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의 시내 광장 세 곳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동절기엔 오후 4시가 넘어가면 해가 지며 어두워지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은 떠들썩한 분위기와 반짝이는 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룩셈부르크의 시내 광장 세 곳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동절기엔 오후 4시가 넘어가면 해가 지며 어두워지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은 떠들썩한 분위기와 반짝이는 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룩셈부르크의 겨울은 여느 서유럽과 다름없이 긴 편이다. 한국(35도)보다 위도가 높은 지리적(49도) 특성상 겨울에는 일출이 늦고 일몰이 빠르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어둑어둑해져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짧다. 하지만 룩셈부르크의 겨울이 칙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11월 말부터 시내 곳곳 광장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불을 환히 밝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 달 정도 시내 한가운데 광장에 문을 여는 전통 시장이다.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계절 행사다.

11월 27일 밤 룩셈부르크 시티 곳곳에 자리 잡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았다. 대부분의 상점이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탓에 평소라면 인적이 드물었을 테지만 이 기간만큼은 다르다. 올해 성탄절을 만끽하기 위해 나온 시민으로 시내는 북적였다. 시내엔 ‘다름(d’Armes) 광장’ ‘헌법 광장’ ‘파리 광장’ 등 3곳의 광장이 있는데, 모두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이 광장에서 저 광장을 누비며 분위기에 취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여러 모양의 크리스마스용 장식품, 양초, 초콜릿 등을 파는 노점부터 소시지, 감자튀김, 커리부어스트 같은 주전부리와 맥주, 샴페인 등 술을 파는 음식 노점까지 구획을 나눠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노점들은 모두 반짝이는 노란색 전구와 크리스마스 장식품으로 한껏 치장하고 손님을 끈다. 광장 가운데 무대에선 가수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 널찍하게 마련된 키높이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난로를 쬐며 뜨거운 와인을 마신다. 그 틈에 섞여 뱅쇼(와인에 설탕 과일 등을 넣고 끓인 음료)와 룩셈부르크식 감자전 그롬페레키첼러를 시켜 맛봤다. 짭짤한 감자전과 따끈하고 달콤한 와인을 입으로 후후 불어 먹고 마시니, 추운 겨울밤 주변 모든 것들이 낭만으로 다가왔다.

낮에 보는 룩셈부르크 시티의 전경은 밤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머무르는 동안 대부분 구름 낀 날들이 이어졌지만, 둥근 돌로 만들어진 좁은 길과 상아색의 오래된 건물들, 멀리 보이는 대공의 성 등, 대공국의 품위를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1월 30일 짧은 낮시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오전 8시에 길을 나섰다. 거리는 어두웠지만 시민들은 분주히 출근하고 있었다.

룩셈부르크 시티의 명물은 시내를 걷다 보면 나타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그 아래 보이는 저지대 마을이다. 가파른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룩셈부르크 시티는 고도(高度) 차가 크다. 낮은 곳은 해발 230m, 높은 곳은 해발 402m에 이른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963년 지그프리트 백작이 도시에 터를 잡고 이곳을 ‘천연 요새화’했다. 바위산 위에 지어진 성벽 앞에 선 순간 탄성이 나왔다. 절경 때문인지 낙차 때문인지 모를 정도로 아찔했다. 1792년 룩셈부르크 시티를 찾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룩셈부르크에 와 보지 않았다면 겹겹이 요새로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을 결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다.

절벽 아래 저지대에 있는 마을로 가기 위해 ‘벤첼(Wenzel) 워크’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성벽을 따라 걷는 산책길인데 작지만 잘 나눠진 밭과 아름다운 숲, 오래된 유럽식 건물들이 좁은 강을 끼고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강이라고 하지만 폭이 서울 청계천보다 좁다. 촉촉한 겨울비를 맞으며 고요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중세 시대 룩셈부르크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시내에서 가장 ‘핫’하다는 음식점 ‘힛치’로 향했다. 밤 10시가 넘으면 식탁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클럽’으로 변신시키므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룩셈부르크의 식문화는 주변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식당에 가도 독일의 전통 음식인 슈니첼(고기 튀김)이나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다 보니 버거집이나 초밥집, 타파스집 등 구색도 다양하다.

힛치에서 선택한 음식은 여러 종류의 치즈와 살라미, 하몽, 올리브 등을 올린 ‘미트 앤드 치즈 플레이트’였다. 치즈의 풍미와 살라미의 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졌다. 룩셈부르크 로컬 맥주인 ‘바탕(Batin)’과의 조합이 좋았다.

프랑스와 독일을 이웃한 룩셈부르크는 와인과 맥주 소비량이 엄청나다. 2016년 룩셈부르크 1인당 와인 소비량은 61.30ℓ로 프랑스(53.6ℓ)를 크게 앞질렀고, 지난해 1인당 맥주 소비량은 75ℓ로 독일(101ℓ·3위) 못지않았다. 현지에서 만난 은행원 에릭 웰린은 “많은 룩셈부르크인이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쯤부터 맥주와 미트 앤드 치즈를 먹는 ‘애프터 워크’ 시간을 즐긴다”고 전했다.

룩셈부르크의 물가는 다소 높았다. 식당에 앉아서 물을 달라고 하면 작은 병에 든 생수를 가져다주는데, 평균 2.5유로(3300원) 정도다. 보통은 생수 대신 수돗물을 시키기도 하지만 수돗물을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는 높은 임금 수준과 관련이 있다. 유럽연합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7월 기준 룩셈부르크의 월 최저임금은 1998.59유로(약 257만원)다. 룩셈부르크 통계청의 연구에 따르면 성인 미혼 남성 1인이 사는 데 드는 최소 비용은 한 달 1923유로(약 25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 둘 있는 가정의 한 달 최소 비용은 3935유로(507만원)다.


plus point

한국전쟁 참전국 16國 중 하나

룩셈부르크 시티 중심가에 있는 ‘헌법 광장’ 한가운데 ‘황금의 여신상(Monument du Souvenir)’이 있다. 21m 높이 탑의 꼭대기에서 금색의 여신이 두 손으로 월계관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고 있다. 제1·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룩셈부르크 군인을 추모하는 탑이다. 탑 아래 널찍한 추모 비석에는 ‘1951~1954 COREE(한국)’라는 문구가 양각으로 선명히 새겨져 있다.

룩셈부르크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한반도에 군을 파병했다. 2013년 국가보훈처가 내놓은 ‘6·25전쟁 유엔군 참전 규모’ 자료를 보면 남한에 병력·의료·물자를 지원한(의사 표명국 포함) 나라는 총 63개국이다. 그 중 군대를 파병한 16개국 중 하나가 룩셈부르크다.

룩셈부르크는 89명으로 구성된 1개 소대를 파병했다.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지만, 당시 룩셈부르크 군 자체가 1000명 내외의 작은 군대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또 전사자 2명과 부상자 14명으로 병력 대비 사상자 비율이 유엔 참전국 중 가장 높았다.

또 한국전쟁은 룩셈부르크가 외국에 군대를 파병한 첫 사례였다. 이들 부대는 벨기에 군대에 편입돼 임진강, 학당리, 잣골 등에서 전투를 벌였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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