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 왼쪽부터 박인비 선수, 박세리 감독, 양희영 선수. 사진 조선일보 DB / 오른쪽 1998년 신동식 명예회장이 조선소에서 설계 감리를 하는 모습. 사진 한국해사기술
왼쪽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 왼쪽부터 박인비 선수, 박세리 감독, 양희영 선수. 사진 조선일보 DB
오른쪽 1998년 신동식 명예회장이 조선소에서 설계 감리를 하는 모습. 사진 한국해사기술

“배우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연기, 촬영팀 등 모든 스태프가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들, 그 안에 들어있는 제 고민들…. (‘기생충’이) 영화 자체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봉준호 감독이 2월 19일 아카데미상 수상 후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1년간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174개 상을 휩쓸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상을 따내며 101년 한국 영화 역사와 92년 아카데미 역사를 다시 썼다.

‘이코노미조선’은 세계를 사로잡은 작품 ‘기생충’에서 장인과 장인정신의 가치를 찾았다. 장인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려 노력하는 정신’이다. 그리고 이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을 장인이라 칭한다. 과거 전통적 의미의 장인이 공예가, 도예가 등 ‘손 기술자’에 한정됐다면 지금은 범위가 넓다. 정치, 경제, 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와 직종에서 장인이 나올 수 있다. 각종 정보기술(IT) 플랫폼의 등장으로 장인의 확장성도 커졌다.

‘기생충’ 신화의 중심에는 ‘영화 장인’ 봉준호 감독이 있다. 그의 삶에는 장인의 서사에 소개될 법한 요소가 많다. TV로 흑백 영화를 밤새워 보며 감독 꿈을 꾸던 아이, 영화 잡지를 탐독하며 이야기를 상상하던 중학생,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던 대학생, 결혼식 비디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던 충무로 청년까지. 생활고로 동기가 쌀을 가져다줬다는 에피소드도 영화에 인생을 걸고 매진한 장인의 외길과 겹쳐진다.

봉 감독의 장인정신은 ‘봉테일(봉준호 + 디테일)’이라는 별명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써서 완결성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그는 상상한 장면을 미리 계획해 그대로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본의 모든 장면을 만화처럼 그려 이를 배우, 제작진과 공유한다. ‘기생충’ 콘티북에는 장면별 배우의 위치, 동선뿐만 아니라 촬영 속도를 지정한 화면 프레임 수까지 적혀 있다.

봉 감독과 함께 영화를 완성한 제작진의 장인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와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한진원 작가는 초고를 쓰면서 운전기사, 가사도우미 등을 취재해 방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38선 아래로는 골목까지 훤합니다” 같은 현장감 넘치는 대사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빛이 들어오는 각도까지 계산해 장면을 포착할 정도로 디테일과 완성도를 중요시한다. 2월 26일 개봉하는 흑백판도 봉 감독과 함께 한 장면씩 매만져 새로 작업했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완벽한 세트장을 구현해 아카데미 심사위원장의 찬사를 받았다. 일부러 삼겹살을 구워 기름때를 입히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놔 반지하 집 ‘냄새’까지 만들었다. 타이밍과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해 리듬감을 극대화하는 솜씨로 유명한 양진모 편집감독도 있다. 그의 빈틈없는 편집에 관객은 이야기에 깊숙이 빠졌다.

이렇게 제작진이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쳐 만든 ‘기생충’의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제작비(135억원)의 18배에 육박하는 흥행 수익(약 2414억원·2월 20일 기준) 외에도 ‘오스카 범프(후광 효과)’로 한국 영화, 관광, 수출 전반에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 사회·문화적 의미도 적지 않다. 문화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이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섰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또 한국 자본, 한국 감독이 만든 ‘메이드 인 코리아’ 영화의 쾌거는 콘텐츠 수출에만 머물던 한국산(産) 기획력의 재평가를 불러일으켰다. 주도권을 쥐고 세계 문화 산업을 이끌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정책과 사회 분위기는 장인정신과 다소 멀어지고 있다. 밀레니얼·Z세대(10대 후반~30대 후반)의 등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풍조 확산과 맞물려 일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건물주를 꿈꾸는 이들에겐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말이 최고의 덕담이 됐고, 이들은 ‘플렉스(flex·비싼 물건을 사서 부를 과시하는 것)’로 ‘탕진잼(돈을 쓰는 재미)’을 외친다. 일이 생계를 위한 수단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그래서 ‘이코노미조선’은 각 분야 장인 6인을 만났다. 대중이 인정하는 장인의 삶을 통해 일의 의미와 시대에 맞는 장인정신의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박세리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스포츠),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명예회장(선박 설계 기술), 장성택 BMW코리아 상무(자동차 정비 기술), 박현우·정경천·이건우 작곡·작사가(문화)다. 평균 나이 66세로 최소 27년에서 71년 동안 자기 분야에 몰두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들이다.


자동차 명장 장성택 상무가 자동차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BMW코리아
자동차 명장 장성택 상무가 자동차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BMW코리아
왼쪽부터 이건우 작사가, 박현우 작곡가, 정경천 작곡가가 작업실에 모인 모습.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왼쪽부터 이건우 작사가, 박현우 작곡가, 정경천 작곡가가 작업실에 모인 모습.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꿈꾸는 방향으로 이끄는 의지

이들의 공통점은 ‘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박세리 감독은 ‘세계 최고의 골퍼’가 되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대학 대신 낯선 미국행을 선택했다. 신동식 명예회장은 부두의 군함을 보며 ‘언젠가는 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꿨다. 장성택 상무는 어린 시절 동네에 등장한 트럭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해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이후의 삶을 이끈 것은 의지와 노력이었다. 박 감독은 종일 이어지는 훈련 일정을 마치고도 숙소로 돌아와 스윙을 복습했다. 박 감독은 “모든 것을 골프에만 집중했던 때”라며 “골프를 위해 낭비 없이 살았다”고 회상했다. 신 명예회장은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낯선 스웨덴 조선소에 ‘일하고 싶다, 가르쳐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먼 길을 떠났다. 그는 “내가 가졌던 것은 꿈, 하고자 하는 의지뿐이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꿈, 의지, 노력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장인의 길을 이어 가고 있다. 장성택 상무는 후배들을 위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다.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세계 골프를 제패한 박세리 감독은 어떤 노하우를 갖고 있을까. 그는 ‘자신을 돌보는 여유’를 꼽았다. “내가 선수 시절 못 했던 것”이라면서도 “몰두하면서도 균형을 잡아야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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