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물리력을 사용하던 일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했다. 초기엔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반발로 기계를 때려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 등이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들 ‘산업혁명으로 창출된 일자리가 사라진 일자리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자동차의 발명으로 마부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자동차 제조 노동자·정비업자·운전기사·차량 판매원·주유소 직원 등 그보다 많고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났다.

‘기술 혁신은 경제 성장을 촉발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인공지능(AI)과 로봇 그리고 정보통신기술(ICT)이 주가 되는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부터다.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는 정도에 그쳤던 기존 기계와 달리, 이 신기술은 아예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신기술이 경제·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속도가 예상보다 더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인간은 감염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강제로 배제됐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3~6월 100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대면 서비스업처럼 대면 접촉이 불가피하거나 제조업과 같이 특정 공간에 모여 일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가 강한 충격을 받았다.

고객에게 어울리는 상품을 추천해주던 매장 직원의 역할은 비대면 쇼핑몰의 AI 알고리즘이 대체했고,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조립하던 제조업 근로자의 역할은 자동화 기계가 대체했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으로 감염병이 조기 종식될 거란 기대가 무너지며, 기업들은 노동의 비인간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김혜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부연구위원은 9월 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실직한 근로자 중 상당수가 영구적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불확실성에 따른 고용 리스크를 인식한 기업은 자동화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고용이 감소하는 일자리 양극화 현상을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전문가들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근로자 개개인의 운명이 기술 숙련 정도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라며 “기계가 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을 도맡는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날 것이고,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을 지닌 고숙련 노동자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동안 ‘좋은 일자리’를 영위하던 사무·제조·판매 등 중숙련 노동자가 가장 먼저 기술 혁신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은 새로운 전문성을 획득해 고숙련으로 올라가거나, 쓸모를 상실해 저숙련으로 떨어지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로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기술 보유 여부에 웃고 우는 직장인

물론 기술 혁신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는 영역도 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통해 업종별 정규직 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정보통신업에서는 2015년 8월에서 2019년 8월까지 정규직이 57만7000명에서 64만8000명으로 7만1000명 늘어났다.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과 금융 및 보험업에서는 각각 4만1000개와 1만5000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 반면 제조업과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에서는 정규직 수가 크게 감소했다.

이 같은 추세는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일으킨 경제 대전환에 발맞추기 위해 관련 직무 채용을 늘리며,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9월 7일 발표한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트렌드’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기업의 51.8%가 “하반기 신입 채용 시 AI, 데이터 분야 디지털 직무 채용을 예년보다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력직 채용에서도 삼성·LG·현대자동차 등 다수 대기업이 디지털 관련 역량을 갖춘 인재를 활발하게 구인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급변한 일자리 판도에 개개인이 적응할 수 있는가’다. 기술과 역량이 이미 갖춰져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겠지만, 관련 역량이 전무한 이들은 이미 극심한 커리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남녀 직장인 2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3%가 ‘본인의 경력을 포기하고 다른 회사 신입직 채용에 지원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중고 신입’ 지원 이유에 대해서 ‘비전이 높은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29.6%였고, ‘현재 업무에 만족하지 못해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라는 응답도 29.1%에 달했다.


커리어 관리 통해 더 멀리 날자

이직 시장에서 활약하는 헤드헌터 4인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커리어 관리법을 묻자 “디지털·빅데이터 관련 역량을 갖춘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산업군이 ICT를 사업에 접목시키는 경향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가속화하며 업종 간 경계가 희미해졌기에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커리어 위기는 일반 직장인뿐만 아니라 전문직에게도 해당된다. 대니얼 서스킨드 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 경제학과 선임연구원은 “전문직도 커리어를 다각화하지 않으면 AI나 준전문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격증 하나로 평생 소득을 보장받던 전문직도 앞으로는 커리어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스턴대 저널리즘 교수인 엘렌 러펠 셸은 2018년 출간한 ‘일자리의 미래’에서 “우리는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존재하고 주어진 기술의 틀 안에서 훈련받는 게 단기적으로는 별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때 그런 기술만으로 받을 수 있었던 정도의 보수를 받기어렵다”라고 했다. 러펠 교수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신기술은 그 목적 자체가 ‘비효율적인’ 직업을 없애는 것이기에 ‘기술적 실업’은 피할 수 없다”며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 일자리 시장에서는 민첩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상현·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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