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머론(Pablo Mauron) 스위스 제네바대 엔지니어링 석사 / 사진 DLG
파블로 머론(Pablo Mauron) 스위스 제네바대 엔지니어링 석사 / 사진 DLG

매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스위스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가 열린다. 올해 30회째를 맞은 박람회로 그해의 명품 시계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세계적인 행사다. 그런데 이 행사가 중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 주최 측 제네바 고급시계협회(FHH)의 고민거리였다. 지난해 FHH는 중국의 명품·패션 왕홍 ‘보이남(BoyNam)’과 ‘피터 슈(Peter Xu)’를 초청했다. 제네바에 간 이들은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행사를 홍보했다. 결과는 대성공.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관련 콘텐츠 조회 수는 2300만 건을 기록했다. 특히 웨이보의 라이브 플랫폼 ‘이즈보’를 통해 송출된 방송의 동시 접속자 수는 120만 명으로, 누적 시청 수 1200만 건을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파블로 머론(Pablo Mauron) 디지털럭셔리그룹(DLG·Digital Luxury Group) 파트너는 “여태 SIHH가 진행했던 중국 관련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면서 “왕홍은 자신의 팬을 브랜드의 고객으로, 또 브랜드의 팬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8년째 거주 중인 그는 중국 왕홍 경제 초창기부터 급성장기 등을 모두 경험한 중국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다. DLG는 스위스 제네바와 중국 상하이에 사무실을 둔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그룹이다. 상하이에 있는 머론 파트너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최근 중국 왕홍경제에서 ‘핫’한 트렌드가 있다면.
“‘라이브 스트리밍(live streaming)’ 열기다. 전자상거래와 통합된 중국 플랫폼의 특성 덕분에 라이브 스트리밍이 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시청자는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하단에 있는 제품 구매 링크를 클릭해 시청 도중 물건을 살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뷰티 왕홍이자 ‘립스틱 오빠(口紅一哥)’라는 애칭이 붙은 리자치는 라이브 방송에서 수백 가지 립스틱을 직접 테스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광군제에서 그는 5분 만에 1만5000개의 립스틱을 팔아치우기도 했다. 그의 라이브 방송을 보면 이런 식의 방송 형태가 판매에 최적화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자치는 수백 가지 립스틱 제품을 매우 빠른 속도로 테스트하면서 과장된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방송을 이어간다. 일종의 ‘쇼’와 같다. 그가 빠른 속도로 제품을 테스트할수록 시청자들이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제품 판매를 촉진한다.”

미국, 한국 등에서도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 ‘왕홍경제’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내 밀레니얼(1981~96년 출생)과 Z세대(1997년 이후 출생)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모두 연결된 세상’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여기에 중국만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발달·급성장하면서 왕홍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플랫폼에 대한 밀레니얼·Z세대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왕홍경제가 급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이다. 또 팔로어·관객·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 왕홍 마케팅은 전통적인 제품 광고와 다르게 새로운 재미를 준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 기업이 만들어낸 프레임이 아니라 친구 같은 왕홍의 눈으로 제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 기업은 왕홍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왕홍을 주요 콘텐츠 유통망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왕홍은 최소 두 개 이상의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한다. 위챗, 웨이보, 더우인, 샤오홍슈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은 왕홍과 협업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이들 플랫폼에 유통한다.”

중국 왕홍경제만의 특징이 있다면.
“중국의 유명 왕홍은 대부분 자기 브랜드와 쇼핑몰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로 시작해 자신의 화장품 브랜드 ‘카일리 코스메틱’을 낸 카일리 제너, 패션 블로거에서 시작해 브랜드 ‘키아라 페라그니’를 낸 키아라 페라그니 등이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더 자연스럽다. ‘미스터백(Mr.Bags)’ ‘고고보이(gogoboi)’ ‘유샤오게(Yu Xiao Ge)’ ‘샤먼다사오(Ximen Dasao)’ 등이 대표적이다. 또 중국에는 왕홍을 전문으로 키우는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산업도 성행하고 있다. 일종의 ‘왕홍 인큐베이터’로 K팝 스타를 키우는 한국의 소속사 같은 개념이다.”

기업은 왕홍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목표로 삼은 고객이 누구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100개 이상의 플랫폼이 있고, 이 플랫폼마다 영향력 있는 왕홍이 있다. 그래서 중국 플랫폼별 성격과 이용자 특성 등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중국은 베이징, 상하이로 대표되는 1·2선 도시, 웨이하이, 옌볜 자치주 등 3·4선 도시 등 인구에 따라 도시 등급이 나뉜다. 따라서 도시별로 선호하는 플랫폼이 다르다.”

구체적으로 조언해준다면.
“예를 들어 A라는 브랜드가 우선 브랜드 노출을 목표로 한다면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소셜미디어인 웨이보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이 브랜드가 이미 중국 시장에 자리 잡은 상태이고, 판매를 목표로 한다면 위챗을 활용하는 편이 좋다. 플랫폼을 선택했다면 그다음은 왕홍이다. 왕홍마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브 방송에 특화한 왕홍, 콘텐츠를 잘 만드는 왕홍 등 모두 다르고, 이 특성에 따라 팔로어 성격도 달라진다. 유행이 짧은 소비재의 경우 라이브 스트리밍 형식이 적절할 테고, 명품의 경우 콘텐츠를 가능한 한 많이 확산시키는 방식의 홍보가 좋다. 또 팔로어의 관여도(engagement)도 중요하다. 팔로어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아요 개수, 댓글 수, 리포스트·공유 정도 등 반응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를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회성 노출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효과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입소문을 구축해야 한다. 왕홍경제가 급성장한다고 해서 여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왕홍이 ‘매직 솔루션’이 될 수는 없다. 왕홍은 브랜드의 여러 마케팅 전략 중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 전략을 일관성 있게 세우고 여기에 맞춰 왕홍 마케팅 등 도구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인플루언서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중국에서도 왕홍 신뢰성 문제 등 부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지 않나.
“글쎄. 한국의 인플루언서 경제와 중국의 왕홍경제는 무척 다르다. 물론 몇몇 왕홍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직 중국 소비자 사이에서 왕홍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중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왕홍을 신뢰하고 왕홍이 존중받는 편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인플루언서의 콘텐츠가 상업화한 영향으로 소비자도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왕홍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늦게 시작했다. 그래서 인플루언서 경제가 부정적인 쪽으로 발현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왕홍은 브랜드력을 쌓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는 수천만 명의 왕홍이 존재한다. 매우 경쟁적인 환경이다. 또 이런 ‘왕홍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력과 신뢰를 지키는 왕홍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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