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직원의 전면 파업으로 가동이 멈춘 유성기업의 생산라인. ‘5년만 더 싸우자’라고 쓰여 있는 빨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직원의 전면 파업으로 가동이 멈춘 유성기업의 생산라인. ‘5년만 더 싸우자’라고 쓰여 있는 빨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12월 19일 오후 2시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의 생산라인. 육중한 철문을 열자마자 ‘5년만 더 싸우자’라고 거칠게 쓰여 있는 빨간 현수막이 보였다. 공장은 조용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직원들이 지난 10월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서 대부분의 기계가 멈춘 탓이다. 이곳엔 엔진 부품 ‘피스톤링’을 만드는 용광로가 총 5대 있는데, 이날 불이 지펴진 용광로는 한 대에 불과했다. 원래대로라면 야간팀 100여명을 포함해 총 300여명이 라인을 지켜야 하지만, 지금은 비(非)민노총 소속 현장직원들과 영업 등 현장과는 관계없는 관리직원까지 모두 동원해 공정별로 겨우 한 명씩 배치해 놓은 상태다.

공장 내부는 노사 분규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공장 내 동선을 따라 ‘성실교섭 이행하라’ ‘끝장투쟁’ ‘현대차가 책임져라’ 등과 함께 ‘회사는 금속이 접수한다’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많은 부서의 경우 비노조원과 탈의실도 따로 써야 한다”며 “탈의실 내에서 ‘집단 린치’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 11월 노조원들이 노무 담당 상무를 집단 폭행해 논란을 빚은 유성기업의 현재 모습이다. 2011년부터 약 8년간 이어지고 있는 노사 분규로 회사의 생명은 위태롭다. 2011년 피스톤링 시장점유율이 80%에 달해 사실상 국내 독점 공급 업체였던 유성기업은 지난해 점유율이 40%로 쪼그라들었다. 매출 역시 같은 기간 2794억원에서 2514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맘때쯤이면 내년도 사업계획이 나왔어야 하지만, 유성기업은 사업계획 완성은커녕 아직 시작조차 못 했다. 회사 관계자는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내년에 얼마나 더 흑자를 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적자를 줄이자’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며 “지난해 54억원 적자에서 올해 95억원 적자로 적자폭이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자동차 산업이 침체되면서 유성기업과 같은 노사 분규에 시달리는 사업장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이 호황이라면 우리 같은 사업장에도 물량을 주겠지만, 지금은 산업 전반이 어렵지 않냐”며 “언제까지 회사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장 눈앞의 밥그릇 싸움에 눈멀어 위기에 빠진 곳은 유성기업뿐만이 아니다. 지난 18일 울산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들은 모두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등이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A부품업체 관계자는 “주 52시간 시행으로 특근이 사라지면서 직원들의 임금이 많게는 월 50만원 이상 깎였다”며 “15년 이상 경력의 조장급 직원들이 주말에 일용직 알바까지 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B부품업체 관계자는 “최근 이 주변에서만 2차 협력업체 4곳이 파업을 일으켰다”며 “2차 협력업체가 파업했다는 것은 회사 문을 닫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들이 파업한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을 견디지 못한 회사가 월급에 상여금을 포함시켜 실질적 임금 인상 없이 월급을 인상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 침체는 지역경제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현대차에서 12년간 근무하며 기획실, 품질본부 차장으로 재직했던 박상복 울산 북구 기초의원은 “자동차 산업이 안되니까 시장 콩나물 장사가 안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현대차 공장과 부품업체가 몰려있는 울산 북구의 경우, 집값이 ‘폭락’ 수준으로 떨어져 지역구민들 불만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7년 11월 북구 아파트 매매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올해 11월 이 지수는 87.2까지 떨어졌다. C부품업체 관계자는 “자동차 사람들이 자주 가는 명촌 식당가의 경우, 예전엔 새벽까지 영업을 했는데 요즘엔 사람이 없어 9~10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며 “3시 반에 일이 끝나면 사람들이 모두 스크린골프만 치다 집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울산 북구 스크린골프 밀집도가 전국에서 제일 높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2013년 이후 혁신동력 사라져

국내 완성차 업체의 판매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중소 부품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미 여러 부품사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지난 6월 현대차의 1차 협력사 리한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현대차 1차 협력사 중 워크아웃을 신청한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뒤를 이어 중견기업 다이나맥이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금문산업·이원솔루텍 등 굵직한 부품사가 쓰러져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현대자동차그룹이 1조7000억원 규모의 상생 지원책을 내놨고, 정부도 3조5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동차 산업 위기가 부품사 줄도산으로 이어질 경우 지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금 지원을 받으면 유동성 위기는 넘기겠지만 혁신동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 위기의 본질에 완성차 업체의 제품·시장 전략 실패에 따른 판매 부진, 이를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부품산업 구조,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정책, 상생없는 전근대적 노사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은 “지난 30년간 한국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며 “그동안 이런 위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2013년 이후 혁신동력이 사라졌다”며 “자동차 업체의 경영진도, 노조도 예전 잘나가던 때만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올 초부터 위기였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부터 시작한 위기감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실적 부진과 맞물리며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367만1784대를 기록했다. 8년 만에 연간 400만대 선이 무너질 위기다. 한때 자동차 생산국 순위 5위를 유지하던 한국은 2016년 인도에 밀려 6위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 10월 멕시코에 추월을 허용하면서 올 연말에는 7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동차 업체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국산차 업체의 ‘어닝쇼크(실적 충격)’다. 현대자동차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 감소한 2889억원이다. 증권가 영업이익 컨센서스(전망치)였던 8000억∼90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영업이익률은 1.2%로 1년 전보다 3.8%포인트 하락했다. 현대차의 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4분기부터 1조원 밑으로 떨어진 뒤 4분기 연속 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1%대의 영업이익률은 조만간 적자 구조로 갈 수 있다는 우려를 커지게 한다.

기아자동차 등 나머지 업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아차는 3분기 영업이익이 1713억원, 영업이익률은 0.8%에 머물렀다. 쌍용차는 올해 3분기 22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작년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올해 1∼11월 누적 판매량은 1년 전보다 각각 12.2%, 16.4% 감소했다.

완성차 업체의 실적 부진은 부품업체에 직결됐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현대모비스를 제외한 올해 상반기 상장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은 1.38%에 불과하다. 제조업 전체의 5.43%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A부품업체 관계자는 “품질을 올리기 위해선 좋은 설비, 좋은 재료 등에 투자하기 위한 비용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수익이 나지 않고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선 품질보단 납품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수출이 줄어들면서 국내 생산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자동차 수출이 줄어들면서 국내 생산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미래 개척에 쓸 에너지, 노사문제에 쏟아

그동안 국내 자동차 생산은 꾸준히 줄었다. 2011년 국내 완성차 생산은 465만대였고 이후 매년 줄어 지난해에는 411만대에 머물렀다. 자동차 생산이 줄어든 것은 수출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서 2017년까지 내수는 147만대에서 156만대로 10만대가량 증가했으나 수출은 315만대에서 252만대로 63만대가 감소했다. 올해 1∼10월 자동차 수출은 190만5889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6%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북미 시장 물량이 가장 많이 줄었다. 지난 10월까지 북미로 수출된 차량은 80만409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7만5901대에 비해 7만1808대나 감소했다. 중국 시장에서도 예전 실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리자동차 등 중국 로컬 완성차 업체들의 기술과 품질 수준이 월등히 좋아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자동차 수출 강국도 옛말이 됐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만만치 않다. 급성장하고 있는 동남아 등 대체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만 이미 일본 자동차가 장악하고 있어 쉽지 않다. 2013년 이후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릴 기회가 있었지만 중국 시장에 밀려 결국 진출하지 못했다. 현대차가 내년에 인도네시아에 연산 20만대 규모의 SUV 전기차 공장을 세운다고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 등 주력 시장에서 부진한 현대차로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세계 곳곳에 생산 기지를 갖춘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아프리카에 들어가는 수출 차량을 유럽 공장에서 생산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GM과 르노닛산 또한 미국에 필요한 차종을 반드시 한국에서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한국은 자동차 생산기지로서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 위기의 해법은 결국 ‘경쟁력 강화’로 모아지는데, 이를 위해선 노사 문제 리스크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현장에서 꼽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저하 요인도 노조였다. B부품업체 관계자는 “현대차 공장에 가보면, 생산직원들은 하루에 4시간만 근무한다. 신차가 배정되면 공정을 배분하는데, 이때 한 사람이면 충분할 것을 두 사람이 받는다. 이렇게 해둬야 나중에 양산될 때 한 사람씩 교대로 쉬어가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라인에 가보면 앉아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노조원들이 많다”며 “그러면서도 월급은 많이 받는다는데 화가 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노사문제”라며 “제품 차별화와 시장 개척 전략보다는 노사 관계에 과다한 에너지를 쏟으면서 한국 자동차산업 경쟁력이 최악이 됐다”고 지적했다. 전동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차로의 전환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은 점점 심화하는데 국내에서는 높아만 가는 인건비와 노사문제 비용 때문에 연구·개발(R&D)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 시장의 위기 상황이 언제쯤 나아질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 차 시장 수요가 침체하고 미국 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발 관세 폭탄 우려도 아직 남아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중국 차 시장도 성장세가 꺾이면서 내년에도 차 산업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연속 인상률 10%를 상회하는 최저임금, 탄력근로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이 자동차업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 압박 등으로 불법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고 있는 점도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D부품업체 관계자는 “2차 협력업체 생산직 직원은 대부분 외국인”이라며 “외국인도 최저임금을 똑같이 적용받아, 어쩔 수 없이 적은 임금을 줄 수 있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외국인들이 일할 시간에 관리 당국에서 단속 나올 때를 대비해 도망가는 방법을 연습한다”며 “조별로 나눠 A조는 이쪽으로, B조는 저쪽으로 도망치는 방법을 연습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노동자 숙련도가 쌓일 수 없다.


생산 ·판매 부진 장기화 가능성

세계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SUV 시장에 잘 대응하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일부 있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경기 하락에 내수 부진까지 겹쳐 자동차산업 전반의 생산과 판매 부진이 장기간 지속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2011년 이후 매년 줄어왔던 한국의 자동차 생산이 앞으로 다시 증가할 수 있다면 당장의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내년에도 늘어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주 교수는 “한국 자동차 생산량은 이제 380만~400만대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완성차의 실적 악화와 이에 따른 부품업체의 고전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사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미래를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미국·독일·일본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공장 건설에 돌입했고, 이와 더불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미래 차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내연기관의 신기술 개발도 무시하지 않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우물 안’에서 발버둥 치는 사이, 자동차 선진국을 비롯해 중국은 저만치 더 앞서가고 있다.

장시형 부장대우,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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