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서울 중구 ‘이코노미조선’ 회의실에서 국내 도시재생 전문가 4명이 모여 ‘한국 도시재생 사업의 해법’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나태흠 안테나 대표,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사진 김홍구
10월 23일 서울 중구 ‘이코노미조선’ 회의실에서 국내 도시재생 전문가 4명이 모여 ‘한국 도시재생 사업의 해법’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나태흠 안테나 대표,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사진 김홍구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서울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정부 정책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기존 거주민을 지원하는 미국식 바우처 제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서울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정부 정책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기존 거주민을 지원하는 미국식 바우처 제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발표했다. 이는 노후화로 낙후된 지역 500곳을 선정해 향후 5년간 50조원을 들여 탈바꿈시킨다는 내용이 골자다.

국토부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물리적 환경 개선에만 주력한 기존 도시정비 사업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지만,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과거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수백억, 수천억원 예산의 도시재생 사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 도시재생 프로젝트나 일본 도쿄의 마루노우치 지구 재생 사업처럼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의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재생 사업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반복 중이다. 한국형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10월 23일 서울 중구 ‘이코노미조선’ 회의실에서 국내 도시재생 전문가 4명이 모여 ‘한국 도시재생 사업의 해법’을 논의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나태흠 안테나 대표가 참석했다. 김영욱 세종대 교수는 2016년 진행된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을 총괄했으며, 김경민 서울대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의 부작용을 연구해 왔다. 나태흠 대표는 서울 문래동에 예술인 커뮤니티를 조성해 도시재생을 이끌었다.


현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과거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의 차이점은.

강맹훈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을 벤치마킹해 이번 정부가 내놓은 것인데, 핵심은 도시재생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 시티는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이면서 동시에 상가, 영화관 등에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면)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

김경민 도시재생 사업의 기본 목적은 ‘주거복지 향상’과 ‘지역 경제 활성화’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여기에 ‘일자리 창출’을 추가한 것이다.

나태흠 과거 정부 때 뉴타운 사업을 주도했던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지금 도시재생 사업의 기본계획을 짜고 있다.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뜻이다. 이들이 해왔던 것이 공간 개발이기 때문에 도시재생 사업도 주민들이 필요한 건물이나 주차장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식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문제점은.

김경민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선정되면, 정부가 전체 도시재생 사업비의 80%를 민간 개발사업자에게 10년간 연 2% 이율로 대출해준다. 민간 개발업자들은 한 지역이 도시재생지로 지정되면 그 지역 땅부터 산다.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됐다는 이유만으로 집값이 10억원에서 15억~16억원으로 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땅값이 치솟아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발생한다. 이는 인센티브에 대한 정책 설계가 잘못된 것이다. 도시재생 전략이 물리적 환경 개선, 즉 지나치게 하드웨어 중심이라는 것도 문제다.

김영욱 도시재생은 건물 신축·정비와 같은 물리적 환경 개선에만 그쳐선 안 된다. 사실 우리는 재개발·재건축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사회적 통합이 와해되는 현상을 겪었다. 재개발 시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사는 경우가 10%도 안 됐다. 기존 커뮤니티가 다 없어지는 것이다. 재생은 물리적 환경 개선만 아니라 커뮤니티 재생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도시재생을 할 때 소프트웨어적 부분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인가.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도시재생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그 지역 경제를 살리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도시재생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그 지역 경제를 살리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영욱 그렇다. 우리가 도시재생을 한다고 하면 좋은 건물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건물의 효용은 그 건물을 이용하는 일부에게만 한정된다. 대다수 시민이 이용하는 것은 길, 광장, 마을 어귀에 있는 공원 같은 공공 공간(public space)이다. 거리가 활기를 띠면 커뮤니티가 살아난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 공간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공공 공간 조성을 통한 커뮤니티 활성화가 도시재생의 핵심가치가 돼야 한다고 본다.

김경민 지역 경제는 사람이 머무르고, 생활과 소비를 해야 활성화된다. 그러려면 사람이 머물 공간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역할을 사회적 기업이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한 금융 지원책이 필요하다. 지금은 임대료나 인건비 등을 지원해주는데, 보증금 중심 지원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보증금은 정부가 환수하기 때문에 부담도 없고, 기업의 자생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나태흠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5가지 유형 중 ‘우리 동네 마을 살리기’는 단순히 사회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20~30년 동안 주민들이 풍족하게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업이다. 마을회관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을회관만 지어주고 말 게 아니라 이 공간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 주민들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도시재생 사업은 단기 성과에 치중하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한다는 지적이 있다.

김영욱 사실이다. 이는 비단 도시재생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물리적인 공간은 조금만 바뀌어도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정교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도시재생 사업을 하겠다’고 기한을 정하고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다 보면 지역 주민과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도시를 재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도 지자체들은 도시재생 예산 따먹기에 급급하다.

강맹훈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실무진도, 이 계획을 검토할 사람도 시간이 부족하다. 지방의 엔지니어링 회사가 서울에서 한 프로젝트를 베껴다가 그 동네 사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대안은 없나.

김경민 도시재생 사업 예산을 정부와 분리하면 된다. 단기 성과 주의가 나타나는 것은 예산에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제임스 캐머런 정부 때 ‘빅 소사이어티 캐피털’이라는 사회적 기금을 만들었다. 정부가 투자해 기금을 만들고 외부 투자를 받는다. 이를 도시재생 사업에 투자해 수익이 나면 투자자에게 이를 나눠준다. 이렇게 독립적 기관으로 일하면 기관 내 인력의 전문성이 높아진다. 이런 기금을 설치·운용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나태흠 안테나 대표(왼쪽) “정부 주도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젊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가 협력해 슬럼화된 도시를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만드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오른쪽)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도시재생 사업을 하겠다’고 기한을 정하고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다 보면 지역 주민과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도시를 재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태흠 안테나 대표(왼쪽)
“정부 주도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젊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가 협력해 슬럼화된 도시를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만드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오른쪽)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도시재생 사업을 하겠다’고 기한을 정하고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다 보면 지역 주민과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도시를 재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이 지방 위주로 추진된다는 지적도 있다.

강맹훈 올해 정부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서울은 7곳, 그것도 소규모 사업만 선정되는 데 그쳤다.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 서울시 부동산 시장 과열을 도시재생 사업이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서울시 주택 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은 지역 불균형에 따른 주거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도시재생을 통해 도심 내 쇠퇴지역과 노후한 저층 주거지의 경쟁력을 높이면 아파트 중심의 주택 수요가 분산되고 집값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다.

나태흠 서울에서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된 곳들을 보면 사실 공간보다는 기존 인프라가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건물 노후도나 사회적 서비스가 좋지 않기 때문에 재생지역으로 지정된 것이고, 뉴딜 사업은 정말 사람이 많지 않은 지방 소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어떻게 보나.

김경민 도시재생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100%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서울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개발업자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기존 거주민을 지원하는 미국식 바우처 제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바우처 제도를 통해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들에게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주택의 월 임대료가 60만원일 경우 월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에게 30만원을 지원하고 소득이 150만원인 사람에게 15만원을 주는 식이다.


한국형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김경민 과거 실패한 사업에 대한 분석과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이미 완료된 기존 사업지 10개 정도는 철저하게 평가했어야 했다.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고치고 잘된 점이 있으면 확대해야 한다. 서울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에 정부가 몇 백억원을 쏟아부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지역 주민들은 변화를 못 느끼겠다고 불평한다.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강맹훈 도시재생 사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사회적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도로나 공원 등 공공시설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만든 후에 유지비가 문제다. 창신·숭인지구에서도 이런 문제가 생겼다. 주민들은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카페와 같은 민간시설 운영비까지 지원을 요구했다. 시설은 좋은데 전기세, 수도세를 낼 여력이 없다고 했다. 결국 서울시는 주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3년간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공공시설을 정부가 확충한다고 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주민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김영욱 일본의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마을 만들기)’ 사업은 공공의 지원이 끊기니 90% 이상이 없어졌다. 주민들의 수익 사업이 없다 보니 운영도 안 되고 커뮤니티가 와해됐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한국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 지원이 중단됐을 때 주민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강맹훈 서울시는 지난해 종로구 행촌동 일대를 도시농업 시범마을로 지정했다. 마을 주민 텃밭 가꾸기 정도로 생각하고 기획했는데, 지정 이후 생명공학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사물인터넷(IoT)이 적용된 스마트농장 등 도시농업을 연구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아직 유의미한 수익모델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조금만 더 확대하면 지역 사회와 젊은 스타트업이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도시재생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그 지역 경제를 살리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태흠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 시티 도시재생 사례는 해당 부지가 도심과 가까이 위치해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유휴지였기 때문에 이를 서울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에는 사실 이런 방식의 도시재생이 가능한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지방보다는 도시재생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인구도 많고 따라서 도시재생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젊은 사회적 기업가가 협력해 슬럼화된 도시를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만드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그 사례를 통해 한국형 민관 협력 도시재생 모델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백예리 기자, 이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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