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후반 출생)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도전적이다. 일할 때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식으로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한다. 자신들이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인다.” (강원규, BMW 상하이 디자인센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국이 한국을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하거나 따돌리려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이 언제나 중국을 적 또는 경쟁자로만 보려 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오창, 중국 컨설팅업체 BCC 최고경영자)

중국 밀레니얼 세대 취재를 위해 1주일간 중국에 머물며 만난 현지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이코노미조선’은 이 기간에 컨설턴트와 패션디자이너, 호텔리어, 철강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밀레니얼 세대 전문직 종사자들과 중국 현지에서 한·중 경제협력의 선봉에 선 한국인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14억 중국 시장의 성장 동력인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세가지 키워드로 모아졌다. ‘도전적이고(進), 눈이 높으며(高), 빠르다(快)’는 점이었다. 중국 밀레니얼 세대와 대화를 나누며 마치 서부개척 시대 같은 열정을 느끼기도 했다.

사드사태, 대북문제,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중국과의 관계개선 혹은 상호이익 도모에 어려움을 느끼는 한국 기업·기업인이 많다. 그러나 한국이 장기적으로 생존·번영하는 데 중국을 패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국 간의 장기적인 협력과 공생을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가 오히려 시작일지 모른다.

‘이코노미조선’은 과제 해결의 방법으로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에 주목했다.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현재 전체 인구의 31%인 4억1500만명에 달한다. 인구 비율로는 31%이지만, 중국의 전체 전자상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1%에 달한다.

중국의 도시소비액은 2016년 기준 3조4000억달러인데, 이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18~35세) 비율이 1조5000억달러로 전체의 44%에 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예상치에 따르면, 중국 도시소비액 5조달러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비율이 5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곧 밀레니얼 세대 소비액이 그 이외 모든 연령층의 소비액보다 많아진다는 얘기다.

‘이코노미조선’은 중국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했다.

① 한국기업이 더 깊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해야 할 소비자, 소비시장.
② 한국기업의 미래 생존과 지속 성장을 위해 반드시 관리해야 할 파트너로서이다.

이를 위해 대우차이나(대우인터내셔널의 중국 지주회사) 대표를 지낸 재계 1세대 중국 전문가 전병우 원동투자그룹 대표를 인터뷰했고, 중국 최대 복합 정보기술(IT) 솔루션 제공업체인 디지털차이나 그룹 궈웨이 회장의 장녀 샐리 궈(Sally Guo)와 중국 최대 신용평가사 중청신(CCXI) 그룹 마오전화(毛振华) 회장의 장남 마오사이(毛赛)와도 만났다.


교육 수준 높고, 개인주의적·소비 지향적

3년여 만에 다시 찾은 중국은 이전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세계적인 완구 쇼핑 거리인 광저우 이더루(一德路) 주변 거리에는 다양한 크기와 가격대의 드론을 파는 노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상하이에서 광저우로 가는 상하이항공 비행기 내 쇼핑 책자에도 드론이 등장한다.

세계 최대 드론 제작업체 DJI를 배출한 ‘드론 강국’ 중국의 힘이 느껴졌다. DJI는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하며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80억달러(약 31조3800억원)로 1년 사이 75%나 증가했다.

스마트폰 QR코드 기반의 ‘모바일 결제 혁명’은 완성기에 접어든 듯했다.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 숙소 인근 허름한 분식점에서부터 지하철 음료수 자판기와 택시요금에 이르기까지 어디 가든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 스마트폰 앱을 열고 QR코드를 스캔하면 결제가 끝난다. 인민은행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중국의 모바일 결제 건수는 257억1000만건으로 전년 대비 85% 성장했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중국 소액 결제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버스로 3시간 걸리던 광둥(廣東)성 광저우~홍콩 구간에는 지난 9월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1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10월에는 중국 본토의 주하이(珠海)와 홍콩~마카오를 연결하는 길이 55㎞의 세계 최장 교량인 강주아오(港珠澳) 대교도 개통됐다. 과거에는 페리로 1시간, 자동차로는 3시간 30분∼4시간 걸리던 홍콩~마카오 구간 이동을 자동차로 30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됐다.

광저우~홍콩 고속철과 강주아오대교 건설은 홍콩과 마카오 경제를 끌어안기 위한 ‘대륙식 통합 프로젝트로’로 보는 것이 맞다. 중국 정부는 주강 하구에 있는 광저우와 선전, 주하이 등 중국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 경제를 묶어 대규모 경제벨트 조성을 추진 중이다. 관련 지역의 인구는 6600만 명, 지난해 지역내총생산(GRDP)은 10조위안(약 1650조원)으로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730조원)과 비슷하다.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 속에서도 중국 경제가 역동성을 잃지 않는 원동력은 뭘까? 그 원동력은 바로 4억1500만명에 달하는 밀레니얼 세대다. 마오쩌둥 정권 이후에 태어나 천안문 시위를 겪지 않은 이들은 국제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새로운 중국을 살아온 첫 세대다. 윗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훨씬 높고, 개인주의적·소비 지향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낮다. 해외 유학파들이 많지만, 최근 트럼프가 이민 관련 규정을 강화하면서 중국에 돌아와 중국 사회 변화의 주도 세력으로 떠올랐다.

세계은행은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수입이 2035년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를 통한 자기 과시’라는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폴링 스타 챌린지’라는 이름의 ‘부자 놀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명품 핸드백과 고가의 화장품, 하이힐 등 비싼 물건들을 사고인 척 바닥에 쏟아내 부를 과시하는 것이 포인트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이 놀이는 부유함을 뽐내고 싶어하는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폴링 스타 챌린지가 인기를 끌면서 이를 비꼬는 서민들의 풍자 놀이도 유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동차 수리공이나 환경미화원이 공구나 청소 도구 등을 쏟아놓은 채 엎어져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최근 자료를 보면, 중국은 전 세계 명품 매출의 32%를 담당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24년께 40%로 늘어날 것으로 BCG는 전망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 명품 소비자의 평균 나이가 28세라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중국의 독특한 인터넷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수라고 조언한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보다 역동적인 변화를 일궈내고 있는 중국이지만, 완전히 개방된 시장경제는 아니다. 중국에 여행이나 출장을 와서 습관적으로 구글 검색을 시도하거나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접속하려 할 때면 누구나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카카오톡과 네이버 라인, 다음 블로그 서비스 등도 4년째 차단하고 있다.

‘만리방화벽’을 세워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차단한 중국은 대신 독자적인 인터넷 세상을 구축했다. 구글은 바이두가, 카카오톡은 위챗이, 트위터는 웨이보가, 유튜브는 더우인(틱톡)이 각각 대체하고 있다.

1주일을 상하이와 광저우에 머물며 만난 중국 젊은이들은 통성명하기 무섭게 위챗 계정이 있는지 물었다. 지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면 즉각 위챗 대화방으로 소환해 인사를 시킨다. “중국에서 위챗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지인의 말이 실감 났다.

2016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판 인스타그램’ 더우인은 만 2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10억 건, 월 1회 이상 사용자 3억 명의 대규모 업체로 성장했다. 올 상반기에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제치고 애플 앱스토어에서 글로벌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도 ‘틱톡’이라는 이름으로 진출했다. 더우인의 가장 큰 특징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 대부분이 15초 이내 분량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판 파워블로거 ‘왕훙(網紅)’을 통한 마케팅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모바일 구매에 익숙한 중국 밀레니얼 세대는 왕훙의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축적했다가 소비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왕훙은 ‘왕뤄훙런(網絡紅人·인터넷 스타)’의 줄임말이다. 중국 대표 SNS 채널인 ‘웨이보’ 내 패션·뷰티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피니언리더 역할을 한다. 주로 동영상, 생방송 등으로 화장법이나 코디법을 소개하고 시청자와 양방향 소통을 진행한다. 적게는 수십만명에서 많게는 수천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어 방송을 한 번 할 때마다 수많은 중국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중국 최대 투자금융사 푸싱(復星·FOSUN) 그룹의 이재철 전무는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중국에 살고 있어도 중국 밀레니얼 세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밀레니얼 세대가 자주 이용하는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 보면 기업이 어떤 가치를 제공할 때 열광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중국 최대 커뮤니티형 전자상거래 사이트 ‘샤오홍슈(小红书)’와 모바일 앱을 통한 판매와 마케팅을 앞세워 급성장 중인 ‘루이싱 커피(瑞星咖啡)’, ‘중국판 우버’인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滴滴出行)’ 등을 체험해볼 것을 권했다.

문제는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이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히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난해 3분기 3%였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년 만에 1%로 추락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판매량은 2009년 GM과 폴크스바겐에 이어 3위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9위로 추락했다.


시안(西安)에 사는 한 여성이 웨이보에 올린 ‘폴링 스타 챌린지’ 사진. 사진 웨이보
시안(西安)에 사는 한 여성이 웨이보에 올린 ‘폴링 스타 챌린지’ 사진. 사진 웨이보

“중국 시장 특화 제품 아닌 세계 최고 원해”

중국 전문가들은 사드 사태로 촉발된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에서의 위상 하락을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모든 원인을 사드 사태로 돌리기보다는 이전까지 중국 시장을 얕잡아보고 품질과 서비스에서 안이하게 대응하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가뜩이나 힘든 우리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우리 경제에 남긴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여러 이유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14억 거대 시장을 그냥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독일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도 중국 시장에서 좋은 몫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무역전쟁 당사국인 미국 기업들도 중국 시장 진출을 지속적으로 모색 중이다.

구글은 올해 초 선전에 세 번째 사무실을 열었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X)는 최근 미국 신용카드 기업 중 처음으로 중국 은행카드 청산·결제 시장에 진출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이후는 고사하고 임기 중에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미국의 대중 정책 때문에 거대 시장을 포기할 나라(기업)는 세상에 없다.


plus point

광저우~홍콩 고속철 탑승기
공항인 줄 착각했다

규모와 구조에서 국제공항을 연상시키는 광저우남역. 사진 이용성 차장
규모와 구조에서 국제공항을 연상시키는 광저우남역. 사진 이용성 차장
광저우~홍콩을 오가는 푸싱호 고속열차. 사진 이용성 차장
광저우~홍콩을 오가는 푸싱호 고속열차. 사진 이용성 차장

‘이게 기차역이라고? 공항으로 잘못 온 거 아닌가?’ 홍콩으로 가는 고속철을 이용하기 위해 광저우남역(廣州南站)에 들어선 순간 무심코 뱉은 말이다. 역사 규모가 웬만한 국제공항 터미널 저리 가라다. 양쪽 끝에 식당과 기념품 가게, 편의점, 자동차 전시 부스 등이 들어선 풍경도 인천공항과 많이 닮았다. 부스에는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의 ‘쑹(宋)MAX’가 전시 중이었다.

홍콩에는 여러 번 갈 기회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교통수단(고속철) 이용이 목적인 적은 없었다. 중국의 주력 수출품으로 자리 잡은 고속철의 기술 수준이 궁금하기도 했고 광저우~홍콩 구간 개통이 가져올 변화상도 가늠해 보고 싶었다.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객실 안은 차분했다. 그래도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215위안(약 3만5000원)을 내고 일반석 자리를 예매했는데 앞자리와 간격도 넉넉하고 자리도 편안했다. ‘일등석은 얼마나 더 좋은 걸까’ 궁금해졌다.

티켓에는 저녁 7시 8분 출발이라고 쓰여있는데 예정보다 1분 먼저 출발했다.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좌석 앞주머니에 안내 책자가 있었지만, 중국어뿐이다. 부모와 멀찌감치 떨어져 건너편 자리에 앉은 영국 꼬마 둘은 출발도 하기 전부터 게임 삼매경이다. 홍콩 여행을 왔다가 광저우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잠시 후 속도를 내기 시작한 열차는 출발 5분을 지나자 시속 300㎞를 넘어섰다. 이 구간을 오가는 중국산 고속철 푸싱(復興)호의 최고 속도는 시속 350㎞로 되어있지만 이날 최고 속도는 시속 306㎞였다.

승차감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었다. 7시 23분에 광둥성 후먼(虎門), 42분에 선전 북역에 각각 정차했고, 예정 시간인 8시 8분에 홍콩 서구룡(西九龙)역에 도착했다. 출발 즈음해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왔다는 걸 알려주는 건 휴대전화에 표시된 통신사 이름뿐이었다(어느샌가 차이나모바일에서 홍콩 통신사로 바뀌었다). 이동 시간이 짧기도 했지만, 열차 안에 무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 지루할 틈은 없었다.

버스로 3시간 걸리던 광저우~홍콩을 1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지만 역의 위치가 문제다. 광저우남역은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50분을 가야 한다. 반면 서구룡역은 대형 쇼핑몰인 ‘엘리먼츠’와 연결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경제 통합은 강제한다고 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동 시간이 짧아지면 지역 간 인적∙물적 교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상호 의존적인 구조로 바뀔 수밖에 없다. 여권을 심사하는 홍콩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중국 국가를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홍콩 출신인지 본토 파견 직원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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