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서울대 국사학과, KDI 국제정책대학원 경영학 박사, 산업자원부 외신대변인, 경향신문 기자 / 사진 최상현 기자
이은형
서울대 국사학과, KDI 국제정책대학원 경영학 박사, 산업자원부 외신대변인, 경향신문 기자 / 사진 최상현 기자

“흔히 97세대(1970년대 출생·90년대 학번)를 86세대(1960년대 출생·80년대 학번)와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 사이에 놓인 ‘낀낀세대’라고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앞뒤 두 세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가교세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무궁한 가능성을 발휘할 세대라고 봅니다.”

97세대는 1970년대에 출생해 199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지금의 40대를 일컫는 용어다. 이들은 청소년 시절 ‘486’ 삐삐를 쳐 사랑을 고백하고 워크맨을 들고 다니며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즐기던 X세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무렵인 1997년,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비극이 시작됐다. 극심한 취업난에 몰린 X세대는 ‘IMF(국제통화기금) 세대’로 전락했고 세대담론에서도 소외됐다.

이런 97세대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정계에서는 ‘97세대가 86세대 기득권을 밀어내고 주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재계에서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필두로 ‘97세대 리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한화·SK 등 지난 연말 대기업 인사에서 70년대생 임원이 대거 발탁됐다.

‘이코노미조선’은 2019년 12월 23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 경영관 연구실에서 세대담론 전문가인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만나 ‘97세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963년생 86세대인 이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를 연구하다 그사이에 낀 97세대의 가능성을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97세대는 86세대의 조직 문화와 밀레니얼 세대의 디지털 능력을 동시에 가진 세대”라며 “이들 세대가 불러올 새바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7세대가 최근 존재감을 드러내는 원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연령 효과’ 때문이다. 어느 세대든 4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지금 상황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앞선 세대가 정년 등으로 퇴진하면 97세대는 앞으로 더욱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이치다. 다만 세대마다 나타나는 리더십의 형태가 다르기에 97세대를 연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기존 리더인 86세대와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는 97세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86세대의 사상적 기반은 ‘민주화 운동’이다. 이념적 정체성이 두드러지고,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결속력이 강하다. 반면 냉전과 군사독재가 종식된 시기에 가치관이 형성된 97세대는 탈이념·탈정치 성향이 강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촉발된 사상 최악의 실업난에 입사 취소 통보가 잇따랐다.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고, 다른 세대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97세대의 핵심은 현실감각과 실용주의다. 97세대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세대이기도 하다. 외환위기로 주춤하긴 했지만 그래도 1999년부터 2007년까지 경제 성장률이 평균 6%는 됐다. 경제 성장의 우등석에 앉은 86세대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막차는 탄 셈이다. 수저 계급론이 지배적인 지금보다 계층 이동도 자유로웠고, 초기 수능 세대이기도 하다. 공부로 성공한 97세대는 교육열이 굉장히 높아, 이들이 학부모가 됐을 때 영어유치원이 처음 생겼다. 이러한 교육열이 기업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7세대를 밀레니얼 세대와 비교하면 어떤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자신의 욕구와 개성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윗세대에게 있어 불가해의 영역이다. 그러나 97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밀레니얼 세대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향유하던 삐삐나 PC통신 문화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5세대 이동통신(5G)이었다. ‘디지털 원주민’인 밀레니얼 세대에는 미치지 못해도 ‘디지털 이주민’ 정도는 된다. 외환위기 탓에 자기 세대가 할 수 없었던 욕구 표출을 밀레니얼 세대는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마저 느낀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런 애들을 데리고 조직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하는 걱정도 안고 있다.”

그동안 97세대가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앞 세대인 86세대가 임팩트를 상당히 길게 끌어간 탓이 크다. 86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고, 경제적으로는 고도 성장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 사실 비율만 놓고 보면 아직도 사회 주도층에는 86세대가 더 많지 않나.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이 97세대에서 상당한 기회를 앗아간 면도 있다. 다들 살아남기에 급급할 때 97세대의 골든타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한숨 돌릴 때쯤 밀레니얼 세대가 나타나서 소비 트렌드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97세대를 인터뷰하면, ‘우리가 스킵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97세대가 조직에서 어떤 리더가 될 수 있겠나.
“리더로서 97세대는 엄청난 잠재력과 파워를 갖고 있다. 먼저 선배 세대의 가치인 조직에 대한 헌신과 몰입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밀레니얼 세대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잘 이해한다. 이 때문에 97세대가 앞뒤 두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86세대 리더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97세대 리더는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라고 인정할 줄 아는 덕장 스타일이다. 부하 직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검증해 나간다.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에서 요구하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나 탈권위, 협업 등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경영 전략 면에서는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목적 중심 경영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 과거 세대가 활발한 인수·합병과 사업 확장을 통해 기업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 기업의 내실을 키워나가는 것이 97세대의 역할이다.”

최상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