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의 높아진 배송 기대치 라스트마일 혁신 통해 충족 소비자 데이터까지 축적 가능
1~2시간 이내에 주문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아마존 ‘프라임나우’ 서비스. 사진 아마존, 블룸버그
1~2시간 이내에 주문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아마존 ‘프라임나우’ 서비스. 사진 아마존, 블룸버그

일곱 살짜리 아들과 세 살짜리 딸을 둔 주부 김희윤(32)씨는 “집 근처 대형마트에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아이들 건강을 고려해 외식보다는 직접 요리해 먹이는 것을 선호한다는 김씨. 어떻게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까. 답은 ‘배송’에 있다. 김씨는 사흘에 한 번꼴로 온라인 식자재 배송 업체 ‘마켓컬리’와 소셜커머스 ‘쿠팡’에서 필요한 물건을 배송받는다. 그는 “마켓컬리는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해주고, 쿠팡에서 주문한 생필품 역시 다음 날이면 도착한다”며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대형마트까지 가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편하고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단순히 물건을 전달해주는 데 그쳤던 물류 업계는 물론,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물건을 파는 데 집중했던 유통 업계까지 ‘어떻게 하면 더 잘 배송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를 ‘라스트마일’이라고 한다. 라스트마일이란 원래 사형수가 사형 집행장으로 걸어가는 마지막 거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물류에서는 여러 배송 단계 중 소비자와 만나는 최종 단계를 뜻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소비자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단계이므로 여기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기업의 미래가 어두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형수의 마지막 길’이란 본래 의미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김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라스트마일은 물류·유통 업계 판도를 흔들고 있다. 국내 유통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통 업계의 최대 화두는 라스트마일”이라며 “업체 간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바닥을 치는 현상황에서, 라스트마일을 차지하지 못하면 기업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류 업계 역시 좌불안석이다. 김씨가 이용하는 마켓컬리와 쿠팡 모두 자체적으로 배송 인프라를 구축한 덕분에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 물류 업계 관계자는 “이전 같았으면 우리한테 배송을 맡겼을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물류망을 구축한 것이 우리에겐 엄청난 타격”이라며 “유통 업체의 배송 물량을 따내기 위해선 결국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배송 서비스를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다”고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 라스트마일이 문제

물류·유통 업계가 라스트마일을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가장 근본적 원인은 ‘수익성 확보’다. 라스트마일은 배송 단계 중 가장 비효율적인 구간으로 꼽힌다. 배달할 주소가 부정확할 경우 물건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배송지가 도심 지역이라면 교통 체증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고, 배송 트럭을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택배 관련 소비자 상담 건수는 매년 1만 건에 달하는데, 이 중 운송물의 파손 및 훼손이 38.1%로 가장 많고, 분실 및 도난이 35.7%를 차지한다.

라스트마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에 벌어지는 이 같은 사고는 모두 물류·유통 업체의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비즈니스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라스트마일에 소요되는 비용이 물류 과정 중 53%에 달한다. 물건을 모으고(4%), 분류하고(6%), 중간 물류기지로 수송(37%)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이에 비하면 크지 않다. 비용만 들면 그나마 다행이다. 소비자까지 잃는다는 것은 뼈아프다. 미국 복스웨어리서치가 6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62%가 온라인에서 구매한 물건이 약속 날짜보다 이틀 이상 늦어질 경우 해당 사이트 재방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29%의 응답자는 잘못된 상품을 받는다면 그 사이트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물류·유통 업계가 라스트마일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라스트마일에 기업의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힌트가 가득 들어있고, 이를 쥐는 자가 향후 업계를 평정할 것이라는 공통된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힌트란 ‘소비자 데이터’를 뜻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빠른 배송’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면서도 제각기 다른 장소에 다른 방법으로 배송해주길 원한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소비자 거주지, 성향, 소비 트렌드 등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가 축적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 같은 측면에서 제조 업체보다는 유통 업체가 우위에 서 있다. 소비자를 대면할 기회를 유통 업체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휴대전화 제조사인 삼성전자마저도 소비자 정보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민정웅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삼성전자 같은 경우 휴대전화의 최종 소비자에 대한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다. 왜냐하면 휴대전화를 다 국내 통신 회사가 판매하도록 하기 때문”이라며 “이는 고객에 대해 삼성전자가 아는 게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고객이 정말 어떤 휴대전화를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재를 만드는 기업이 소비자 정보에 취약하다면, 제대로 된 제품·마케팅 전략을 수립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류 업계도 라스트마일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소비자 정보가 절실하다. 이충배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물류 업계는 유통 업체와 관계에서 ‘을(乙)’의 위치였지만, 이들이 유통 업체보다 소비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이들의 협상력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류 업계의 수익성이 낮은 이유는 유통 업체의 물량을 따내기 위해 지나치게 가격 경쟁을 벌였기 때문인데, 이 같은 비생산적인 경쟁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충배 교수는 “소비자 정보를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배송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굳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지 않아도 유통 업체 고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마존 월드’ 만드는 아마존

라스트마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전 세계 물류·유통 기업은 이미 전쟁에 돌입했다. 세계 전자상거래를 주름잡고 있는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아마존은 UPS, 페덱스 등 미국 대형 물류 업체에 배송 서비스를 맡겨왔지만, 최근 자체 배송망을 구축하고 라스트마일을 개선하고 있다. 2016년 대형 화물기 40대를 임대했는가 하면, 올해 6월엔 메르세데스벤츠에 승합차 2만 대를 주문했다. 개인 택배 사업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승합차를 빌려줌으로써 아마존 전담 배송 인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미 1억 명의 ‘프라임(연회비 119달러를 내고 가입하면 수많은 물품을 1~2시간 이내에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 멤버’를 보유한 아마존이지만, ‘라스트마일 강자’의 우위를 굳히기 위해 각종 첨단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작한 ‘인카(In‑Car) 딜리버리’가 대표적이다. 주문자가 아마존 키(Amazon Key) 애플리케이션으로 아마존 계정에 연결한 후 무선 연결 시스템으로 차량 트렁크를 열면, 택배 기사가 배송품을 넣어주는 서비스다. 아마존의 라스트마일 혁신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마존은 드론 출입구가 설치된 공중 물류센터의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이 라스트마일 잡기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는 ‘아마존 월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아마존은 프라임 서비스를 통해 단시간 배송 외에도 음악·도서·비디오 이용권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결국 소비자는 아마존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거대 소비자 집단을 확보한 아마존에 맞서기보다 아마존 생태계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아마존 월드’의 일원이 되면 고객 확보는 물론, 아마존이 구축해 놓은 배송 인프라까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상화 교수는 “아마존도 예전엔 제조사로부터 상품을 직매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직매입 비중을 계속 줄이고 있다”며 “제조사가 아마존 창고에 물건을 넣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에게 의존하던 유통 업계가 점차 독립적인 배송망을 구축하고, 나아가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자 물류 업계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페덱스는 배송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미 전역에 4개의 허브터미널을 새로 지었고, 19개의 터미널을 자동화했다. UPS 역시 기존 허브터미널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연간 매출의 10%인 70억달러를 투자했다. 세계 최대 물류 기업인 독일 DHL은 소비자가 배송 일정과 장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배송 서비스인 ‘온디맨드 딜리버리’와 ‘인카 딜리버리’ 등을 시행하고 있다.


쿠팡이 쏘아 올린 한국판 라스트마일 전쟁

한국의 라스트마일 전쟁은 미국의 모습을 똑 닮았다. 그 전쟁의 신호탄은 쿠팡이 쏘아 올렸다. 쿠팡은 직접 매입한 상품에 한해 다음 날까지 배송해주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쿠팡은 직매입한 물건을 자사 대형 물류창고에 쌓아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이를 포장해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캠프’로 이동시킨다. 쿠팡의 정직원 배송 기사인 ‘쿠팡맨’이 캠프에서 소비자까지의 배송을 담당한다. 물류 전 과정이 2단계에 불과해 익일 배송이 가능하다. 로켓배송을 위해 쿠팡은 전국 60여 곳에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고, 3000여 명의 배송 기사를 고용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한국 라스트마일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히지만, 쿠팡의 지속적인 성장 여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쿠팡 매출은 2014년 3484억원에서 지난해 2조6846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영업 손실 역시 같은 기간 1215억원에서 6388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 4년간 누적 적자만 1조8725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한때 쿠팡은 적자가 계속돼 납입자본마저 바닥난 상태인 ‘자본잠식’에 빠졌다가, 올해 초 블랙록 등 해외 투자 기업으로부터 2억30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며 겨우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신세계, 롯데 등 기존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이 쿠팡 따라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쿠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프라인 매장에 의존하던 신세계와 롯데는 부랴부랴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라스트마일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선발 주자인 쿠팡에 비하면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쿠팡은 이미 전국 10여 곳에 물류센터를 마련한 반면, 신세계는 2곳(경기도 용인시 보정동, 경기도 김포시), 롯데는 1곳(김포시)에 불과하다. 자체 배송 인력을 확보해 물류 업계 의존도를 줄인 쿠팡과 달리, 신세계와 롯데는 여전히 아웃소싱으로 배송 서비스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택배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CJ대한통운도 물류 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400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건설한 택배 메가허브터미널이 대표적이다. CJ대한통운은 이 터미널에 로봇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을 적용해 당일 배송과 당일 반품 서비스, 오전·오후 희망 시간대 지정 서비스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대전허브터미널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메가허브터미널 가동은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CJ대한통운 외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은 마이너스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어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라스트마일 혁신의 정도가 해외보다 다소 뒤처질 순 있지만 국내 업계도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다만 라스트마일의 혁신 방향이 지나치게 국내 시장에 매몰돼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이충배 교수는 “과거의 전자상거래는 국내 유통 제품에 한해 주로 이뤄졌지만, 최근 결제 시스템, 글로벌 물류 시스템의 발달로 국제 전자상거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글로벌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국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특히 라스트마일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선 현지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만 서비스를 추진하다간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스트마일 혁신에서 뒤처질 경우 해외 기업이 시장과 기술을 잠식할 수 있다. 하헌구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한국의 라스트마일 서비스가 지금 수준에서 계속 정체돼 있을 경우, 해외 기업이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쉽게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며 “사실 쿠팡도 일본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인 만큼 시장 잠식 현상이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송상화 교수는 “해외 기업은 라스트마일 혁신을 위해 기술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고 있고 그만큼 첨단 물류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나중에 해외에서 완성된 기술이 나왔을 때, 한국 기업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