보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투자는 추 사장이 지난해 11월 그룹의 수소사업추진단 단장으로취임했을 때부터 추진해온 건이다. 플러그파워 주가는 SK의 투자 발표 이후 연일 급등해 1월 15일 60.14달러에 마감했다. SK의 주당취득가액(29달러) 대비 107% 올랐다. 취임하자마자 평가 차익이지만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보인 것.

애경그룹에서는 지난해 말 오너를 제외한 역대 최연소 대표가 나왔다. 제주항공 경영본부장을 맡고 있던 1973년생 김재천(48) 부사장은지난해 12월 1일 애경그룹 인사에서 AK플라자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 김 대표는 회사 게시판에 2분짜리 영상을 올렸다. 그중 절반은자신이 집에서 가곡 ‘올드 랭 사인’을 피아노로 치는 모습이었다. 영상 끝에 김 사장은 “힘내자”는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AK플라자 측은“젊은 대표님답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직원의 마음을 피아노 연주로 격려한 것”이라 했다. ‘감성 리더십’인셈이다. 그는 발령 직후에는 전국 백화점·쇼핑몰 현장을 돌며 만나는 직원들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음료에는 ‘서로 소통하자’는 문구가적힌 자체 제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취임 후 궁금한 것은 직급과 상관없이 언제든 메신저로 직원들에게 물으며 소통하고있다.

보수적인 재계에서 지난해 말 ‘성과·아이디어·추진력’을 앞세운 30~40대 젊은 임원 발탁이 대거 이뤄졌다. 기업들은 전체 임원 수는줄여도, 1970년대(만 42~51세), 1980년대(만 32~41세) 승진자는 늘리는 추세다. 헤드헌팅 기업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국내 100대기업 임원에서 1970년대생 비중은 2018년 14%에 불과했지만, 2019년 20.5%, 2020년 상반기 27.1%로 꾸준히 높아지고있다.

추형욱 SK E&S 신임 사장과 김재천 AK플라자 신임 대표 외 김은희(43·1978년생) 한화역사 대표,박흥권(50·1971년생) 한화종합화학 사업부문 신임 대표, 박승덕(51·1970년생) 한화종합화학 전략부문 신임 대표,박윤기(51·1970년생) 롯데칠성음료 신임 대표도 젊은 대표의 주인공이다. 김은희 대표는 한화그룹 역사상 첫 여성 CEO다. LG그룹이2000여억원을 투자, 야심차게 출범시킨 인공지능(AI) 연구 조직 ‘LG AI연구원’의 초대 원장도 1976년생 배경훈(45) 상무다. 연구원내 ‘CSAI(최고 AI과학자)’로 영입된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도 만 44세.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30~40대 젊은 임원 발탁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임원 인사에서 신규 임원의 평균 나이는46.9세였다. 특히 1970년대생 임원이 대거 진입했다. 최현호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상무와 이윤경 삼성리서치 데이터분석연구실 상무가1979년생 만 42세로 최연소다.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제출된 삼성전자 사업 보고서에서 신규 선임된 임원 중 80% 이상이1970년 이후 출생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1월 말 LG전자 인사에서 발표된 신규 임원 가운데 1970년 이후 출생 비중은 2019년 57%에서 72%로 크게 늘었다.롯데그룹도 비슷한 시기 전체 임원 승진자 수는 80% 줄이면서도 신임 임원 총 50명 가운데 90%(45명)를 1970년대생으로 뽑았다. KT도작년 12월 발표한 새 임원 20명 중 절반이 1970년대생이다. 특히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밀레니얼 세대인 1980년대생 여성 5명의상무대우를 배출했다. CJ제일제당의 김숙진(40) 식품사업부문 마케팅 NPD(신제품개발) 담당, 배혜원(40) 식품사업부문 식품전략기획 담당,주혜빈(40) 외식사업총괄 외식사업 담당, 이찬(41) 법무실 해외법무팀장과 CJ주식회사의 정수현(41) 인수합병(M&A)팀 담당이승진자 명단에 올랐다. LG생활건강에서는 지난해 말 전년도에 이어 1980년대생 임원이 나왔다. 1983년생 지혜경(38) 중국디지털사업부문장상무가 승진했다.


화상 회의하는 추형욱 SK E&S 사장과 앤드 머시 플러그파워 CEO. 사진 플러그파워 유튜브
화상 회의하는 추형욱 SK E&S 사장과 앤드 머시 플러그파워 CEO. 사진 플러그파워 유튜브
김재천 AK플라자 대표이사가 연말 신년인사 동영상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AK플라자
김재천 AK플라자 대표이사가 연말 신년인사 동영상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AK플라자

스펙보다 미래 먹거리 찾을 인재 임원으로

임원 조건에 더 이상 서울대 출신에 해외 유학 스펙도, 승진 연한을 채우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연공 서열과 상관없이 실제로 성과를 내는추진력, 흔하지 않은 자신만의 전문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인재들이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줄 리더들을 전면배치한 것.

1970년대 이후 출생자는 디지털 전환에 익숙하다. 특히 국내 주 소비층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0년대생)의 마음을빠르게 읽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예기치 못한 위기가 곳곳에서 터지는 상황에서 변화와 소통에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재벌 3~4세가 이전 세대와 달리 해외 유학 경험이 풍부하고 디지털과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도 임원 연령대를낮추고 있다. 정의선(1970년생)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1978년생) LG그룹 회장, 조원태(1975년생) 한진그룹 회장 모두1970년대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은 모두 만 53세, 1968년생이다.

인재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으면 이들이 대기업에서 짧게 경력을 쌓은 후 ‘창업의 길’을 선택하는 시대적 흐름도 젊은 임원 증가에 영향을미치고 있다. 다수 직장인의 꿈이 임원이던 시절과 달리 총수들이 직접 인재 모시기에 나선 이유다. 2019년 사람인이 20~30대 직장인을대상으로 ‘최종 승진 목표’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41.7%가 ‘딱히 직급 승진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임원을 꿈꾸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응답자의 26.9%는 ‘임원’을 최종 승진 목표로 꼽았다. ‘이코노미조선’은 커버 스토리를통해 6명의 대기업 젊은 임원을 만나 이 시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살펴봤다. 신규 선임된 젊은 임원을 만나 이들이 직장인의 ‘별’이 된자신만의 무기, 킬러 콘텐츠를 물었다. 김은희 한화역사 대표는 “변화를 빠르게 흡수해 결과물을 도출해낸 것”이라고 했다. 최소정(39)SK텔레콤 구독미디어 담당 상무와 최준기(47) KT AI·빅데이터사업본부장은 모두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는 아이디어”를 꼽았다.

앞서 발탁돼 젊은 임원, 대표로 활약해온 리더들도 만나 기존 임원이 갖지 못한 이들의 장점과 어려움을 들어봤다. 30대에 대표이사 자리에올랐던 윤성대(40) 이랜드파크 대표는 “경험이 다른 대표보다 부족하겠지만, 주 고객층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이성화(43) GS홈쇼핑 CVC(기업벤처캐피털) 사업부 상무는 “고참들이 불편해할 수 있지만, 직원과 협업과 소통에는 분명히 강점이 있다”고했다.

안상희·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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