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 보기

봉오동 일대 독립군의 무장항쟁을 그린 영화 ‘봉오동전투’가 8월 7일 개봉했다. 흥행순위 2위로 시작했는데 광복절인 8월 15일이 다가오면서 한때 1위로 올라섰다. 15일 현재까지 267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스크린 속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항일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7월 1일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이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불붙었다. 구호는 ‘노 재팬(No Japan)’에서 아베 총리를 정밀 저격하는 ‘노 아베(No Abe)’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7월 25일 ‘반일 영화’라 불리는 다큐멘터리 ‘주전장(主戰場)’이 개봉됐다. 주전장은 ‘주요 전쟁터(main battleground)’라는 뜻으로 영화에서는 미국을 뜻한다. 일본 우파가 미국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 논쟁 지역으로 꼽은 것에서 착안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글린데일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상 설치 여부를 두고 피해자 지지 측과 일본 우파 반대 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여태껏 흥행했던 반일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제삼자의 시선에서 30명이 넘는 한국·미국·일본의 좌·우파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격전을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영화는 일본을 악의를 품은 적군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는 일본 우파의 입장을 귀담아들은 뒤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조국 청와대 당시 민정수석은 7월 30일 그의 페이스북에 “다수의 한국인은 ‘위안부’ 문제의 논점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라면서 “그런 분에게 이 영화는 ‘지피지기’가 필요함을 알려줄 것이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사실을 공개 증언하면서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로 한·일 관계는 진전되는 듯했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베 정부는 일본군의 강제연행을 인정하지 않고, 한국이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에서 일본 우파 인사들은 “일본군과 정부는 강제연행 업자를 오히려 처벌했다”면서 사료를 제시한다. 사료 해석을 두고 양측은 공방을 벌인다. 영화를 보면 일본이 어느 부분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지, 한국이 입증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인지가 명확히 정리된다.

일본 우파 인사들은 과거사 청산 요구를 일본을 공격하려는 ‘음모론’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들은 최근 세력을 확장하면서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을 의식했다. 영화 속 우파 인사들은 “중국이 한·미·일 동맹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미국에 일본군 위안부상을 설치하는 배후에 중국이 있다. 그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겠다는 한국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 역사관의 간극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 글귀대로, 나의 위태로움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양국 역사관 인식 차 좁혀나가야

일본은 과거사 청산 요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2016년 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오가타 린타로 의원이 “지금까지 이 발언(위안부에 대한 사죄 발언)을 아베 총리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없다. 한 번쯤은 자신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고 묻자 아베 총리는 “몇 번이고 질문받을 때마다 답변(사죄)한다면 이 문제는 최종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같은 문제를 2년, 3년 뒤에도 말하라고 요구하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끝나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은 책임을 갖고 이 문제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여기에 국가 간 신뢰 문제도 더해졌다. ‘경제보복’을 감행한 이후 7월 4일 아베 총리는 “징용 문제는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종지부를 찍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며 “이웃 국가인 한국과 당연히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만, (한국은) 원칙적으로 국제 사회의 국제법 상식에 따라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반복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보다 국제법에 맞는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일본의 입장이 무엇인지 보다 치밀하게 분석할 시점이다.

과거 주일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는 “일본이 악이건, 폭력적인 세력이건 그들을 알아야 한다”면서 “도덕적 재단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이나 선입견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주전장’은 현재까지 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봉오동전투’ 관객 수의 1%에 달한다. 봉오동전투의 열띤 애국심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주전장의 치밀한 분석력도 갖춰야 하는 시점으로 보인다.


Keyword

한·일 기본조약 한국과 일본의 1965년 국교 정상화 조약으로 부속 협정 4개로 구성돼 있다. 14년간에 걸친 양국의 협상 과정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이 가장 논란이 됐다. 당시 한국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배상’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식민 지배 절차는 적법했다며 거절했다. 간극을 줄이지 못한 양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지급하면서 양국 간 청구권 문제를 최종 해결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plus point

‘징용 피해자 배상 대법원 판결’

‘징용 피해자 배상 대법원 판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양국 간 인식 차에서 비롯됐다. 국가 간 청구권이 말소됐어도 개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것을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인정하고는 있다. 다만 일본은 협상 당시 한국 정부가 개인 피해자를 자체적으로 보상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을 근거로 들어 개인 청구권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

반면 한국은 '보상'과 '배상'은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정부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보상하는 것과 일본 정부가 강제 징용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것은 별개라는 주장이다.

김소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