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미국 네브래스카대 경영학 박사(마케팅 전공),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프랜차이즈학회장 / 사진 김홍구 객원기자
박주영
미국 네브래스카대 경영학 박사(마케팅 전공),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프랜차이즈학회장 / 사진 김홍구 객원기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를 온몸으로 겪고 저축이 몸에 밴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 vs 6개월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지금 ‘나’의 행복을 위해 단 한 번의 여행에 쓰는 밀레니얼 세대(1981~2000년대초반 출생)’.

박주영 한국유통학회장(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은 베이비붐 세대인 자신과 밀레니얼 세대인 두 아들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9일 박 회장을 숭실대 벤처관에서 만났다.

그는 미국 네브래스카대에서 박사(마케팅 전공)를 마치고 외환위기가 정점을 찍었던 1997년 귀국했다. 미국에서 부친 이삿짐 비용 5000달러 중 4900달러를 후불로 결제했는데 3개월 만에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당초보다 3.5배의 비용을 냈다. 귀국 후 일주일 만에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일하던 중 외환위기 여파로 직원 30%가 짐을 싸서 나갔다. 박 교수는 “실직의 공포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을 키우느라 이렇다 할 취미생활도 해보지 못했다. 현금이 중요하단 생각에 월급은 꼬박꼬박 저축했다.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취미도 최근 들어서야 시작했다. 1962년생(57세)인 박 교수는 “뒤늦게 프라모델 동호회 활동을 해보고 싶어 모임에 나갔는데 참여자가 주로 30~40대였다”면서 “어울리긴 좀 어렵겠다 싶어 요즘엔 안 나간다”며 웃었다.

밀레니얼 세대인, 박 교수의 두 아들은 조금 다르다. 얼마 전 입대해 훈련소 기간을 마친 첫째 아들이 편지로 아버지에게 전한 말은 “와인이 마시고 싶다”였다. 첫째 아들은 평소에 다양한 와인을 즐겼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첫째 아들은 군대 가기 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일본 여행을 떠났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와규(和牛·일본의 한우)와 참치를 한꺼번에 즐기는 사진을 아버지에게 보내 자랑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도 다음주에 일본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박 교수가 강단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도 두 아들과 비슷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 음식 등 선호가 뚜렷하고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쓴다. 베이비붐 세대인 박 교수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돈을 저축하고 당장의 행복을 뒤로 미뤘지만, 밀레니얼 세대인 두 아들은 ‘현재’를 중시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고 있다.

박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행태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변동성이 크다”며 “국내 기업들이 이 세대의 소비심리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많은 기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3월 한국유통학회장으로 취임한 뒤 국내 유통산업의 발전방안을 찾기 위해 국내외 관련 연구자들과 수십여 차례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국내 유통기업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10년 내 많은 기업이 사라진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베이비붐 세대의 시대가 아직은 가지 않았다. 기업들이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제대로 된 전략 없이도 명맥을 유지하는 건 아직 돈 많고 시간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기업 매출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60대인 현 베이비붐 세대는 10년 내로 현역에서 은퇴해 소비를 줄일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다. 이들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기업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보는 ‘소비 실험’을 해볼 기회도 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대비가 안 된 상황인가.
“그렇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 속도도 매우 느리다.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프랜차이즈 브랜드 ‘놀부’를 보자. 놀부는 베이비붐 세대를 주 고객으로 고속성장했다가 외식 시장 포화로 2015년 적자 전환한 이후 지난해 3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건강을 신경 쓰는 베이비붐 세대를 고려해 유황오리 등으로 브랜드를 확대했지만 소비를 늘리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밀레니얼 세대를 잡은 것도 아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놀부를 떠난 기존 고객이 느낀 문제점을 해결해주거나 브랜드를 완전히 리포지셔닝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의류·신발 등 해외직구 이용률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내 브랜드가 많은데도 왜 젊은 세대가 해외직구를 하겠나. 한국 시장에서 같은 가격대에 만족감을 주는 제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너무 안주하고 있었다. 제품과 서비스의 전문성을 높이고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밀레니얼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981년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 세대는 두번 꺾인 세대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체험했다. 국내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원을 뽑기 시작하면서 극심한 취업난을 겪었고, 강원랜드 사태 등 기득권 세력이 대를 이어 일자리를 물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박탈감, 불확실성에 대한 압박감을 겪었다. 집값 폭등 시대에 내 집 마련은 아예 포기하고 ‘한 번 사는 인생, 나를 위해 돈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면서, 기술 발달로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정보를 습득해 아는 게 많아진 세대이기도 하다. 의식이 깨어있고 자신의 가치 기준을 소비에 반영한다.”

이런 특성이 어떻게 소비로 이어지나.
“‘나를 위한 소비’를 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나의 중요성이나 개성을 나타내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일례로 학교에서 원숭이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어 그 학생에게 ‘왜 그 옷을 입냐’고 물었다. 학생은 ‘일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베이프(BAPE)의 옷’인데, 브랜드가 가진 느낌과 스타일이 맘에 들고 특별하단 생각이 들어서 입는다’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 티셔츠 한 장에 10만원이 넘는 브랜드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1만원도 안 할 것처럼 보이는 티셔츠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기준에 부합하면 산다는 거다. 생필품처럼 일상적인 제품은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구입하지만 옷이나 가방·신발 등 스타일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제품에는 투자한다. 의식이 깨어있는 이 세대는 갑질 기업에는 단번에 등을 돌린다. 갑질 논란을 일으킨 남양유업, 호식이두마리치킨, 미스터피자 같은 회사들은 주 소비층을 잃고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밀레니얼 세대에 기업의 도덕성은 중요한 소비기준 중 하나다.”

국내 기업들에 해줄 조언은.
“과연 우리 회사는 밀레니얼 세대를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미 글로벌 유통기업들은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체험’하고 ‘공유’하길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매장에 재미 요소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준비 중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력 소비층이 됐을 때, 이 세대 공략법을 고민하고 실행해왔던 기업과 이제 막 대책을 세우려는 기업 중 과연 누가 승리를 맛볼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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