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파이낸셜이 제공하는 간편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가 설치돼 있는 중국의 한 정육점. 앤트파이낸셜은 세계 최대 핀테크 기업으로 꼽힌다. 사진 블룸버그
앤트파이낸셜이 제공하는 간편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가 설치돼 있는 중국의 한 정육점. 앤트파이낸셜은 세계 최대 핀테크 기업으로 꼽힌다. 사진 블룸버그

한국 핀테크 시장의 선두에 서 있는 기업은 간편송금 앱 ‘토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다. 기업가치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는 2015년 2월 서비스 시작 후 올해 10월 말 기준 누적 다운로드 2100만건, 회원 1000만명을 기록 중이다. 국내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실적을 자랑하는 비바리퍼블리카지만, 세계 시장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비바리퍼블리카를 비롯한 한국 핀테크 기업이 갈 길은 아직 멀었다.

KPMG인터내셔널과 벤처투자기관인 H2벤처스가 지난 10월 공동으로 발표한 ‘2018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50대 리딩기업’ 28위에 오른 비바리퍼블리카와 ‘50대 이머징기업’ 74위에 오른 데일리금융그룹이다. 데일리금융그룹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관련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암호화폐거래소 ‘코인원’이 데일리금융그룹의 자회사다. KPMG인터내셔널과 H2벤처스는 매년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핀테크 기업을 조사해 1~50위까지는 ‘50대 리딩기업’으로, 51~100위까지는 ‘50대 이머징기업’으로 선정한다.

한국의 1위 핀테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28위라면 1위는 과연 누구일까. 주인공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이다. 앤트파이낸셜은 2004년 알리바바가 만든 온라인 결제시스템 ‘알리페이’에서 출발한 곳으로, 현재 기업가치는 750억달러(약 84조원)에 달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상위 1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이 절반에 가까운 4개(앤트파이낸셜·JD파이낸스·두샤오만금융·루팍스홀딩스)에 달한다는 점이다. 핀테크를 포함해 스타트업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3개, 전통 금융산업 강국인 영국은 1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중국 핀테크 산업이 약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기업환경’을 꼽는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중국은 핀테크 기업이 크게 성장하기 전까진 자유롭게 비즈니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풀어두는 편”이라며 “이 때문에 혁신적인 모델이 많이 등장해 그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기존 제도권 은행의 독점 영역이었던 금융시장의 진입장벽을 완화해 핀테크 기업이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풀어줬는데, 현재 중국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알리바바, 징둥(2위 JD파이낸스의 모기업), 바이두(4위 두샤오만금융의 모기업) 등은 모두 이를 이용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 정부가 핀테크 산업에 관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선 내수 소비를 확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소비자들이 돈을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기존 금융 환경은 척박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중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수는 10만 명당 37.51개, 은행 지점 수는 10만 명당 7.7개에 불과했다. 1인당 신용카드 수 역시 0.33개로, 미국(2.97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센터장은 “중국은 개인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여력이 낮은 편인데, 기존 금융산업을 확대해 이를 끌어올리기엔 한계가 있었다”며 “중국 정부는 핀테크를 활성화하면 금융서비스를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1위이자 세계 1위 핀테크 기업인 앤트파이낸셜은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에서 구매자들의 결제를 대행해주는 일을 하다 2008년 소규모 자영업자 대상 대출 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대출·투자업과 신용등급평가, 보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앤트파이낸셜의 현재 결제 규모는 8조8000억달러로 세계 최대 신용카드사 마스터카드의 5조200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래도 핀테크 전통 강자는 美·英

상위권만 보면 중국 기업이 많지만, 전체 100대 기업을 국가별로 나눠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글로벌 핀테크 산업 선도국은 역시 미국과 영국이다. 미국은 18개, 영국은 12개 기업을 순위에 올려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11개로 3위다. 미국과 영국에서 핀테크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주요인 역시 ‘규제’에 있다. 삼정KPMG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외 핀테크 규제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투자자 보호와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엄격한 금융규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보고서는 “미국은 명확히 금지한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비용편익 분석에 기반해 비합리적 규제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신생 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기 용이하다”고 썼다.

영국 역시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최초 도입한 국가다. 안전한 모래상자(샌드박스) 안에 아이들을 풀어두고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유래한 이 제도는, 핀테크 기업에 혁신적인 신규 금융상품을 규제의 제약 없이 일정 기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18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10위권에 오른 주요 미·영 기업으로는 ‘소파이(미국·5위)’ ‘오스카헬스(미국·6위)’ ‘로빈후드(미국·8위)’ ‘아톰뱅크(9위·영국)’ 등이 있다. 소파이는 미국 사회초년생이 현재 상환 중인 학자금 대출상품을 저금리로 재대출해주는 서비스다. 타깃 고객을 ‘미국 내 고학력·고소득 사회초년생’으로 한정, 고객군의 신용도를 높여 부도율을 낮춘 점이 특징이다. 미국 건강보험 기업인 오스카헬스는 ‘건강하지 않은 고객도 가입을 받아줘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자사의 보험 가입자 전원에게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웨어러블(몸에 착용할 수 있는) 기기를 지급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가입자에게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로빈후드는 수수료 없는 주식 거래앱을, 아톰뱅크는 영국 최초 모바일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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