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을 위해 200억원을 투자했지만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 창신·숭의지구.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도시재생을 위해 200억원을 투자했지만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 창신·숭의지구.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그게 뭔데요? 그런 지원사업이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10월 23일, 서울 동대문역 인근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만난 김문형(55·가명)씨는 ‘도시재생 사업 효과를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2014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서울 창신동과 숭인동에 총사업비 200억원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됐지만, 김씨를 포함한 지역민 대부분이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곳에 돈을 안 쓴 것은 아니다. 이곳의 도시재생 사업을 총괄한 창신·숭인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주민 공동 이용 시설과 백남준 기념관, 봉제역사관 등을 짓는 데 100억원을, 거리 정비와 CC(폐쇄회로)TV 설치에 70억원을 썼다.

그러나 김씨는 주민을 위해 마련된 이 같은 공동 이용시설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김씨처럼 창신동에서 1인 봉제공장 재봉사로 일하는 이성옥(64·가명)씨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이씨는 “이런 것이 도시재생이라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시설은 시간 있고 소위 ‘난 사람들’이나 즐기는 것이지, 우리처럼 생업으로 바쁜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있겠느냐”며 “도로가 좁아 차량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념관·역사관이 웬 말이냐”라고 말했다.

창신·숭인지구의 비좁은 골목길들은 개선사항 1순위로 꼽히지만 예산 한계, 개발 규제 등에 묶여 확장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동네가 발전하려면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세워 한 번에 밀어버려야지 이런 찔끔찔끔 식에다 현실과 동떨어진 개발은 돈 낭비”라고 했다.

창신·숭인지구가 처음부터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 곳곳에서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던 2007년 이곳도 뉴타운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낡은 동네를 모두 철거하고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창신·숭인지구는 세입자가 전체 주민의 80%가량을 차지하는데 재개발이 진행되면 이들이 모두 내몰릴 위기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뉴타운추진위원회와 주민들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창신·숭인지구는 2013년 10월 뉴타운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주민들은 이후 국토교통부가 2014년 처음 공모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에 지원했다. 동네 원형을 유지하면서 주거 환경 정비, 문화시설 도입 등 소규모 사업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을 택한 것은 장고 끝에 둔 악수가 됐다. 200억원을 들인 재생사업은 동네 전반에 깔린 심각한 노후 상황을 개선하진 못했고, 오히려 부작용만 커졌다. 박귀성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이사장은 “200억원 중 72억원이 봉제산업을 위해 쓰였다고 하는데 봉제인 중 혜택을 받았다고 느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뉴타운 사업이 무산되고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된다고 해서 월세만 30~40%가량 올라 힘들다”고 말했다.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 사업뿐만 아니라 앞서 진행된 서울 지역 도시재생 사업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서울 마포구 염리동 도시정비 사업이 그 예다.


미국·일본은 도심 개발에 집중

서울시는 지난 5년간 낙후된 염리동의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5억원을 들여 소금길 등을 만들었지만, 해당 지역에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헛돈만 쓴 꼴이 됐다.

도시재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과 달리 미국·일본 등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철저한 계획과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도쿄에는 큰 지역 단위로 거리의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수준의 재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련된 고층건물들이 부분 최적화가 아니라 거리 전체의 최적화를 염두에 두고 속속 들어서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도시 중심에 고층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모이도록 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세계 각국 주요 도시들과 달리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최근에 세워진 고층 건물은 도심보다 외곽으로 갈수록 오히려 많다. 수도인 서울과 제2 도시인 부산에는 낙후된 지역이 태반이다. 접근성이 좋으면서 경제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주요 도시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자 낭비라는 것이 ‘이코노미조선’이 인터뷰한 전문가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앞으로 5년간 50조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해 낙후된 지역 500곳을 재생하겠다고 밝힌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도시재생을 통해 지역민의 주거 복지 수준을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국가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제기된다.

올해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대상지역 99곳 중 서울은 7곳이 선정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주거시설 정비, 환경 정화 등에 자금이 쓰이는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이다. 뉴욕·도쿄 등 주요 도시에서 벌이는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으로는 강원도 태백시가 선정됐는데, 2200억원을 들여 폐광시설을 광산테마파크 등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19년간 2조7000억여원의 투자로도 재생되지 못한 폐광지가 이번 사업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코노미조선’은 거대한 재원을 쏟아부으면서도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의 도시재생 사업이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시(市)의 도시재생 성공사례인 ‘가소메터 시티’를 탐방했다. 가소메터 시티는 서울 도시재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4월 방문해 서울시의 벤치마킹 사례로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함께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연구원의 실무 관계자들도 지난해 3월 이곳을 탐방한 뒤 성공비결을 분석한 보고서(‘유럽 산업도시의 도시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새로운 발전전략’)를 작성했다.

가소메터 시티는 1984년 가동이 중지된 가스저장소 4동(A~D동)을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하루 1만3000명이 거쳐 가는 주상복합시설로 재탄생시켰다. 박 시장은 “가소메터 시티를 보니 서울 도시재생의 미래가 보였다”며 “쓰임을 다한 산업유산 재생을 통해 도시의 역사·문화적 숨결을 보존하는 동시에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빈시는 어떻게 가스저장소로 낙후된 지역을 되살렸을까.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해 성공했을까. 이번 도시재생 사업의 적재적소에 예산이 제대로 사용된다면 한국 시민들도 가소메터 시티가 위치한 빈 시민들처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시 ‘가소메터 시티’의 성공비결을 세 가지 관점으로 분석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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